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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0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264쪽 | 549g | 148*200*20mm
ISBN13 9791160110968
ISBN10 1160110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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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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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지막이 온 태풍이 가을비를 몰고 왔다. 비가 지나간 며칠 사이에 밭은 앙상해졌다. 벼르던 일을 해야 한다. 고춧대와 가짓대를 뽑아냈다. 오이 넝쿨을 걷고, 대나무 장대를 친친 감고 올라간 동부콩 넝쿨을 잘라 서리서리 말아 던졌다. 몇 포기씩 되지 않아도 그 잔햇더미는 부스스한 채 제법 컸다. 장화 신은 발로 꾹꾹 밟으니 힘없이 부러지고 납작해졌다. 찬란하게 한 철을 보낸 작물은 그렇게 떠났다. 그제야 빈 밭에 남은 지주목에 눈길이 머문다.
---「지주목」중에서

다이아몬드 알갱이를 마련하신 시어머니는 치매로 요양병원에 계시다. 가족의 중간에 선 나는 한 손으로는 고령의 시어머니를 부축하고 다른 한 손에는 새 식구가 된 풋풋한 며느리의 손을 잡고 있다. 언젠가 잡은 손을 하나씩 놓아야 할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이 오면 잡은 손을 살며시 놓더라도 지금은 양쪽을 꼭 잡고 있다.
---「목걸이」중에서

화려한 진수식을 마치고 박수를 받으며 바다에 띄워졌지만, 대양으로 나가지 못하고 등대에서 보이는 그 자리에 닻을 내리고 멈췄다. 선주사가 잔금을 치르지 못해서 인수해 가지 못하고 있는 배, 선적할 화물의 양을 채우지 못하여 기다리는 배, 도크 정박 비용을 줄이려고 근해에서 대기하는 배. 선박마다 다양한 사정이 있지만 서 있어야 하는 이유가 배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니다.
---「서 있는 배」중에서

장남인 오빠가 엄마 곁에서 하룻밤을 보내던 날, 집에 가고 싶다고 간절히 말씀하셨단다. 임종복 차림에 간단한 인공호흡기를 목에 달고 들것에 실려 귀가하는 집주인을 꽃잎 지기 시작하는 목련과 발갛게 봉우리 맺힌 영산홍이 맞이했다. 오신 지 두 시간여 후에 엄마는 생애 가장 힘든 겨울을 보내고 봄볕 속으로 너울너울 날아가셨다.
---「그해 겨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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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웅숭깊은 시선이 닿은 주변의 사람과 사물, 현상들은 다각도의 사유를 통해 주제를 드러내는 소재가 되고, 그들의 이야기는 적절한 문장 배치와 구조를 통해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이로써 좋은 재료를 정성껏 다듬어 맛있게 요리한 음식을 예쁜 그릇에 담아낸 밥상과도 같은 글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렇게 완성된 글들을 엮으며 작가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잔치는 끝났는가” 아니면 “화양연화는 이제 시작인가” 독자들 역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지금은 옛 모습을 찾을 길 없고 희미해지고 빛이 바랬지만, 기억 속에서 여전히 살아있다고. 몸은 삐걱거리고 사회적 역할도 줄었지만, 살아온 나날의 기억이 남아있으므로 살 만하다고. 비록 그것이 “허우적대며 겪은 세월”일지라도 그로부터 깨달은 것, 아프기도 했지만 따뜻하기도 했던 시간들이 있기에 잘 살아갈 수 있다고. 그래서 ‘화양연화’는 이제 시작이다.
- 한혜경 (명지전문대 교수ㆍ수필가ㆍ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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