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그리스도교는 그 각각이 출현했던 역사 배경과 지리 환경, 민족 기질, 문화 전통 등에서 많은 차이가 있어요. 세계관이나 인생관도 색깔이 달랐죠. 때로는 같은 주제에 대해 정반대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이질적인 두 사상이 부딪혔으니 긴장과 갈등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철학자의 시선에서 보자면 그리스도교는 허무맹랑하고 허점투성이 종교였어요. 대개는 무시하고 지나갔지만, 어떤 철학자들은 조목조목 논박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그리스도교로서도 철학이 그리 달갑지 않았어요. 여태 듣도 보도 못한 이론을 들고 나와서 자신의 믿음을 공격해대니 당혹스럽기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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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그런 점에서 플로티노스는 플라톤의 정신을 충실히 계승하고 있죠. 플로티노스 이후로 플라톤 사상은 언제나 그의 해석이 덧씌워진 상태로 이해되었어요. 중세가 알았던 플라톤, 르네상스 시대와 근대에 전해진 플라톤은 모두 플로티노스가 바라보고 해석해 놓은 플라톤이었어요. 특히 그의 사상은 그리스도교 교리와 비슷한 점이 많았어요. 실제로 그리스도교 교부들은 플로티노스의 이론을 바탕으로 교리를 체계화하기에 이릅니다. 플로티노스가 전해준 플라톤 사상은 장차 그리스도교의 철학적인 뼈대가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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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물을 보는 건 빛 때문이에요. 태양이 사물을 비추고, 사물이 그 빛 속에서 드러나기에 그것을 볼 수 있습니다. 빛이 사물의 인식을 가능하게 해주죠.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이데아 인식에서도 그런 작용을 하는 게 있다고 해요. 바로 하느님이 비추어주는 빛입니다. 여기서 ‘빛’은 상징적인 의미인데, 하느님의 본성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은 진리의 빛이고 사랑의 빛이죠. 하느님은 빛으로서 자기 정신 속에 있는 이데아를 비춥니다. 그리하여 이데아는 빛 속에 드러나게 되고, 우리 지성은 그 빛 속에 들어섬으로써 이데아를 볼 수 있고 진리를 인식
할 수 있다는 거예요.
--- p.128
사람’에서 일치한다는 건, 실재론자들이 말하듯 ‘사람’에 대응하는 어떤 본질적인 실재가 있고 그것을 공유한다는 의미예요. 아벨라르두스는 일찌감치 이 생각을 버렸습니다. ‘사람임’에서 일치한다는 건,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사람인 한에서 다른 사태들과 동일한 연관 속에 놓인다는 걸 말하는 거죠. 서로 다른 사람이지만, 그들이 사람인 한에서 맺는 사태의 관련성은 같다는 말입니다. 바로 그 이유로 그들을 똑같이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거예요. 아벨라르두스는 이 연관성이, 각각의 개별자를 보편적 술어로 부르게 하는 ‘공통된 원인(causa communis)’이라고 불렀어요.
--- pp.280~281
천사 중에 그렇게 강렬한 사랑의 아이콘이 있어요. 바로 천사 ‘세라핌(Seraphim)’입니다. 세라핌은 하느님을 찬양하는 천사예요. 하느님을 향한 열정으로 불타올라 그 외의 모든 것을 포기했죠. 그 사랑이 어찌나 강렬한지, 세라핌의 말소리를 듣기만 해도 그 말을 들은 사람은 하느님을 향한 불길에 같이 사로잡힌다고 해요. 하느님에게 이르는 여정을 인도하는 보나벤투라의 ‘사랑’과 ‘정감’은 세라핌의 열망과도 같은 것이었죠. 그는 하느님을 향한 사랑의 화신이었어요. 그래서 중세 교회는 ‘세라핌적 박사’라는 명예로운 호칭을 그에게 부여했습니다.
--- pp.376~377
아퀴나스는 그렇지 않다고 해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창조는 하느님의 자유로운 의지에 근거합니다. 어떤 세계를 창조할지, 어떤 시점에 창조할지, 심지어 창조할지 말지, 이 모든 게 하느님의 자유입니다. 따라서 창조된 세계는 필연적인 세계가 아니에요. 영원히 존재할 필연성도 없고, 시간적 시작이 있어야 할 필연성도 없습니다. 필연성이 없으니 철학적으로 입증할 수도 없어요. 하느님은 영원한 세계를 창조했을 수도 있고, 시간적 시작이 있는 세계를 창조했을 수도 있고, 심지어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다른 형태의 세계를 창조했을 수도 있다는 거죠.
--- p.424
실제로 중세 그리스도교 철학은 오캄에게서 종말을 고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어떤 실패나 좌절을 의미하는 건 아니에요. 신앙과 이성의 분리를 달리 보면 이성이 신앙에서 해방되어 독자적인 앎을 추구하는 길로 나아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오캄의 제자들은 이 길을 ‘현대의 길(via moderna)’이라고 불렀어요. 그들이 말하는 ‘현대’는 오늘날 우리가 ‘근대(modern)’라고 부르는 시기죠. 아니나 다를까 근대 학문은 이성의 자율성을 신뢰하고 경험 세계에 몰두하며 오캄이 예견했던 길을 꽃피웠습니다. 자연과학이 발달했고, 이성적 합리성을 진리의 척도로 여기는 철학들이 줄줄이 출현했어요. 그 모든 게 우리 시대까지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죠. 그런 점에서 14세기의 선구자였던 오캄의 정신은 지금도 생기있게 살아 숨쉬며 우리 자신의 모습을 이루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 p.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