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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땅끝에 가고 싶다

해남 땅끝에 가고 싶다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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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7월 20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316쪽 | 542g | 135*200*30mm
ISBN13 9788998453749
ISBN10 8998453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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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38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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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장인(匠人)의 경지에 오른 예술가들이라도 좋은 기운을 받고 싶은 마음은 마찬가지신가 보다. 임권택 감독이 이곳에 머물 때 구상했던 작품들이 당시 전부 대박이 났었다는 이야기를 익히 들으셨으니, 꼭 한 번쯤 와보고 싶으셨을 게다. ‘아제 아제 바라아제’, ‘서편제’, ‘취화선’, ‘천년학’, ‘태백산맥’ 등 임권택 감독의 많은 대표 작품들이 해남에 있는 동안 구상하신 것이라고 한다. 실제 촬영도 해남에서 많이 이루어졌다. 이 작품들은 해외 유명영화제에서 작품상, 감독상 등을 휩쓸면서 임권택 감독을 세계적인 영화감독 반열에 우뚝 세워 놓았다. 이처럼 해남은 남도문화의 보고일 뿐만 아니라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창작의 원천이 되는 곳이다.
--- pp.59~60

무슨 얘기를 하다 보면 자주 앞에 해남의 바다나 풍경이 등장해 본론은 뒤로 밀려나고 새우며 멍게 맛이 일품으로 그녀 입을 통해 표현되었다. 침이 고일 정도였다. 아마도 내가 정신을 차리고 새우 맛에서 빠져나와, 그러니까 “사작나무 옆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데?” 하지 않았으면 얘기의 본론은 사라지고 없었을지도.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전달되는 그녀의 혀 밑에 저장된 숱한 해남 바다 맛을 밀치고 듣게 된 본론은 그녀가 자랐던 해남의 아름드리 사작나무 옆집에 살았던 할머니는 손자를 등에 업고 있었다고 했다. 한나절 내내 손자를 등에 업고 잘 지내던 할머니가 마당에서 멍게 손질을 하고 있던 며느리를 부르더니 등에 업고 있던 손자를 며느리에게 건네주고는 “나는 인자 가봐야겄다”면서 방으로 들어가더니 늘 그랬던 것처럼 낮은 베개를 찾아 베고 낮잠에 들 듯이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는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들려주었다.
--- pp.94~95

K화백과 함께 두륜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도 눈은 내내 쏟아졌다. 하얗게 뒤덮인 눈꽃의 세상에서 우리는 아이처럼 행복해했다. 발목까지 차오른 눈을 헤치며 진불암을 거쳐 만일암으로, 그리고 다시 천년수의 우람한 가슴에 번갈아 안겨본 다음, 우리는 눈밭에 수없이 엉덩방아를 찧어가며 간신히 대흥사 경내로 들어섰다. 마지막으로 천불전에 들르기로 했다. 경내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법당이었다. 천불전은 그날따라 인적 없이 고요하기만 했다. 법당 안에서 부처님께 삼배를 바친 뒤 우리는 반가부좌를 틀고 앉아 두 눈을 감았다. 평화. 법당 밖에선 눈이 하염없이 내리고, 법당 안엔 가없는 평화가 눈송이처럼 가득히 내리고 있었다. 순간 나는 그렇게 두 눈을 감은 채 그 하염없는 평화 속에서 영원히 머물고 싶었다.
--- p.156

땅끝이라는 지명이 풍기는 말맛은 미묘하다. 얼른 듣기에는 ‘세상의 끝’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기 쉽다. 그래서 절망적인 상황에 빠진 사람들을 강렬하게 유인하는 힘이 있다. 구차한 삶을 내려놓기에 최적일 것 같은 자살 충동을 발동시킨다. 그러나 막상 그러한 충동을 실천에 옮기려고 찾아가면 정반대의 의미로 다가온다. 끝은 시작의 반대말이 아니라 같은 말이라는 사실이 그것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땅끝은 한반도의 종점이 아니라 출발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섣부른 자살 충동으로 찾아간 사람들이 절망이 아닌 새로운 희망을 얻어 돌아오는 곳이 땅끝이다. ‘세상의 시작’이라는 전혀 다른 의미 말이다.
--- pp.176~177

해남에서도 나는 미륵불과 마애불을 찾았다. 연당리의 미륵, 신안리의 석불입상, 남천리의 미륵을 보았고, 두륜봉 꼭대기에 있는 대흥사 북미륵암의 마애여래좌상 앞에서도 오랜 시간을 보냈다. 큰 바위 면에 10세기에 새긴 것으로 추정되는, 법의를 착용하고 연화좌 위에 가부좌를 결하고 촉지인을 취하고 있는 부처의 좌상. 부드러운 윤곽, 큼직큼직한 이목구비, 둥글고 부드럽게 처리된 어깨, 생동감 넘치는 대좌의 연꽃, 신체의 굴곡을 따라 자연스레 처리된 법의 자락. 그 앞에서 나는 머릿속이 단순해지다 못해 멍해지면서 나 자신을 잊었고, 그와 함께 내 몸은 그저 초라하고 스산한 한 덩어리의 진흙이 되어버렸다.
--- pp.297~298

대학에서 정년퇴임을 하고 한동안 뜸했던 해남행은 최근 나와 함께 시공부를 하는 몇몇 시인들과 동행함으로써 새로운 해남의 명소를 알게 되었다. 그곳은 바로 송지면 송호리에 자리한 ‘인송문학촌 토문재’와 문내면 우수영의 법정 스님 생가터에 자리 잡은 ‘법정 스님 마을 도서관’이다. ‘인송문학촌 토문재’는 해남 출신 작가 박병두 박사가 사비로 지은 한옥으로 작가들의 집필실과 도서관으로 꾸며져 있고, ‘법정 스님 마을 도서관’은 해남군이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의 고현 광주지부장, 미황사 금강 스님의 고증과 조언을 받아 법정 스님 생가터에 지은 것이다. 이 마을 도서관은 그렇게 으리으리하지 않다. 평소 무소유를 설파하신 법정 스님의 정신을 살려 소규모로 아담하게 지었고, 전시품도 저서 14권, 찻잔 1점, 사진 2점으로 최소화했으며, 도서관 안에는 별도로 스님의 저서 70여 권이 따로 비치되어 있어 언제든지 꺼내서 읽어볼 수 있게 했다.
--- pp.303~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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