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즉통(窮則通)’이라고 한다. 《주역》 〈계사전〉에 나오는 말이다. ‘궁즉통’의 원문은 이렇다.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 간다(窮則變 變則通 通則久)”는 말은 ‘궁지에 몰리면 길이 생긴다’는 뜻으로 흔히 쓰인다. 아주 틀린 해석은 아니지만, 원문의 뜻과는 차이가 있다. 원문에 등장하는 ‘궁(窮)하다’는 사태의 변화가 끝까지 갔다는 뜻이다. 여름이 깊어지면 점점 더워지지만, 여름이 끝까지 가면 가을이 와 서늘해지면서 성질이 바뀐다. ‘궁하면 변한다’의 원래 뜻이다. 뜨거운 열기가 고통이었다면, 그 고통의 시간이 끝까지 가면 서늘함으로 바뀌어 고통의 시간이 끝난다. ‘변하면 통한다’의 원래 뜻이다.
---「1. 궁하면 통한다? 궁하면 변한다!_〈결박된 프로메테우스〉」중에서
사주는 팔자(八字)라는 이름처럼 여덟 글자로 구성돼 있다. 여덟 개의 자리에 다섯 개의 기운이 배치되려니 오행이 골고루 배치되기란 불가능하다. 뭔가가 많으면 다른 뭔가는 적기 마련이다. 어떤 오행은 너무 많이 나타나기도 하고, 어떤 오행은 아예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주에는 토(土)가 무려 여섯 개였던 반면에 화(火), 수(水), 금(金)은 아예 없었다.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오행들이 때로는 서로를 더욱 강화하고, 때로는 무력화시키는 상호작용을 벌이며 사람의 성격을 결정한다. 그리고 그 성격이 운명을 만들어간다.
---「2. 신이 보낸 악은 피할 방법은 없다?_〈테바이를 공격한 일곱 장수〉」중에서
아가멤논은 고작 바람나서 집 나간 여자 하나를 찾으러 가면서 제 딸을 죽이고 수많은 사람들을 전쟁터에 끌고 가는 만행을 저질렀다. 지난날을 돌이켜보던 노인들은 착잡하다. “고난을 통해 지혜를 얻지. 운명은 정해진 길을 가기 마련이니, 내일이면 알게 될 일을 오늘 미리 알아 무엇 하리오.” (…) 제동장치가 작동하지 않으면 사화(巳火)의 자기과시는 오만함이 된다. 아가멤논은 이미 자기과시를 넘어 오만으로 치달았다. 딸을 희생시키겠다고 결심한 순간,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말았다. 더 이상 원칙(경금, 庚金)은 설 자리를 잃고 오로지 자신의 욕망만 남아, 딸을 제물로 바치면서 입까지 틀어막는 만행을 저지른다. 오만은 파멸로 가는 고속도로다. 노인들은 이미 경고했다. “오만은 오만을 낳는다.”
---「3. 복수의 악순환을 끊으려면_〈아가멤논〉」중에서
엘렉트라는 자신의 불행이 한도 끝도 없다고 한탄하지만 “안락한 생활을 위해 아버지를 욕되게 할 수 없다”며 비탄을 멈추지 않는다. 복수를 하지 않는다면 ‘인간애’, ‘법의 정의’ 같은 말은 설 자리를 잃으니 말이다. 남들이 걱정해줘도, 말려도 소용없다. (…) 이 마음을 아버지를 향한 효성이나 죽은 사람에 대한 의리라고 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냥 똥고집 아닐까? 아무도 못 말리는 고집. 딱히 뭘 어떻게 해보겠다는 계획도 없다. 그저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내 마음대로 할래”다. 처음부터 멋대로 하게 맡겨뒀더라면 다른 사람들 마음에 쏙 드는 방법을 찾았을 텐데, 못하게 하니까 기어이 하겠다고 덤비는 꼴이다. 이런 고집을 부르는 힘은 비겁(比劫)이다. 비겁은 비견(比肩)과 겁재(劫財)를 합쳐서 부르는 말이다. 비겁은 일간과 같은 오행이다. ‘어깨를 견주다’는 뜻의 비견은 그중에서도 음양까지 같고, 겁재는 음양은 다른 글자다.
