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차원의 기독교는 하느님의 나라가 정말로 있다고 주장합니다. 어디에 있다고 할까요?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있다고 합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아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앞에서 말한 「도마복음」에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그 나라는 여러분 안에 있고, 또 여러분 밖에 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내 속에, 그리고 내 이웃의 속에 있다는 뜻입니다. 이 복음서는 계속해서 내 속에, 그리고 내 이웃의 속에 있는 하느님의 나라, 곧 하느님의 임재를 ‘깨달으라’고 합니다. 이렇게 될 때 하늘과 나와 내 이웃이 ‘하나’ 되는 경험을 할 수 있고, 이것이 진정으로 하늘나라의 삶을 사는 것이라 가르칩니다. 오늘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천국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요.
--- p.40~41
생각해봅시다. 고통당하고 있는 동료 인간들을 외면한 채 나 먼저 천국에 들어가려고 애를 쓴다면, 설령 외면하지 않고 도와준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내가 천국 가는 데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하는 일이라면, 이보다 더 이기적이고 반종교적인 마음가짐이 어디 있겠습니까? 천국이란 결코 이런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닐 터이고, 또 이런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면 어찌 그런 곳이 천국일 수 있을까요?
--- p.43~44
어떤 역사, 과학, 사회, 정치 분야의 학문적 발전은 모두 하느님을 빼고 설명하려 노력한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분야의 질문에 대해서 그 대답으로 하느님의 이름을 갖다 대면 이성과 지성의 활용 자체가 무의미해집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 p.50
저는 성경뿐 아니라 모든 경전은 transformation(변혁)을 위한 것이지 information(정보)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역사적 사실이나 과학적 정확성은 성경 저자들의 일차적 관심이 전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피카소의 이상스러운 얼굴 그림은 인체 구조에 관한 생물학적 정보를 주려는 것이 아니라 보는 이들의 내면적 변화를 위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 p.80
자녀 다섯 명을 가진 아버지가 있다고 합시다. 그중 둘째 아들이 병이 났습니다. 그러면 그 아버지는 그 아들이 지금까지 자기에게 얼마나 효도했는가, 또 얼마나 열렬히 낫게 해달라고 자기에게 애원하는가에 상관하지 않고 무조건 그 아들을 병원으로 데리고 갈 것입니다.
이렇게 지상의 아버지마저 아들이 병들면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무조건 아들의 병이 낫도록 하려고 하는데, 어찌 우주를 다스리는 하느님이 자기를 열심히 믿는 사람, 자기에게 열렬히 기도하는 사람인가를 따져보고 그런 사람만 낫게 해주실까요. 만약 자기를 열심히 믿고 열렬히 기도하는 사람만 고쳐주는 하느님이라면 이런 하느님은 좀생이 하느님으로 인간의 경배를 받을 자격이 없을 것입니다.
--- p.96
그러면 이제 종교란 완전히 무의미한 것인가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종교에서 떠나는 것은 대부분 표층적인 종교가 종교의 전부라고 오해하기 때문이라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종교에서 심층 차원을 찾는 것입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목말라하는 것은 이런 심층 차원이 가져다줄 수 있는 시원함입니다.
--- p.179
내가 인도에서 태어났으면 십중팔구 힌두교인이 되었을 것이고, 스페인에 태어났으면 가톨릭을 믿었을 것이고, 독일에서 태어났으면 개신교인이 되었을 것이고, 사우디에서 태어났으면 무슬림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가 선택하지도 않고 그저 주어진 종교를 자신이 거기 속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조건 절대적 종교라고 주장하는 것은 마치 자기가 어쩌다가 백인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백인 우월주의를 주장하는 KKK 단원들의 태도와 뭐가 다를까요.
--- p.188
프란치스코 교황은 근본주의는 그 자체로 폭력적이라고 했습니다. 독선적으로 남을 폄훼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폭력적인 기독교 근본주의가 사라지려면 이웃 종교를 알아보고 이해해야 합니다. 남녀가 서로 사랑할 때 상대방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가를 아는 것이 필수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웃을 사랑한다면 이웃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느냐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p.197
숨 막힐 정도의 전통적 종교의 도그마에서 벗어나면 삶과 세계를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지금껏 당연히 여기던 것을 새롭게 보게 됩니다. 밤하늘의 무수한 별을 보고, 봄에 솟아나는 들풀 한 포기, 바람에 나부끼는 잎새 하나를 보고도 경이로움과 놀람을 느끼게 됩니다. 이처럼 사소한 일상의 일에서부터 광대한 우주의 ‘경이로운 신비(awesome mysteries)’를 하나하나 발견하며 외경과 환희와 황홀함을 체험할 수 있게 됩니다. 그야말로 ‘아하!’의 연속입니다.
--- p.201
첫째, 표층 종교는 지금의 나를 위하는 데 최대의 관심을 기울이는 종교인 데 반해 심층 종교는 지금의 나를 죽이고 내 속에 있는 참나를 찾으려는 것을 목표로 한다. 둘째, 표층 종교는 무조건적인 믿음을 강조하고 심층 종교는 이해와 깨달음을 중요시한다. 셋째, 표층 종교는 신이 하늘에 있고 인간은 땅에 있다고 하여 신과 인간을 분리하지만, 심층 종교는 신의 초월과 함께 우리 속에도 있다고 하는 내재도 강조하고 내 속에 있는 신이 결국 나의 참나라고 생각한다.
--- p.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