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소처럼 일했으나 이제 겨우 살 만하니 알츠하이머에 걸린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보살펴야 하는 늙고 약한 어머니를 보면서, 나도 그들처럼 되는 건 아닐까 두려웠다. 이렇게 일만 하다 내 삶을 끝내고 싶진 않았다. 나는 잠시 떠나 있기로 했다. 케이크에 여섯 개의 기다란 초를 켜놓고 판에 박힌 생일축하 노래를 듣는 대신, 혼자서 조용히 내 삶을 돌아보고 싶었다.
누구의 딸도, 누구의 엄마도 아닌 온전한 나로서 ‘지금, 그리고 영원히’ 나를 지켜내고 싶다.
“누구세요?”
물었는데, 오히려 그쪽에서 같은 질문이 돌아왔다.
“누구세요?”
대체 무슨 상황이지…?
닫힌 문을 사이에 두고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국의 도시에서 웬 낯선 남자들이란 말인가. 혹시 여행자들을 노린 신종 범죄? 신고해야 하나…. 머릿속으로 수상쩍은 생각들이 오갔다.
현지인보다 여행자들이 많은 곳, 상벤투 역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매일 아침 눈을 뜹니다. 떠나고 도착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어디에도 닿지 못하는 사람을 생각합니다.
안개 속에서도 사람들은 떠나고 도착합니다. 여행 중에도 어떤 날은 행복하고 어떤 날은 슬픕니다. 어제는 도우로 강 부근에서 파두 공연을 봤습니다. 노래하는 여가수보다 늙은 기타리스트의 굳은살 배긴 손가락을 오래도록 바라보았습니다. 음악에 젖어 좀 더 슬프고 싶었습니다.
나는 날마다 구글맵으로 길을 찾아다닙니다. 어쩌면 내가 찾는 것은 호두 속에 난 길인지도 모릅니다.
트램은 아슬아슬하게 주차를 해놓은 차량들과 카페 야외테이블에 앉아 와인과 맥주,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 사이를 천천히 지나갔다. 코끝을 스칠 듯 지나가는 트램에도 그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다리 위에 서 있는 동안 메트로가 세 번 지나갔다. 해가 완전히 기울고 어두워지자, 강 아래 건물들에 하나 둘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불빛을 받아 강물이 반짝였다. 밤의 포르투는 더욱 아름다웠다. 떠나려니 더 살갑고 다정하게 구는 못된 애인처럼.
그 누구도 나를 따라올 수 없게 하는 방법 중 하나는 내가 그들보다 뒤처져서 걷는 것이다.
검은 보자기를 덮어도 빛을 향해 고개를 쳐드는 콩나물처럼 딸도, 나도 빛을 향해 걷는 사람이었으면 했다. 오늘처럼 해가 보이지 않는 날에는 내 안의 해를 끄집어내서라도…. 살고 싶어. 살고 싶어. 신발 속에서 발가락들이 꿈틀거렸다.
젊은 커플이 식사를 끝내고 나가다가 내 앞으로 오더니 큰소리로 외쳤다. “부엔 카미노!” 순간 눈물이 쏟아질 뻔했다. 땀과 먼지로 얼룩진 커다란 배낭을 내려놓은, 누가 봐도 꼬질쪼질한 순례자인 나에게 그들이 건네는 따뜻한 한마디는 내가 먹었던 어떤 음식보다 따뜻하고 맛있는 양식이었다.
어느 전통 있는 빵집은 오랫동안 맛을 유지하는 비결이 있다고 한다. 전날의 밀가루 반죽에서 한 덩어리를 남겨 다음날의 반죽에 섞는다는 것이다. 할아버지가 떠나면 아버지가, 아버지가 떠나면 그 아들이 반죽을 이어간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 먹고 있는 빵 속에는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손맛이 섞여 있다는 것이다.
포르투갈은 느낌표가 많은 나라다. 아름다운 풍경이 그렇고, 맛있는 빵과 해산물이 그렇고, 친절하고 우호적인 사람들이 그렇다. 이들은 심지어 수도꼭지조차도 느낌표 모양으로 만들 줄 아는 센스를 지녔다. 작지만 느낌이 있는 사람들. 아침 일찍 걸으며 “본 디아!”를 외치면 각각 다른 방법으로, 따뜻하게 인사해주는 사람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소박한 다리를 놓을 줄 아는 사람들이다.
“밥 한 번 먹자”는 말은 지금 먹자는 뜻이다. 지금 보고 싶다는 뜻이다. 나중은 오지 않을 수도 있으니.
구불구불한 해안길을 4km나 더 걸어야 했지만, 집채만 한 파도에 눈을 빼앗겨가며, 바닷가에 핀 들꽃들에 눈을 맞추기도 하며, 때로는 카페콘레체 한 잔을 위해 카페에 오래 머물기도 하는 느린 하루. 어쩌면 나는 이런 여백을 위해 이곳에 왔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브리나는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해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하루하루 생명이 꺼져가는 아버지를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사브리나를 보면서, 어쩌면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 위에서 신발 끈을 고쳐 맬 때마다 다짐하곤 했다. 이대로 1킬로미터만 더 가자. 그게 안 되면 500미터라도. 그것도 안 되면 100미터라도 가자. 그것이 내가 삶을 이끌어온 방식이었다. 이제는 마음을 바꾸었다. 힘들면 쉬어가자. 스스로를 다그치지 말고 몰아붙이지도 말자. 그러자 걷다 멈춘 그곳에는 그동안 내가 보지 못했던 작은 풀꽃이, 벌과 나비 들이 있었다. 이제는 바삐 사느라 놓친 것들을 찬찬히 들여다볼 시간이었다.
누군가가 알베르게의 문을 두드렸다. 내가 문을 열어주자 커플인 듯한 두 중년의 순례자가 서 있었다. “베드가 있나요?” 남자가 물었다. 그들에게서 지독한 땀 냄새와 몸 냄새가 풍겼다. 나는 순간 나쁜 생각이 들어 베드가 다 찼다고 말할 뻔했다.
아버지가 몹시 위독한 상태라는 것을 알고 카미노를 그만두고 돌아가겠다고 하자, 그녀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계속 걸어라. 난 곧 떠날 사람이니, 넌 너의 길을 가거라.”
건강보험을 가지고 있지만, 아프고 늙어가는 우리도 어느 날 포도나무처럼 숨을 멈추게 될 것이다.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순간 떠오르는 얼굴은 몇이나 될까. 사무치는 얼굴 따위를 떠올리지 않으려고 아버지는 저렇게 기억을 하나씩 잃어가는 걸까.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발들의 들판이었다 물집 잡힌 발, 발톱 빠진 발, 까맣게 타들어간 발… 거리음악가가 대성당 앞에서 기타를 연주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닳는 발이 그곳에 있었다 순례자들은 그 발에 입을 맞추고 쓰다듬었다
여행은 사람이고 관심이다. 단지 풍경이 아름다워서 그곳을 찾는 게 아니라, 풍경 못지않게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어서 자꾸만 여행을 하게 되는 것이다.
절벽 끝에서 두 여자가 열렬히 키스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 뒤로 거대한 괴물파도가 몰려오는 것을 본 것도 같았다. 우리는 모두 인생이라는 파도에 몸을 실은 여행자이다. 어떤 불가능한 마음도 이곳에서는 받아들이지 못할 게 없을 것 같았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