---「4. 정의를 실현하면 행복해질까?_〈엘렉트라〉」중에서
타고난 사주팔자는 물론 중요하지만 살면서 마주하는 대운과 세운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여름을 살기에 적합한 사주를 타고났는데 대운에는 겨울 기운이 가득하다면, 수영복만 입고 한겨울을 나는 기분으로 인생을 살아야 한다. 반면 수영복만 입고 태어난 팔자인데, 대운이 여름 기운이라면 폼은 좀 안 나더라도 먹고사는 데에는 아무 지장이 없는 인생이다.
---「5. 인정받지 못하는 수고_〈아이아스〉」중에서
대운은 월지에서 뽑기 때문에 누구나 50대에 월지에 충을 맞게 되어 있다. 월지는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힘이다. 이 힘이 충을 맞았다는 건 사회생활을 해온 동력을 상실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대부분 50대에 극심한 심리적 방황을 하고 은퇴를 한다. 하지만 생각을 조금만 바꿔보면 어떨까. 50세까지 사회생활을 이끌어온 힘을 상실했다면, 새로운 힘으로,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어쩌면 50대에 겪는 방황이란, 새로운 방식의 삶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면서 생기는 부작용이 아닐까?
---「6. 운명이 파멸을 낳는 순간_〈트라키스 여인들〉」중에서
아르테미스는 또한 히폴리토스에게도 말한다. “그대는 아버지를 미워하지 마라. 그대가 당한 죽음은 그대 자신의 운명이니라.” 아들은 끝내 아버지를 용서한다. “이 살인죄에서 제가 아버지를 놓아드릴게요.” 아들의 용서는 아버지에게 잘못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운명은 결국 자기 자신의 몫임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아르테미스가 말했듯, 히폴리토스를 죽인 건 아버지 테세우스의 저주가 아니었다. “너의 고결한 영혼이 네 파멸을 불러왔구나.” 성격이 운명이다.
---「7. 끝내 참지 못하는 욕망_〈히폴리토스〉」중에서
비극의 주인공들은 설령 잘못됐다 하더라도 자신의 선택을 끝까지 밀고 나가고 결과에 책임을 진다. 설령 그 결과가 파멸이라 하더라도. 크레온은 자신의 선택을 중간에 바꾼다. 어쩌면 영웅의 자질이 부족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영웅이란 보통 사람이 못 하는 일을 해냄으로써 위안을 주는 인물이니까. 대신 크레온은 다른 역할을 수행한다. 관객과 똑같은 사람으로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세상이 요구하는 매일매일의 일상에 얽매여 허덕이는 보통 사람으로서 고통에 휘둘린다. “인간은 삶의 무게와 고통을 얼마나 견디고 버텨야 하는지!”
---「8. 출세하면 행복한가?_〈안티고네〉」중에서
눈이 먼 오이디푸스는 자신을 추방시켜달라고 요구하며, 다만 마지막으로 딸들을 만나게 해달라고 애원한다. 딸들을 만난 오이디푸스는 근친상간으로 태어났다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살게 될 딸들의 불행을 슬퍼하며 자신의 고통이 딸들에게는 대물림되지 않기를 기원한다.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서 하루아침에 나락에 떨어진 오이디푸스를 보며 원로들은 말한다. “삶이 끝나 고통에서 해방될 때까지 인간 그 누구를 두고도 행복하다고 미리 말해서는 안 된다. (…) 테이레시아스는 오이디푸스에게 말했다. “그대의 말이 그대를 파멸로 이끈다.” 파멸이든 성공이든, 운명은 나 자신이 선택한 결과물이다. 오이디푸스가 라이오스를 죽이고 이오카스테와 결혼한 것은 ‘아비를 죽이고 어미와 동침한다’는 신탁 때문이 아니다. 생각보다 주먹이 앞섰던 오이디푸스 자신의 성격 때문이다.
---「9. 내 운명은 내가 결정한다_〈오이디푸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