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를 의식하자 지금껏 살아오면서 나눈 내 대화가 떠올랐다. 가족과의 대화는 빈곤했으며, 직장에서의 대화는 피곤했다. 묵묵히 들었더니 사람들은 나를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으로 오해하고 자기 감정을 쏟아 부었다. 어지간해선 거절을 하지 않았더니 만만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남의 요구에 끌려다니느라 정작 내가 무얼 원하는지 몰랐다. 가장 큰 문제는 내 안에 쌓인 감정을 제대로 다루 지 못하고 부적절한 타이밍에 부적절한 대상에게 부적절한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소중한 사람에게 말로 상처를 주고, 나 자신에게도 솔직하지 못했다. 타인과의 관계도, 나 자신과의 관계도 엉망이었다. 거기서 오는 수많은 감정이 쌓이고 또 쌓였다가 불시에 눈물로 터졌다.
---「‘프롤로그'」중에서
대화법은 제대로 한 번 연습해두면 마치 근육처럼 내 안에 남아 두고두고 쓸 수 있다. 가령 나는 오해를 받으면 갑자기 울음이 차오르면서 목소리가 떨렸다. 개인적인 대화는 물론이고 회의를 하다가도 이러니 나는 당연하고 다른 사람들도 당황했다.
대화법을 공부하다 보니 문제는 ‘오해받는다’는 나의 판단, 벌어질 일에 대한 두려움과 억울함에 있었다. 상황을 살피고 내 느낌과 욕구를 찾았다. 이런 상황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과 상처들도 돌봤다. 그러자 내 염려를 표현하고 상대의 이야기도 편안하게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울먹이면서 아기 양 같은 목소리를 내지 않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대화법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찬찬히 정성을 들이고 꾸준히 애쓰면 매순간 유용하다. 노력의 크기만큼 감동도 크다. 꼭 한 번 해볼 만한 가성비 좋은 노력이다.
---「1장 〈내가 하고 싶은 말〉 중 ‘제가 말은 곧잘 하는데요?'」중에서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건 여전히 “아이고, 그랬구나”와 “할머니, 그래서요”라는 반응뿐이다. 그런데도 할머니와 대화하는 게 즐겁다. 듣고 있으면 괜히 가슴이 뜨거워진다. 우째등간 잘살고 싶어진다. 나는 공감이 상대방의 말을 다 이해하고, 심지어 그의 심중까지 파악해야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귀로는 잘 듣고 머리로는 열심히 생각했다. 말하는 의도를 읽어내는 일은 어렵고 피곤했다. 그럴수록 오히려 공감과 멀어졌다. 긴 시간 나눈 이야기는 많은데 돌아서면 허무하고 답답했다. 상대의 곁에 그저 함께 머물고, 그 마음이 어땠을지를 헤아리면 족하다는 사실을 몰랐다.
모든 말을 알아듣지 못해도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경험. 공통의 기억이 없어도 수십 년을 가로질러 공감하는 경험. 할머니는 이 귀한 경험을 내게 선물해주셨다. 그의 남은 시간이 어쩌면 그리 길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직 못다 하신 이야기를 내가 많이, 더 많이 들어드리고 싶다.
---「2장 〈공감으로 가는 길〉중 ‘그저, 마음으로 공감하기'」중에서
내가 ‘지금 여기’에 있어 본 건 언제였나. 어렵사리 태국으로 여행 갔던 일을 떠올렸다. 수도 방콕에서 5시간 가까이 기차를 타고 겨우 숙소에 도착했다. 시차 때문에 한밤중임에도 눈이 말똥말똥했다. 잠이 오지 않았다. 바깥 공기라도 쐬려고 숙소 문을 열었다. 서울에선 볼 수 없던 깊은 어둠이 펼쳐졌다. 고요함을 뚫고 지금껏 들어보지 못한 여러 동물과 곤충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에겐 그 시간이 한창때였을 것이다. 보이진 않지만 살아 있는 것들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이 그려졌다. 암흑이 포근하게 느껴지긴 처음이었다.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적막했지만 무섭지는 않았다. 그 풍경을 몸속으로 들이듯 깊게 숨을 쉬었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먹먹하지만 편안했다. 그러기를 몇 분, 뜬금없이 눈물이 콸콸 쏟아졌다. 입으로 “괜찮아, 다 괜찮아”라고 중얼거렸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3장 〈본격적으로, 비폭력대화〉중 ‘지금 여기: 현존'」중에서
십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동료 둘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자리가 멀어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그런데 두 사람이 내가 있는 쪽을 바라보며 웃는다. 상상력이 발동한다. ‘왜 웃는 거지? 뭘 쳐다보는 건데? 혹시 내 얘길 하나?’ 이렇게 나만의 소설을 쓴다.
짐작은 대체로 부정적으로 흐른다. 몸 상태가 나쁘거나 우울하면 정도가 더 심해진다. 두 사람의 대화에 내가 등장하지 않을 수도 있고, 내가 웃음의 원인이 아닐지 모르는데 혼자 소설을 쓴다.
비폭력대화는 관찰을 ‘상황을 들은 대로, 보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생각이나 선입견을 섞지 않고 사진을 찍듯, CCTV를 보듯, 녹음하듯 말이다. 이렇게 관찰로 대화를 시작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본 그대로, 들은 그대로 시작해야 당사자들이 상황을 동일하게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카메라나 녹음기가 되었다고 상상하면 쉽다. 카메라는 장면을, 녹음기는 말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
---「3장 〈본격적으로, 비폭력대화〉중 ‘왜 날 보고 웃지?: 관찰'」중에서
“진희 씨, 연애를 안 하니 몸이 자꾸 아프지. 남자친구 사귀고 잠자리도 갖고. 어? (알 거 다 알지 않느냐는 웃음을 지으며) 그래야 건강하고 튼튼해진다고.”
