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체계 자체의 서술을 통해서 정당화되어야 할 터이지만 나의 견해에 따르면 일체의 관건이 되는 문제는 참된 것을 실체로서가 아니라 또한 주체로서도 파악하고 표현하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실체성은 보편자 또는 지의 직접성을 내포하고 있고 또한 그에 못지않게 존재 또는 지에 대한 직접성인 것 역시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 더 나아가 생동하는 실체는 참으로 주체인 존재, 또는 같은 말이지만 그 실체가 자기 자신을 정립하는 운동인 한에서만 또는 자기 자신과 자기 타자화의 매개인 한에서만 참으로 현실적인 그런 존재이다. 주체로서의 실체는 순수하고 단순한 부정성이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단순한 것의 분열이다. 또는 그런 실체는 (자신을 자신과) 대립시키는 이중화인데, 이런 이중화는 다시 이렇게 아무런들 상관없는 상이성과 그 양자의 대립에 대한 부정이다. 근원적 통일 그 자체나 직접적 통일 그 자체가 아니라 오직 이렇게 스스로를 재구축하는 동일성만이 또는 타자 존재 속에서 자기 자신 안으로의 반성만이 참된 것이다. 참된 것이란 자기 자신의 생성이며, 자신의 종착점을 자신의 목적으로 전제하면서 출발점으로 삼고서는 오직 자신을 수행하여 종착점에 도달함으로써 비로소 현실적으로 되는 원환이다.”
--- pp.15∼16
“지금까지 논한 것으로부터 도출되는 여러 귀결 중에서 다음과 같은 점을 부각시킬 수 있다. 즉, 지는 오직 학문으로서만 또는 체계로서만 현실적이고 또 서술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른바 철학의 근본 명제나 원리는 설사 참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근본 명제나 원리라는 바로 그 이유만으로도 이미 또한 거짓이다. ─ 그렇기 때문에 근본 명제를 반박하기란 손쉬운 일이다. 반박은 그것의 결함을 내보이는 데에 있다. 그런데 근본 명제는 단지 보편적인 것, 원리, 시원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미 결함을 지니는 것이다. 근본 명제에 대한 반박이 철저하다면, 그것은 근본 명제 자체로부터 취해서 전개되는 것이지 그에 대립하는 단언이나 착상을 통해 외부로부터 실행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반박이 자신의 부정적인 측면에만 주목할 뿐이지 자신의 진행과 결과를 긍정적인 측면에 따라서 의식하지는 못하는 자기 오해에 빠지지만 않는다면, 반박은 실은 반박되는 근본 명제의 전개이고, 따라서 그것의 결함을 보완하는 것이다.”
--- pp.21∼22
“자연적 의식은 단지 지의 개념이나 비실재적 지에 불과하다는 점이 밝혀질 것이다. 그렇지만 자연적 의식은 오히려 자신을 직접 실재적 지로 여기는 까닭에 이러한 도정이 자연적 의식에게는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며, 개념을 실현하는 것이 자연적 의식에게는 오히려 자기 자신의 상실로 간주된다. 왜냐하면 자연적 의식은 이 도정에서 자신의 진리를 상실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도정은 의심의 길 또는 더 본래대로 말하자면 절망의 길로 간주될 수 있다. … 의식이 이와 같은 도정에서 거쳐 가는 형태들의 계열은 오히려 의식 자신이 학문을 향해 나아가는 도야의 상세한 역사이다.”
--- pp.78∼79
“자기의식이 자기의식에 대해 있다. 이를 통해 비로소 자기의식이 실로 존재한다. 왜냐하면 그럼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타자 존재 속에서 자기 자신과의 통일이 자기의식에 대해 생성되기 때문이다. … 이로써 우리에 대해서는 이미 정신의 개념이 현존한다. 의식에 대해 앞으로 일어나는 일은 정신이 무엇인지에 대한 경험이다. 정신은 대자적으로 존재하는 상이한 자기의식들이라는 자신의 대립이 지닌 완전한 자유와 자립성 속에서 그것들의 통일인 절대적 실체, 즉 우리인 나이자 나인 우리이다. 의식은 정신의 개념인 자기의식에서 비로소 감각적 차안(此岸)의 다채로운 가상과 초감각적 피안의 공허한 밤에서 벗어나와 현재의 정신적 대낮으로 들어서는 전환점을 얻게 된다.”
