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동, 딩동, 딩동, 딩딩딩딩딩…….”
재인이 마저 남은 캔 맥주를 입 안으로 털어 넣는 그 순간, 요란스럽게도 울리는 차임벨. 대체 어느 누가 이렇게 요란스럽게 눌러대는 건지. 재인은 벌컥 문을 열었다.
“누구……!”
문 앞에는 지호가 고개를 빳빳이 들고 서 있었다.
“말 좀 해요, 우리. 들어가도 되죠?”
지호는 재인이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그의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신발은 벗지 않은 채로 현관에 섰다. 지호는 당당하다 못해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마치, 전쟁터에 나온 군인처럼. 재인은 지끈 거리는 머리를 짚었다.
“안으로 들어와.”
“싫어요. 여기서 얘기해요.”
재인은 지호의 대답에 꽤나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눈앞의 지호는 꽤나 반듯이 서 있었다. 조금이라도 건드렸다간 사단이 날 것만 같았다. 재인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얘를 어떻게 해야 하려나.
“들어와. 들어와서 얘기해.”
“왜 그랬어요?”
지호는 결코 단 한발자국도 안에 들이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그녀는 양손에 주먹을 꽉 쥐었다. 똑똑히 나가야 해, 김지호. 절대 가벼워 보이거나 우스워 보이면 안 된단 말이야. 화가 났다. 그는 그 일에 대해 그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문자하나, 전화 하나도 없었다. 그의 설명이 없으니 자꾸만 더 제가 이상해지는 것 같았다. 물론, 남자 혼자 사는 집에 발을 들인 자신이 잘못이긴 했지만, 그렇지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상. 그는 왜 그랬을까? 내가 우스워서? 내가 재밌어서? 그냥 단순히 장난친 걸까? 실수? 그런데, 실수는 아니라며. 생각을 하지 않으려 이것저것 해 봐도 자꾸만 그날의 키스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정말 이대로 미치겠구나 싶었던 지호였다.
“왜 그랬냐고요. 내가 재밌어서 그랬어요?”
“무슨 말이 듣고 싶은 거지?”
“그쪽 대답이요. 거짓말만 빼고 다요.”
재인은 무슨 말을 어떻게,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어떻게 말해야 눈앞의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이해시킬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오해가 생기지 않게 할 수 있을까. 그러나 평소에는 그렇게도 잘 돌아가던 자신의 잘난 머리는 이번에도 역시, 지호 앞에 서자 회전을 뚝 멈춘 모양인지 그 어떤 단어 하나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왜 아무 말이 없어요?”
“너…….”
“나보다 더 어른이잖아요!”
아뿔싸! 그 커다란 눈에 눈물이 차 버렸다. 강하게 노려보고는 있는데, 지호의 눈빛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렇게 화를 내던 지호는 숨을 고르더니 맥 빠진 듯이 조용히 말했다.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렇게, 그렇게…… 해놓고 아무 말도 없는 건 비겁하잖아요, 너무.”
답답했다. 답답해 미칠 것만 같다. 심장이 먹먹하고 온몸이 뜨겁다. 눈앞에 그가 미워 죽겠다. 그러니까 그도 자신과 같았으면 좋겠다. 아무 말 않고 서 있는 재인의 입에서 무슨 무시무시한 말이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이 실망스럽지 말았으면 좋겠다.
재인은 흔들리는 그녀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마침내 무겁게 목소리를 끄집어냈다.
“모르겠다.”
그는 팔짱을 끼고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미안한데,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전혀 모르겠거든. 너만 보면 정신을 차리지 못하겠다. 혼이 빠져나간 것 같아서……. 그날도 그랬어.”
“…….”
“하지만 결코 무책임하게 모른 척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어. 너에게 뭐라도 말해야겠다 싶어서 널 마주하길 바랐는데…….”
그가 이마를 짚었다.
지호는 그런 그를 가만히 바라봤다. 조금, 아니 아주 많이 양심에 찔렸다. 사실 그를 피했던 건 그녀 자신이었으니까. 지호는 입술을 물었다 풀었다 하는 그를 조심히 살펴보다가 조용히 물었다.
“……내가, 좋아요?”
그녀의 그 고요한 물음은 그에게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그다지 많은 표정 변화가 없는 재인이 화들짝 놀라 어깨를 움찔거렸으니까.
지호는 자신의 질문에 그런 반응을 보인 재인 탓에 제가 괜한 질문을 했다고 자책했다. 괜히 곤란한 질문을 한 것 같았다. 삼십대 남자의 키스의 의미는 이십대 여자의 키스의 의미와는 아주 다를 거라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기 때문이다.
“미, 미안요. 전 그냥……. 그냥, 그러니까 괜찮아요. 별로 신경 안 쓰셔도…….”
“아직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아무 말이나 찾아 헤매고 있는 지호의 말을 재인은 싹둑 잘랐다.
“널 좋아한다고 확실히 말할 수는 없어.”
“……아.”
난 무엇을 기대했던 걸까.
지호의 고개가 저절로 슬그머니 숙여졌다.
“하지만, 앞으로 좋아질 것 같긴 해. 네가.”
“……!”
그러나 이내 그의 이어진 말에 그녀의 고개가 다시 발칵 위로 올라왔다. 재인은 잠시 뭔가를 고민하다가 다시 입술을 열었다.
“그래서, 그런데. 너만 괜찮다면.”
그의 목울대가 한번 움직이는 그 순간, 그녀의 심장은 셀 수 없이 뛰고 있었다.
“만나, 볼래?”
평소의 그와는 달리 아주 조심스럽게, 작은 고양이를 대하듯 말하고 있는 그의 귀가 조금은 빨개져 있었다. 그리고 지호는 목까지 아주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역시 평소의 그녀와는 달리 아주 수줍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럼……. 오, 오늘부터 1일 해요.”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