여기서 발목 잡히기 쉬운 대목은 ‘걱정해서 하는 말’이다. 말하는 사람의 ‘걱정’은 관심이자 진심일 때가 많다. 내용이 아무리 쓰레기 같아도 말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렇다는 뜻이다. 걱정이라는 의도가 워낙 숭고해서 건드리기 어렵다.
품위 있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자기 연결이 필수다. 단단하게 자기를 공감해야 연결이 끊어지지 않는다. 어물쩍 넘어가서는 안 된다. 계속 내 느낌과 욕구에 집중해야 언어폭력을 들었던 상황을 다시 떠올려도 덜 힘들고, 비슷한 일이 벌어졌을 때도 달리 대응할 수 있다. 나를 표현할 에너지도 생긴다.
---「4장 〈두려운 대화 상황〉중 ‘언어폭력 앞에 꼼짝 못하는 나를 돌보다: 자기와 연결하기'」중에서
우리 가족은 마음을 전할 기회를 숱하게 놓치고 살았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나니 무척 슬펐다. 감사는 거래가 아니다. 많이 한다고 손해 보지 않는다.
비폭력대화를 배운 뒤 수업에서 배운 대로 표현해보기로 했다. 상대가 나의 행복에 기여한 바를 관찰해서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그로 인해 충족된 나의 욕구와 그 느낌을 덧붙인다.
“아빠, 사십 년 가까이 가족을 위해 일해주셔서 감사해요. 진학이며 취업 같은 중요한 시기마다 제 결정을 지지해주셔서 고마워요. 그 순간들을 떠올리면 지금도 따뜻하고 든든해요.”
얼마 뒤, 아빠가 새로 산 찌와 낚싯대 사진을 보내오셨다. 어쩐 일로 웃는 이모티콘까지 붙이셨다. 엄마 말로는 아빠가 갑자기 포스트잇을 찾으셨단다. 낚시 경력이 수십 년인 아빠에겐 잡지에 나오는 내용이 조금도 새롭지 않으실 텐데, 페이지마다 빼곡하게 포스트잇을 붙여가며 읽으셨단다. 딸이 선물해준 거라며 몇 번이나 반복해서.
---「4장 〈두려운 대화 상황〉중 ‘정말 고마운데 표현할 방법을 모르겠어: 감사'」중에서
“그냥 내가 알아서 할게.”
나는 이 말을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에게, 커서는 친구와 동료와 남편에게 자주 했다. 부모님에게 학교생활의 문제나 친구 관계를 말해봐야 소용없다고 생각했다. 어른이 된 뒤에는 주변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싶어서 저 말을 했다. 이 말의 힘은 제법 강력해서 내가 저 말을 하면 사람들은 그런가 보다 하며 떠났다. 그 후엔 내가 말한 대로 혼자 알아서 하는데도 전혀 즐겁거나 보람차지 않았다. 눈물이 차오를 때도 있었다.
처음으로 이 말을 들여다보았다. 어떤 때는 “내 뜻을 존중해줘”였고, 또 어떤 때는 “너무 외로워. 날 좀 공감해줘”였으며, 많은 경우 “버거워. 혼자는 힘드니까 나를 도와줘”였다. 나는 존중받고 싶었고, 위로와 공감이 필요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도움과 지지가 필요했다. 차갑고 매몰찬 거절의 말이 실은 뜨겁고 절실한 부탁이었다.
---「5장 〈함께, 상처를 회복하다〉중 ‘그 말이 부탁이라고?'」중에서
비폭력대화는 갈등을 회피하거나 문제에 완곡하게 대응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대화가 아니다. 오히려 문제에 전적으로 관여해서 문제에 얽힌 다양한 이들의 욕구를 돌본다. 비폭력은 우리 마음 안에서 폭력이 가라앉고 자연스러운 본성인 연민으로 돌아간 상태를 말한다.
비폭력대화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자신과의 연결이다. 타인에게 공감하고, 갈등을 해결하기에 앞서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스스로에게 행하던 폭력을 멈추길 권한다. 자신을 연민으로 대하기, 존재에 대해 편안하고 즐겁게 느끼기, 욕구에 기반을 두어 내가 하고자 하는 말과 실제 하는 말이 일치하기. 이런 것들이 내가 경험한 비폭력대화의 면면이다.
---「5장 〈함께, 상처를 회복하다〉중 ‘비폭력대화가 유행(?)하면 벌어질 일'」중에서
이 책이 당신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지만 실은 그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책을 쓰면서 과거의 나를 돌봤다. 현재의 나와 연결되고, 꿈과 비전을 다듬었다. 자유, 선택, 도전, 열정, 존재감, 자각, 자기 신뢰, 용기, 진실함, 평화 등 수많은 욕구가 충족되었다. 이 책을 시작으로 ‘부족’보다 ‘충족’을 더 많이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부족’하다는 목마른 외침에 정성과 사랑을 듬뿍듬뿍 부어주겠다.
당신도 여정을 함께하며 여러 욕구가 충족되었기를 바란다. 대화 속 폭력을 의식하며 평화를 향해 살아가길, 그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게 먼저 연민과 공감의 손길을 건네길 기도한다. ‘비폭력대화’라는 아름다운 도구가 조금이나마 익숙해졌다면 책을 쓴 보람이 있겠다.
---「‘에필로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