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을 숨기지 못해 흐트러진 관계와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 비겁한 사람이 되었던 이야기. 좋아하는 마음이 싹트는 찰나와 이별을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 노래를 만들기 시작할 때의 벅참과 차고 넘치는 일 끝에 밀려온 허무함. 이 모든 기억을 다시 꺼내보니, 그 시간 속의 나는 반짝이고 있더라. 앞으로도 여전히 기뻐하고 슬퍼하고 가끔은 후회하겠지만, 숨을 쉬며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반짝이는 삶이라 생각해. 너를 빛나게 할 일들은 그리 멀리 있지 않아.
---「너는 여전히 반짝이고 있어」중에서
수많은 행성은 저마다 중력이 있고, 그 중력의 힘을 이용해 우주선은 이리저리 휩쓸리며 경로를 바꾸면서 여행한다. 그런 우주선의 모습이 우리 삶과 닮았다고 느꼈다. 인간에게도 중력 혹은 운명처럼 절대 거스를 수 없는 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가끔은 이런 거스를 수 없는 것들을 이용해 추진력을 얻어서 힘차게 살아갈 때도 있고.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어딘가에 닿게 되겠지. 그곳이 어디일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 힘을 거스르지 못해 음악을 만들고, 그 힘을 동력 삼아 음악을 만들며 살아간다.
---「우주선」중에서
나의 모든 순간은 그렇게 여집합의 사랑에 머물렀고, 늘 그렇듯 그 자리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때가 많았다. 그 모든 시간을 통과하며 알게 된 것이 하나 있다. 때때로 헛발질하는 사랑에도 의미가 있다는 것. 그녀를 사랑한 나의 모든 순간이 음표가 되어, 단어가 되어 누군가에게 닿았으니 말이다. 못 이룬 사랑이 아니었다면 내가 노래를 만들 수 있었을까. 혹여나 나와 같은 여집합에 속한 당신에게 말하고 싶다. 지난 사랑 때문에 더는 후회하지 않아도 된다고. 당신이라는 사람을 더 단단하게 만든 경험일 뿐이고, 후회라기보다 값진 시간이 될 것이라고.
---「여집합의 사랑」중에서
지금껏 나는 타인의 단편적인 일상을 보며 그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라 착각한 것은 아닐까. 누군가는 나의 SNS를 보면서 스트레스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SNS는 이미 현실과 다른 메타버스가 되어버렸다. 그 안에서는 대체로 잘 먹고, 잘 입고, 잘 웃으니까. 그러니까 SNS 안에 있는 친구들을 부러워하지 말자. 지금 이 순간 그들 역시 당신의 피드를 보고 부러워하며 ‘좋아요’를 누를지 말지 고민할 테니 말이다.
---「부럽지가 않아」중에서
내가 좋아한 사람은, 다른 곳을 바라보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 때문에 몹시 아파하거나 행복해했다. 그녀의 삶에서 나는 매우 비중 없는 역할을 맡았다. 내가 좋아한 사람은, 잘 웃는 사람이었다. 나를 보고 밝게 웃으면 나는 그 웃음에 괜한 의미를 부여하곤 했다. 그러다 마음이 깊어지면 더 아팠고. 내가 좋아한 사람은,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었다. 물리적 거리는 가까웠으나 마음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그 마음을 담아 노래로 쓰기 시작했다. “너를 사랑하지 않는 그 사람이 가끔 부럽기도 했”던 경험은 NCT 127의 〈나의 모든 순간〉으로, “행복한 너의 얼굴이 난 가장 힘들”었는데 그 기억은 샤이니의 〈방백〉으로 남았다. 그리고 시간을 되돌려 너를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은 온앤오프의 〈사랑하게 될 거야〉로 만들어졌다.
---「짝사랑의 보편성」중에서
가끔 너는, 그때의 너로 증명되고 싶은 듯 보여. 과거를 들추어봤자 혼자만의 감정싸움이 반복될 뿐인데. 지금 홀로 선 너를 증명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애써 그를 응원하는 감정을 갖지 않아도 좋아. 미련은 네 감정을 먹이로 삼아 자라니까 끌려가지 말자. … 못난 지난날은 그냥 떠나보냈으면 해. 후회의 감정은 당연하지만, 과거에 머무르지 않아도 돼. 하루 지난 만큼, 한 뼘 더 자란 마음을 보여줘. 부디 자신을 아껴줘.
---「차가운 응원 1」중에서
나는 이 기회에 좀 쉬라는 지인들의 조언을 받아들이기로 했고, 집에 틀어박혀 약간의 집안일 외에는 그 어떤 생산적인 일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딱 이틀을 보냈다. 하루는 살 만했다. 그래, 이렇게 쉬어줘야 제대로 사는 거지. 그런데 이틀째 아침이 되자마자 우울감이 가슴속에서부터 밀려왔다. 이렇게 세상에서 잊히고 마는 건 아닐까. 이러다 내 흔적조차 자취를 감추어 아무도 나를 발견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 간절함이 생겼다. 좋은 곡, 내 마음에 드는 곡 하나를 제대로 만들어보고 싶어졌다. 내 음악을 기다리고 바라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괜찮다. 마음은 휑하지만 머리는 가벼워지고 있다. 다시 출발선에 서기 위해 몸에 열을 내고 있다. 그렇게 나는 워밍업을 시작한다.
---「슬럼프는 워밍업의 시간이니까」중에서
“언젠가 우리 사이에 할 말이 없어지면 어쩌지?” 밤새 통화하면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더 지나서 서로의 일상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너무 잘 아는 사이가 되면 우리는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게 될까. ‘오늘은 어제라는 레이어를 복제해 그 위에 약간 다른 모습만 겹쳐놓은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한다. 더는 새로움이 없는 별에 살고 있다. 그러나 새로워지지 못하는 것에 대한 걱정은 오래가지 않는다. 우리는 이내 무언가를 보고, 듣고, 나눈다. 그렇게 끊임없이 변주하며 살고 있다.
---「변주곡」중에서
가끔 ‘랙’ 걸린 게임 캐릭터처럼 버벅이다 보면 한숨이 나온다. ‘도대체 지금 뭘 하는 거지?’ 그럴 때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억지로라도 바깥에 나가서 쉬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나는 이 시간을 나만의 ‘인터미션’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바쁜 하루라는 연주회의 인터미션 타임이 되면 근처 카페에 들른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서 멍하니 카페 밖 풍경을 바라본다. 생각을 덜어내고 일부러 사방을 흐린 눈으로 바라보면 머리가 좀 쉬는 기분이다. 그러는 사이에 메일이 날아온다고 해도 괜찮다. 잠시 휴식을 취한다고 큰일이 벌어질 정도로 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기억해야 한다. 단 15분이라도 세상을 흐리게 보는 ‘인터미션’이 누구에게나 필요하다는 걸.
---「누구에게나 인터미션이 필요하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