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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의 철학

거짓말의 철학

: 거짓 세상의 파도 위에서 철학으로 중심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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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2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216쪽 | 244g | 128*188*15mm
ISBN13 9791190314213
ISBN10 1190314215

카드 뉴스로 보는 책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누구나 거짓말한다. 모두가 거짓말을 비난한다. 우리는 거짓말이 잘못이라는 데 동의하면서도 거짓말을 한다. 우리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거짓말한다. 실제보다 잘나 보이고 싶거나 못나 보이기 싫어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서, 또는 곤란과 불편을 면하기 위해서 거짓말한다. 때로는 타인의 이익을 위해서도 거짓말을 한다. 특히 상대가 기분 상하는 일을 막기 위한 거짓말을 많이 한다. 타인을 위한 거짓말인지 자신을 위한 거짓말인지 구분이 어려울 때도 많다. 그 경우 우리는 남을 위한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길 좋아한다. 하지만 그것조차 자신에게 하는 거짓말일 때가 많다.
---「서문」중에서

진실성의 반대말은 한 가지가 아니라 셋이다. 트루시니스, 개소리, 거짓말. 이 책의 주된 초점은 이 셋 중 마지막 것을 파헤치는 것이다. 다만 거짓말의 많은 측면이 트루시니스와 개소리에도 해당될 수 있으며, 따라서 그것들과도 무관하지 않다.
---「1장. 거짓말이란 무엇인가」중에서

그런데 예수회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은 약속은 약속한 시점에 약속을 지킬 의도가 있었을 경우에만 구속력을 가진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내가 “XX를 하겠다고 약속합니다.”라고 말해 놓고 몰래 혼잣말로 이렇게 덧붙인다면? “내키면.” 그러면 나는 그 약속에서 완전히 풀려난다. 하지만 이는 납득하기 어려운 발뺌 전략에 불과하다. 거짓말은 용납 불가라는 원칙을 지키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고안된 것이라지만, 사실상 거짓말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2장. 거짓말의 윤리」중에서

누군가에게 거짓말하는 것은 그 사람의 현실 접근을 차단하는 일이다. 착한 거짓말, 못된 거짓말 모두에 해당되는 사항이다. 거짓말은 상대의 자유를 박탈한다. 거짓말은 아무리 선의에서 비롯된다 해도 상대가 주변이나 자신으로부터 얻을 수 있었던 통찰을 막는다. 반면 진실은 그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진실은 그가 인생에서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보여 줄 수 있다. 때로 진실은 우리에게 고통스럽거나 심지어 파괴적인 결과를 부른다. 그래도 상대가 진실을 감당하기 역부족이라고 추정하는 것은 오만이다.
---「2장. 거짓말의 윤리」중에서

앞서 언급했듯 거짓말은 두 가지 생각을 동시에 가져야 하기 때문에 어렵다. 즉 실상이 어떠한지, 그리고 그것이 거짓말과는 어떻게 다른지 따져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거짓말을 믿기 시작하면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만 하면 된다. 자기기만이 자신에 대한 기만만은 아니다. 배우자가 실제로 바람을 피웠고, 냉철하게 봤을 때 배우자의 불륜을 말하는 증거들이 명백한데도, 배우자의 결백을 믿는 경우도 있다. 이런 지식은 흡수하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차라리 환상에 매달리는 것이 더 편하다. 사실 이런 유형의 자기 기만도 비록 간접적이지만 자신에 대한 것이다. 타인과 자신의 관계에 대한 것이니까.
---「3장. 나에게 하는 거짓말」중에서

예컨대 미국이 베트남전 확전의 명분으로 삼았던 통킹만 사건이 사실은 조작이었다는 내용을 담은 미국 국방부의 기밀문서, 이른바 펜타곤 페이퍼(Pentagon Papers)가 극비에 붙여졌던 것은 베트콩이 베트남전의 전황을 아는 것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베트콩이야 이미 전황을 훤히 알고 있었으니까. 그것은 미국 국민이 아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문서의 내용이 알려지면 반전운동이 격화될 것이 뻔했다. 이때의 비밀주의는 행정부 통제가 아니라 민주적으로 통제되어야 할 대상에 관한 대중의 알권리를 차단하는 것이었다.
---「5장. 거짓말의 정치」중에서

‘모두가 언제나 거짓말하는’ 사회가 가능할까? 비현실적으로 들린다. 과장된 표현이다. 하지만 아렌트의 요점은 이것이다. 전체주의 사회에서는 거짓말이 너무나 만연해져서 어떤 것도 믿을 수 없어지고, 개인들은 현실감각을 잃는다. 전체주의는 사회적 공간을 허물고, 그렇게 함으로써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구분도 없앤다. 아렌트는 이것을 ‘집단적 고독(organized loneliness)’이라 부른다.
---「5장. 거짓말의 정치」중에서

자기 말이 허위라는 비판에 직면했을 때 트럼프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대개는 비판을 제기한 사람을 아무 근거 없이 믿지 못할 사람으로 몰아가는 전략을 폈다. 즉 자기 말이 틀렸다는 비판 역시 믿을 수 없으며 따라서 무효라는 식이었다. 알다시피 이 전략은 본인의 신빙성 증진을 위한 전략이 아니다. 비판적 목소리의 신빙성을 꺾기 위한 전략이다. 아무도 믿을 수 없다면, 《워싱턴포스트》를 믿는 만큼 트럼프도 믿을 수 있지 않을까?
---「5장. 거짓말의 정치」중에서

일상의 어느 평범한 날을 상상해 보자. 우리는 가족, 친구, 동료와 대화하고, 이메일을 받고, 신문을 읽고, TV를 보고, 가게 직원에게 주문한다. 이 과정에서 분명히 우리는 무엇이 이렇거나 저렇다는 막대한 양의 주장들을 접한다. 이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 우리는 사람들이 당연히 사실을 말하려니 생각한다. 우리는 호시탐탐 거짓말로 서로를 속이려 들지 않는다. 이것이 서로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태도다. 그렇지 않으면 사는 것이 힘들어진다. 사람들이 대체로 부정직하다고 가정할 경우 평범한 날이 어떻게 변할지 상상해 보라. 타인과 뭐라도 함께 도모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진다.
---「6장. 우리 안의 거짓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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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솜씨 좋은 철학 에세이를 읽는 내내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이 떠올랐다. 만약 밀이 이 시대에 다시 태어나 《자유론》에서 자신이 예고한 사회의 도래(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를 보았다면, 바로 이런 책을 쓰지 않았을지! 이 책이 우리에게 넌지시 일깨워 주듯이 거짓말은 의도적 기만이라기보다 무지의 소치에 가깝다. 거짓말은 정확성을 기하지 않는 것, 무언가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별다른 검증 노력 없이 믿는 것에 기인하니까. 탈진실의 시대 한복판에서, 여전히 우리가 진실하고 자유로울 수 있다는 믿음을 간직하고 있는 당신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 송민경 (《법관의 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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