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장 직원은 마지막으로 동생에게 전할 말이 있느냐 물었다. 나는 소리 내서 “나중에 봐”라고 말했다. 나는 조금 더 즐기고 갈래. 세상이 얼마나 예쁜지도 보고, 세계 곳곳 다정한 사람도 만나고. 질투 날 정도로 멋지게 사는 것은 내 소원이자 동생의 소망이었다. 동생은 늘 나를 멋지다고 표현했다. 언젠가 “언니는 어떻게 나를 안 따라왔어?”라고 툴툴댄다면 “그러게, 같이 있자고 말했잖아. 바보냐?”라고 답할 테다. 훗날, 여동생과 팔짱을 끼고 걷다 보면 누군가 할머니와 손주냐고 물어보겠지. 그러면 활짝 웃어 보여야겠다. 손주가 나를 안 닮아 이렇게 예뻐요, 하고. ---「어느 자살 사별자에게」중에서
사회에서 요구하는 1인분의 삶을 살아야만 가치가 있다고 굳게 믿으며 살았다. 꼭 좋은 대학에 갈 필요는 없더라도 사람이라면 적성 하나는 꼭 찾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좋아하는 게 없는 사람은 어떻게든 좋아하는 걸 찾아야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세상을 다 꿰뚫은 듯 떠벌리고 다녔다. 서른이 되기 전 어느 것 하나 이루지 못하면 미련 없이 떠나야겠다는 얘기를 고등학생 때부터 했다. 몇십 년이나 살았는데 좋아하는 게 뭔지 모르고 잘하는 게 없는 사람은 멋지지 않으니까. 그런 말을 자랑이라고 하고 다니며 사람들에게 상처를 줬을 내가 이루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웠다. ---「어른의 쓸모」중에서
있는 그대로의 웃음을 마음껏 표출한 뒤부터 놀랍게도 자기 연민에 갇히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내가 원할 때 웃을 수 있다는 주체성이 이렇게 큰 힘을 발휘할 줄 몰랐다. 진심을 담아 웃을 때면 지나간 학교 폭력과 가정 폭력, 직장 내 따돌림과 동생을 떠나보낸 언니라는 입장이 사라졌다. 과거의 아픔에 얽매인 나는 흩어지고 그저 웃는 현재의 나만이 자리를 지켰다. 웃을 거리가 없을 때는 당연히 억지로 웃지 않았다. 그런 무심한 날이 훨씬 많았다. 연달아 실수했을 때, 모두가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느낄 때, 친구와 인연을 끊었을 때, 지인을 잃었을 때. 아픈 날이 훨씬 많은 인생이지만 그럼에도 웃을 만한 순간은 반드시 있었다. 그저 웃겨서 웃은 것뿐이다. 웃음에 자격을 부여하지 않는 것만으로 불행 울타리에서 한 뼘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있는 그대로의 웃음」중에서
부와 명예를 가진 사람은 신년 계획을 세우고 촘촘하게 짜인 계획을 이행하는 완벽한 계획파라고들 하지만, 할 일을 미루는 사람은 나태하다는 잔소리를 들을 가능성이 높지만, 지금 나는 미루는 데서 더 큰 용기를 얻는다. ‘미루기’라는 미학을 샅샅이 뜯어보면, 내일과 내년이라는 미래가 있음을 확신하는 사람이 내리는 결정이기 때문에. 내일 해도 좋고 모레 해도 개의치 않을 만큼 여유로운 태도를 지닌 사람이기 때문에. 언제든 바꿀 수 있고 언제든 시작할 수 있다는 자연스러운 희망이 묻어난 심리이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나를 위해 미루고 때로는 숨긴다.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애를 태우며 보기 싫은 것을 보고 듣기 싫은 것을 듣고 모든 일에 열정을 쏟아붓는 데 질렸다. 휴식을 취하며 힘이 충전될 때까지, 시간이 흘러 조금 더 이성을 차리고 객관적으로 사건을 바라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린다. ---「기약과 희망의 관계성」중에서
무엇보다 동생에게 해 주고 싶은 얘기였다. 너에게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선택지가 있어. 좌절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죽음뿐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거야. 너를 괴롭히는 가족이라면 멀어져도 돼. 취업에 번번이 실패해 이 길이 아닌 것 같다면 창업을 하면 되고, 돈을 많이 벌지 못할 것 같은 불안에 시달린다면 적은 돈으로 생활하는 방법을 택한 뒤 미래를 기대하는 방식을 접지 않으면 돼. 이것도 생각의 틀이 협소한 내가 하는 말이니 모두 무시해 버려. 다만 네가 해야 할 일은 꿋꿋하게 살아서 감춰진 너만의 선택지를 발견해 고르는 일이라고. ---「자살이라는 말버릇」중에서
타인은 공감하지 못할 고민이라 생각해 마음을 닫은 사람들이 만일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온 힘을 다해 눈을 살며시 뜨기를. 당신의 아픔에 귀 기울이며 선뜻 애정을 베풀 우물을 지닌 사람들이 가득함을 기억해 주기를. 당신이 유리에 부딪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해 당신을 찾지 못했던 것이지, 상처를 조금만 열어젖혀도 사람들은 당신의 곁에 머물며 기꺼이 우물을 내보일 테니. 우리에게는 모두 우물이 있음을 잊지 말아 주기를. 물론 당신에게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