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위기’란 구체적으로는 인문서가 팔리지 않는 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인문서라고 하면 문학, 철학, 역사, 사회과학 같은 책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것들이 팔리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히 인문서를 내는 출판사에게는 위기라 하겠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의문이 있습니다.하나는 현재 인문서가 팔리지 않는 것은 분명하지만, 과거와 비교했을 때는 어떠한가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문서가 팔리지 않는 것이 사회에, 그리고 인간에게 위기인가 하는 것입니다.”
“가라타니 선생은 어디선가 공적 스승과 사적 스승을 구분한 적이 있다. 이에 따르면 선생은 우리에게 사적 스승이다. 따라서 우리와 선생 사이에는 어떤 이해관계도 없다. 졸업장(학위)이나 취업 같은 것과 무관하다. 그런데 ‘이해관계가 없는 배움’이란 다른 말로 선생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선생의 사상을 추종하고 전파하기 위해 의기투합한 것이 아니다.”
“가라타니 고진은 또한 거대한 것보다는 작은 것들을 선호한다. 이는 그가 수직적인 것보다는 자유롭고 수평적인 것을 선호한다는 사실의 또 다른 측면으로 볼 수 있다. (중략) 집단적 삶에 대한 가라타니 고진의 상상력은 홉스의 리바이어던적 상상력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이 점에서 가라타니의 기본 기질은 아즈마 히로키보다는 야마자키 료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아사다 아키라는 이러한 가라타니의 사고실험에 대해 언어의 내부에서 언어로 사고하여 언어의 외부로 나가기 위한 투쟁의 패전 기록이라고 했다. 앞서 소개했듯 가라타니는 후루이의 문학적 시도를 ‘내면으로의 길’을 통해서 ‘외부로의 길’을 모색하기 위한 ‘방법적 회의’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후루이의 소설을 ‘나의 내부에서 나에 대해 사고해서 나의 외부로 나가기 위한 투쟁의 기록’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NAM의 창립, 해체, 회고, 재구축이라는 현실적 부침의 궤적을 따를 때, NAM의 원리는 절망을 포기하지 않게 하는, 절망의 ‘실험’을 지속하게 하는 희망, 오직 그런 한에서만 ‘희망의 원리’라는 이름에 값하는 희망일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그런 희망 혹은 실험 속에서 가라타니의 현재는 ‘말년의 양식’을 이뤄가고 있다. 그러하되 NAM적인 것 또는 이소노미아적인 것의 확대를 위한 실험의 대상, 내용, 의지는, 간간히 들리는 말과는 달리, ‘결코 알기 쉬운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실험이 ‘도래하는 것’에 대한 응답/책임의 근원이자 결과이기 때문이다.”
“가라타니에게 ‘읽는다는 것’은 이처럼 자기지시적인 역설이다. 그것은 또한 ‘가라타니를 읽는다는 것’이다. ‘가라타니를 읽는다는 것’은 가라타니에게 가라타니를 읽는다는 것이며, 그러한 가라타니를 독자인 내가 읽는다는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탐구』에서 언표행위의 위치는 가르치는 자 곧 ‘선생’이다. 선생은 반복하는 사람이지만, 똑같은 것을 가르친다는 데서 은연중에 반복을 강조하는 사람이다. 선생은 선생 자신이 쓴 것을 읽는 존재, 자기가 말한 것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현재 한국문학은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들이 근대문학에 의해 추방당한 ‘문학이라는 요괴’인지는 의문이다. (중략) 지금 생각하면 가라타니 자신이 한국과 일본의 문학계 · 철학계를, 아니 세계를 배회해온 요괴인지도 모른다. (중략) 사실 대중문화계만큼이나 유행이 빠른 곳이 문학계나 인문학계다. 하지만 그가 던진 질문은 여전히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다. 마치 요괴처럼, 가능한 문학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언젠가 누군가로부터 선생에 대해 상대에게 호통을 치는 거만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해다. 선생이 타인을 감정적으로 대하는 일은 전혀 없었다. 다만 강의 도중 갑자기 화를 내시는 경우는 있었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것은 폴 드 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였다. 드 만이 젊은 시절 나치를 지지하는 글을 썼다는 이유로 부당한 공격을 당한 일에 대해 마치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크게 화를 내셨다.”
“놀라운 일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가라타니 선생과 직접 메일을 주고받게 되었던 것이다. 더구나 선생은 시간이 되면 한 번 만나자고까지 말씀해 주셨다. (중략) 신오사카에 있는 한 호텔 레스토랑에서 히로세 요이치 씨와 함께 가라타니 선생과 사모님을 뵙고 식사를 했다. 그때 나는 살다보니 이런 일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중략) 아직도 내 머리 속에 생생히 남아 있고 앞으로도 오래 기억될 것이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