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사다.
집을 사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13년 전쯤이었다. 2008년 리먼사태로 세계가 들썩거렸을 때, 청주에 있는 대학원을 가게 되었다. 청주에서 2년 동안 월세로 살면서 전세금으로 ‘서울에 전세를 끼고 집을 살까?’ 하는 생각을 했다. 경기가 안 좋았을 때였고, 언니가 혹시 모른다며 사지 말라했다. 서울로 와서는 언니네 집 근처 금천구의 작은 아파트에 전세를 얻었다.
한동안 집을 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두 번째 집을 사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2015년, 직장을 옮기게 되면서였다. 직장 근처의 18평 아파트를 찾아보니, 성동구의 아파트와, 강동구의 아파트가 전세가도 낮고 위치도 좋았다. 당시에는 매매가와 전세가가 1억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었다. ‘살까?’ 하다가 사는 과정의 복잡함과 빚을 지는 일의 번거로움 때문에 그냥 강동구 아파트로 전세를 옮겼다. 도배, 장판을 하고 내가 가진 가구를 배치했더니 또 제법 ‘내 공간’으로 정이 갔다. 5층이었는데, 키 큰 플라타너스 잎들이 가득한 동향집의 아침이 참 좋았다. 전세 주기를 세 번이나 돌았는데도 연장이 가능했던 것이 그때는 다행이었고, 지금 생각하면 안타까운 일이 되었다.
그날은 2019년 10월 셋째 주 금요일 오후였다. 전세를 네 번째 연장할까 말까 하면서 우연히 동네 부동산에 들어갔다. 재개발 이야기가 나오면서 내가 살고 있던 집은 처음 들어온 집값에서 세 배가 뛰어 있었다. 전세는 1억 정도 올랐고.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부동산 사장님이 아파트를 사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다. ‘드디어 때가 된 걸까?’ 다른 때는 하소연이나 하면서 다시 전세 계약을 할 텐데, 이번엔 확실히 사장님의 말이 귀에 들어온다. ‘좋은 집이 있나요?’ 18평 매매가가 7억이 넘는 이 동네에서 괜찮은 집이 있을까 했더니 5억 대 초반에 22평 아파트 매물이 나온 게 있다 하셨다. 5억이면 주변 새 아파트의 전세 값 정도. 마음이 두근두근 한다.
“생각해 볼게요.”
집에 돌아왔다. 어떻게 하지? 대출을 받으면 살 수 있을 것도 같은데……. 밤에 사장님이 전화를 하셨다.
“지금 안 사면 다른 사람이 계약할 것 같으니까 바로 계약금을 보내주세요.”
동네였기 때문에 아파트에 직접 가서 매물로 나온 동과 호수를 살펴보았다. 상가를 앞에 둔, 도로에서 제일 가까운 동이었다. 12층. 그 정도 층수면 동네 공원과 멀리 일자산까지도 보일 수 있는 위치. 정남향. 괜찮겠다. 이렇게 큰돈을 모아본 적도, 써본 적도 없었기에 유난히 심장이 쿵쾅댔다.
‘아! 이건 사라는 거다!’
그리고, 금요일 밤 8시. 계약금을 입금했다. 집을 샀다.
소 기사님, 강 과장님
- 미장의 달인과 프로 몰탈러*를 만나다.
어떻게 불러드릴까요?
공사를 하면서 작업하시는 분들의 호칭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고민이 되었다. 별로 친하지도 않은데 ‘아저씨’라 부르는 것은 너무 상대방을 쉽게 대하는 느낌을 주었고, ‘선생님’이라고 부르기엔 오버하는 것 같았다. ‘사장님’이라고 하려니, 사장님이 아닌 분들이 많았다. 결국, 나는 일일이 ‘제가 어떻게 불러드리는 것이 편하세요?’라고 여쭤보기로 했다. 이런 질문을 할 때마다 작업하시는 분들은 잠시 머뭇거리시다가, 곧 웃으시면서 본인에게 편한 호칭을 말씀해 주셨다. 몇몇 분은 ‘아무렇게나 부르세요’라고 하셨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우리 집을 고쳐주시는 그분들은 ‘아무런 분’들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호칭을 정리한 후에야 같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분들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연대감을 느끼며 작업에 대해서 의논할 수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런 나와는 달리 그분들은 하나같이 나를 ‘사모님’이라고 부르시는 것이었다. 사모님이라...... 하하하. 사모는 ‘자기 스승(사부)의 부인(夫人)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보통 우리 일상에선 사장님의 부인을 사모님이라고 하고. 그런데, 나는 1인 가구다. 사장님이고 뭐고 그런 사람이 우리 집에는 없는데 나를 사모님이란다. 어찌나 어색한지. '아줌마'나 '아가씨'(나이 많은 미혼도 아가씨라고 하는지 모르겠지만)라고 부르기도 애매하셔서 통칭 '사모님'이라고 부르시나 보다 하며 그냥 대답을 하긴 했다. 공사하면서 매번 ‘사모님’이라고 불릴 때마다 목에 뭔가가 걸리는 느낌. 사모님으로 불리는 동안은 사모님과 같은 표정과 교양있는 척 깐깐한 말투를 구사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웃음이 나왔다.