--- p.177
“여기서 목표는 우리에게 이미 발생한 개념, 즉 다른 자유로운 자기의식 속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고 또 바로 그런 가운데 자신의 진리를 지니는 승인받은 자기의식이다. 이러한 목표를 그 실재성에서 받아들인다면, 또는 이런 아직 내면적인 정신을 이미 자신의 현존재로 성장한 실체로서 끌어올린다면, 바로 이 개념 속에서 인륜성의 왕국이 개시된다. 왜냐하면 인륜성이란 오직 개인들의 자립적 현실성 속에서 그들의 본질의 절대적인 정신적 통일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즉, 인륜성은 즉자적으로 보편적인 자기의식이다. 이때 즉자적으로 보편적인 자기의식은 다른 의식 속에서 스스로에게 현실적이어서, 타자의 의식이 완전한 자립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또는 타자의 의식이 이 자기의식에 대해 하나의 사물이면서도, 바로 그런 가운데 자기의식이 타자의 의식과의 통일을 의식하고 있고 또한 이러한 대상적 본체와의 통일 속에서 비로소 자기의식이 된다.”
--- p.340
“정신은 실체이자 보편적이고 자기 동일적이면서 지속적인 본질이고, 만인의 행동을 위한 굳건하고 해체되지 않는 근거이자 출발점이며, 모든 자기의식들의 사유된 즉자로서 만인의 목적이자 목표이다. ─ 이런 실체는 이에 못지않게 각자 모두의 행동을 통해 그들의 통일이자 동일성으로서 산출된 보편적 작업 성과이다. 왜냐하면 이 실체는 곧 대자 존재, 자기(自己), 행동이기 때문이다. 실체로서의 정신은 흔들리지 않은 올곧은 자기 동일성이다. 그러나 대자 존재로서의 정신은 해체되고 스스로를 희생하는 자비로운 본질인데, 이런 본질에서 각자는 자신의 고유한 작업을 완수하면서 보편적 존재를 산산이 찢어 그로부터 자신의 몫을 취한다. 이러한 본질의 해체와 개별화는 바로 만인의 행동이자 자기(自己)라는 계기이다. 이런 만인의 행동이자 자기라는 계기가 곧 실체의 운동이자 영혼이고 작동된 보편적 본질이다. 실체가 자기(自己) 속에서 해체된 존재라는 바로 그 점에서 실체는 죽은 본질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생동하는 것이다.”
--- p.425
“화해의 말은 현존재하는 정신인데, 이러한 정신은 자신의 반대편 속에서, 즉 절대적으로 자신 안에 존재하는 개별성으로서의 자신에 관한 순수한 지 속에서 보편적 본질로서의 자기 자신에 관한 순수한 지를 직관한다. 즉, 이러한 정신은 상호 승인인데, 이것이 바로 절대 정신이다. … 두 자아가 그들의 대립하는 현존재를 내려놓는 화해의 ‘그래’는 이원성으로 확장된 자아의 현존재인데, 그 속에서 자아는 자기 동일적으로 유지되고 또 자신의 완전한 포기와 대립 속에서 자기 확신을 지닌다. 그것은 자신을 순수한 지로 인지하는 자아들 한가운데에서 현상하는 신(神)이다.”
--- pp.650∼652
“이런 정신의 최종적인 형태는 자신의 완결되고 참된 내용에 동시에 자기(自己)라는 형식을 부여하고 또 이를 통해 자신의 개념을 실현하는 것 못지않게 또한 이렇게 실현하는 가운데 자신의 개념 속에 머무는 그런 정신이다. 이런 정신의 최종적인 형태가 곧 절대지(絶對知)이다. 절대지는 정신 형태 속에서 자신을 인지하는 정신 또는 개념적으로 파악하는 지이다. 진리는 단지 즉자적으로 확신과 완전히 동일한 것만이 아니라 또한 자기 확신이라는 형태도 지니고 있다. 또는 진리는 그 현존재 속에, 다시 말해 인지하는 정신에 대해 자기 자신에 관한 지라는 형식 속에 존재한다. 진리가 곧 내용인데, 이런 내용이 종교에서는 아직 자신의 확신과 동일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동일성은 내용이 자기(自己)라는 형태를 획득하는 데에 있다. 이를 통해 본질 자체인 것이 현존재라는 요소 또는 의식에 대한 대상성이라는 형식이 되었다. 이것이 곧 개념이다. 이러한 요소 속에서 의식에게 현상하는 정신이, 또는 여기서 같은 말이지만, 이런 요소 속에서 의식에 의해 산출되는 정신이 바로 (정신현상학이라는) 학문이다.”
--- p.7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