무엇을 바꾸고 싶다면 긴긴 시간을 바라봐야 한다. 어떤 말은 과거?현재?미래로 연결할 줄 알아야 한다. 과거에 나에게 이런 일이 있었고, 그래서 현재 나는 이런 말을 반복하고 있으며, 미래에 어떻게 달라지고 싶은지 길게 물어야 한다. 사람의 말에는 시간이 산다.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의 흔적, 즉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고 또 무엇을 간절하게 바랐는지가 고스란히 묻어 있다. 그 긴 시간 동안 당신은 무엇을 간절하게 원했는지 생각해보자. (…) 우리 시나리오가 시작된 지점은 바로 거기, 아주 중요한 무엇인가를 잃어버리고 그것을 되찾기를 절실히 바라기 시작한 그때였을지도 모른다.
--- p. 53
왜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인정하는 것이 그토록 불편한 일이 되었을까? 감정과 욕구를 존중받은 경험이 부족해서이다. 조건적인 애정, 무관심과 비난, 연이은 실패의 경험 때문이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거부당하고, 무시당하고, 조종당한 상처를 지닌 경우도 많다. 이런 경험들이 계속 이어지면 자기 내면에서 출력되는 감정과 욕구 데이터를 신뢰하지 못하게 된다. 내 것을 드러낼 때 부족하다고 느껴지면서 부끄럽고, 지금 이렇게 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심스럽다. (…) 건강한 관계의 핵심은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얼마나 안전하게 드러내는가에 있다. 감정과 욕구를 적절하게 주고받지 못하는 관계는 유지되기도, 깊어지기도 어렵다.
--- pp. 64~65
밖으로 서둘러 자라는 데만 힘을 쏟으면 내 안에서 보내오는 신호들을 놓친다. 그렇게 내면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무시하고, 고유의 강렬한 욕구와 소망을 가져보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의 불편함을 해결하느라 나는 늘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 관계는 거울 속 나와의 대화에 토대한다.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본 적이 없으면 상대와 동등한 관계를 만들지 못할 수밖에 없다. 항상 자신이 뭔가를 더 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받는다. 상대가 바라지 않는 희생을 자처해서 억울해질 수도 있고,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무례한 사람을 만나게 될 수도 있다.
--- pp. 88~89
화는 ‘안내’이자 ‘요구’이다. 화가 났다는 것을 알리고 내가 원하는 것을 요구해야 한다. 때론 “나는 지금 분노를 느낀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특히 타인지향 시나리오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한 그 말을 스스로 듣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화의 목적은 나에게 소중한 것을 지키는 것이다. 화는 나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타인이 알게 하고 한 걸음 물러나게 만드는 에너지자원이다.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들을 수 있는 크기의 소리면 된다. 너무 시끄러우면 사람들이 도리어 당신의 말에 집중하지 못한다.
--- pp. 148~149
우리는 어릴 적에 내 것을 소유하는 만족감을 알기도 전에 ‘우리’에 관해 배웠다. 참고, 양보하고, 희생해야 칭찬을 받았다. 나의 정당한 권리를 행사할 때도 다른 사람의 승인을 구해야 했다. 이를테면 감정조차 가려서 느껴야 했다. 타인을 불편하게 하는 감정은 품어서도 안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감정은 내 소유이다. 무엇이든 느껴도 된다. 또 혼자 있고 싶어도 되고, 해야 할 일을 안 하고 싶을 수도 있고, 부탁을 거절할 수도 있고, 좋아하는 음식을 혼자 먹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 pp. 161~162
우리는 흔히 고통스러울 때 나만 이렇게 힘들고, 유독 나에게만 이런 시련이 내려진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 된 나머지,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만다. 그러나 이것은 좁은 시야로 인한 무지다. 당신이 보거나 듣지 않으려 해서 그럴 뿐, 사람들은 모두 자기 몫의 고통을 견디며 살아간다. (…) 나만 더 힘들다는 생각은 그만큼 더 특별해지고 싶은 마음에서 빚어진 오해이다. 내 경험을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일반적 경험으로 바라볼 때 수치심과의 거리 두기가 가능해진다. 나에 대한 강박적 집착에서 고개를 들어야 누구나 자신과 가장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p. 215
우리는 어릴 때 나의 감정과 욕구를 느끼고, 표현하고, 지지받는 일이 이토록 중요한 줄 알지 못했다. 어른들의 말에 말대꾸를 하거나 싫다고 하지 않고, 소리치며 울지 않으면 착한 아이가 되고, 그러면 행복해지는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다. 착한 아이는 타인을 만족시키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착한 아이는 남의 눈치를 봐야 하고, 분노하면 안 되고, 자신이 원하는 것도 양보해야 하고, 힘들어도 참아야 한다. 그래서 자기 삶의 조종석에 앉지 못하게 된다. 우리는 ‘나’로 살아야 한다. 때론 맛있는 음식에 눈치 없이 젓가락을 먼저 뻗을 수 있어야 하고, 소중한 것을 위해 분노를 뿜을 수 있어야 한다. 나에게 양보해주지 않겠느냐고 물을 수 있어야 하며, 그건 버거운 일이라 내가 하기 어렵다고 양해를 구할 수 있어야 한다.
--- pp. 227~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