미장의 달인 소 기사님.
설비공사의 마무리는 미장**이었다. 내부 철거가 다 끝나면 콘크리트와 벽돌로만 이루어진 벽체나 시멘트가 부서진 부분이 보인다. 면이 고르지 못하면 그 위로 바른 마감재의 모양이 좋을 리 없다. 그때 매끈하게 면을 만들어 주는 작업이 바로 미장이다. 미장을 하시는 분께 호칭을 여쭈어 보았다. 웃으시면서 ‘S미장, 소 기사’라 불러 달라고 하셨다. 연배가 있는 모습이 듬직했고, 현장의 구석구석을 살피시는 모습에 전문가 포스가 물씬. 싱크대 수전을 내려주실 때도 꼼꼼하게 미장해 주시더니, 몰딩을 제거하면서 떨어져 나간 부분도 하나하나 챙기시면서 시멘트를 발라주셨다.
이 분을 ‘달인’으로 존경하게 된 것은 현관 미장을 마무리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부터였다. 타일을 들어낸 곳에 시멘트를 쓱 바르면 된다고 생각하고 오늘의 공사가 거의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소 기사님은 그 자리에서 도통 떠나실 생각을 하지 않으시는 거다. 무엇을 하시나 한참을 봤더니 사방으로 계속 수평계를 쓰시면서 흙손으로 한 번 문지르시고, 평형을 맞추시는 것을 계속 반복하셨다. 내 성격 같아서는 어림없는 일. 이 정도면 됐다 싶을 때가 지났는데도, 쪼그려 앉으신 채 묵묵히 계속하시는 모습. 살면서 단 한 번도 ‘현관의 수평’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 본 일이 없던 나에게 소 기사님의 작업을 바라보는 순간은 꽤 깊은 울림을 주었다. 묵묵히 자신의 작업을 완전하게 마무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분이 우리집을 고쳐주시는 것이 행운이라는 생각을 했다.
프로 몰탈러 강 과장님
철거 설비의 이틀 동안 공사를 책임져 주신 분은 성함을 여쭤보니 ‘강 과장’이라 불러달라고 하셨다. 껑충 큰 키와 곱게 생기신 외모와 달리, 오함마로 벽을 내리치는 파워를 보여주시기도 하셨다. 무엇보다 강 과장님이 좋았던 것은 소통이 잘 되는 점이었다. 욕실 바닥의 온수 배관을 까는 일, 욕실의 환풍구를 위로 올려주시는 것은 내가 미처 신경 쓰지 못하는 부분이었는데 먼저 말씀을 해 주고 알기 쉽게 설명을 해주어 결정을 빨리 내릴 수 있었다. 공사를 해 보니, 공정에서 최대한 신경을 써서 해결해야지 다음 공정으로 넘어가면 굉장히 어려운 일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래층 할머니의 요청도 있고 해서 욕실의 방수를 몇 번 강조해서 부탁드렸다. 나 같은 초보는 작업이 얼마나 잘 되었는지 제대로 알기 어렵다. 그냥 뭔가 아는 사람인 것처럼 구석구석 꼼꼼하게 보고, 인터넷 검색으로 미리 공부한 ‘입에 익지 않은 용어’를 써가면서 잘 부탁한다는 말을 반복하는 수밖에. 강 과장님은 그런 나의 어설픈 요청에 베란다의 난방 엑셀 관도 촘촘히 감아 주시고 이중 새시를 고려해서 창호의 턱도 충분한 넓이를 확보하면서 공사를 진행해 주셨다. 강 과장님의 실력은 그다음 타일작업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욕실의 구석구석 꼼꼼하게 방수처리를 하고, 젠다이도 깔끔하게 시공이 되어 타일 작업이 수월했다는 타일 사장님의 평가에 과장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더욱 커졌다.
두 분 다 말수가 굉장히 적은 편이셔서 덩달아 나도 작업하시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볼 수 있었다. 하지만,몸을 쓰는 일을 하는 분들을 옆에서 지켜만 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나도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 작업을 마친 후에 감사한 마음으로 귤을 드렸더니 눈을 맞추시면서 환하게 웃으셨다. 그제야 나도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철거가 끝나면 그다음부터는 모든 일이 저절로 따라가며 이루어진다 했다. 깨끗하게 미장이 된 집을 보니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절로 이해가 되었다.
공사를 진행하면서 알게 된 tip.
보일러 배관을 덮은 시멘트는 자연 건조해야 한다. 빨리 마르게 한다고 보일러를 틀면 표면이 쩍쩍 갈라짐.
화재경보기가 누래서 보기 싫었는데 인터넷에서 주문이 가능하고, 교체 가능
변기 배수구가 구조상 살짝 치우칠 수도 있다. 우리집의 경우 3센티짜리 편심을 사용하면 조정이 된다고 했다.
---본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