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나는 급식 먹는 어린이를 처음 제대로 본 것 같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매 순간 저런 노력이 어린이의 학교생활을 채우고 있다는 것을. 내가 내 자리에서 애쓰듯이 아이들은 아이들 자리에서 온몸으로 애쓰고 있다는 것을. 나 또한 그런 시간을 거쳐 이렇게 어른이 되어 서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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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나로서 충분한 시절, 내 감각이 주목받고 내 표현이 전부인 시절을 벗어나 나와 같이 빛나는 존재였을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글쓰기로 말하자면 맞춤법이나 호응관계나 문장부호 따위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을 신기한 맞춤법의 세계에서 매끈한 법칙의 세계로 인도한다. 언젠가 이 밋밋한 학교를 떠나 울퉁불퉁하고 멋진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나가기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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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에서 생활하다보면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모든 아이들이 진지한 대화의 상대가 된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린이와 대화하는 것은 결코 사소하거나 유치한 일이 아니다. 뭐라 설명하기 힘든 자잘한 노하우가 학년별로 여러 개 있다. 누가 뭐래도 이것은 당당한 전문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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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서 그래?” “슬퍼서 그래?” “불편한 거야?” “기분이 나빠?” 수없이 건너오는 이런 말들 속에서 어린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난다. 좁은 교실 속 딱딱한 의자에 앉아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학교생활에 적응해나간다. 1학년 교실은 우주선 같다. 인생의 긴 항해를 시작한 우주인들이 가득한 우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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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4학년, 5학년, 6학년 아이들은 1학년, 2학년, 3학년을 그냥 거쳐온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짜증부리면서 자기 욕구를 이야기할 때마다 가르침을 받아왔던 것이다. 여러 사람 앞에서 존댓말 쓰기, 내 욕구를 솔직하게 말하되 담백하게 전하기, 다른 사람에게 화내면서 말하지 않기 등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수많은 매너들을 배워왔기에 6학년에 이르러서는 선생님을 감동시키는 초등교양인으로 성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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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놀기 위해 지난한 과정을 거쳤다. 체육관과 본관 사이, 에어컨 실외기가 있는 그 비좁은 공간에서 축구를 하기 위해 아이들은 규칙을 만들어내고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축구를 한다. 우리가 아니고는 이곳이 그렇게 소중한 축구장이라는 걸 절대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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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자신의 마음과 의도를 정확히 모른 채로 행동할 때가 많다. 앞날에 대해 예견하는 것도, 경험에 비추어 다른 사람의 의도를 짐작하는 것도 서투르다. 같은 말과 행동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을 할 때도 많다. 그래서 어린이들의 마음을 되도록 좋게 해석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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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단체로 데리고 학교 밖으로 나와보면 세상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각박한지 알 수 있다. 대중교통에서 마음껏 떠들던 어른들도 아이들 목소리에는 유난히 엄격한 듯하다. 아이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윽박지르고, 담임인 나에게 아이들을 잘 지도하라며 눈을 부라린다. 다른 어른이 떠들 때는 한마디도 못 하면서 아이들 목소리가 모이면 꾸짖고 화를 낸다. 이럴 때는 나도 모르게 아이들과 같은 마음이 되어 어른들을 미워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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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아이들이 마니또를 하자고 하는 이유는 선물이나 맛난 간식이 전부가 아닐지도 모른다. 책상 위 음료수, 가방고리에 달린 알 수 없는 쇼핑백, 누군가로부터 날아온 예쁜 쪽지, 사물함에 놓인 작은 선물상자는 우리 모두에게 설렘과 행복의 또다른 이름이니까. 누구나 이름 모를 누군가로부터 조건 없는 친절을 받아보고 싶은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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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오늘 혼자이진 않았는지 묻고, 억지로 친구를 연결해주고,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상처를 준 것 같은 친구에게 날을 세우는 것은 결국 어른들의 불안 때문이다. 그리고 어른의 이런 불안을 어린이들은 금방 눈치챈다. 바뀌고 또 바뀌는 관계에 지친 아이들이 쉴 수 있는 틈을 만들어주는 것, 당장은 막막하겠지만 지나고 나면 조금 자유롭고 편안한 순간이 찾아온다고 말해주는 것, 그도 아니면 그저 모른 척해주는 것. 어쩌면 어른의 역할은 그것이 전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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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에서 함께 생활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이 세다. 편견과 차별은 일상을 꾸려가는 데 많은 방해가 된다. 아이들은 그런 귀찮은 것들은 걷어내고 얼른 놀기에 바쁘다. 차별도 특별대우도 안 한다. ‘편견 없다’는 말이 아이들에게는 기본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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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계단 난간도, 야생 그대로의 언덕도 놀이터로 바꾸어 행복하게 놀 수 있는 아이들이 부럽다. 그런 모습을 보면 이제는 사라져버린, 그러나 분명 내가 거처했던 네버랜드도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 같다. 그리고 아이들이 만들어낸 그 행복을 늘 깨뜨리는 사람이 나인 것 같아서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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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약자를 대하는 사람들은 날마다 인식을 벼리지 않으면 언제라도 퇴보의 길로 가기 쉽다. 타자와 자리를 바꿔 내가 쓰는 말을, 내가 쓰는 공간을, 내가 누리는 것들을 낯설게 바라봐야 한다. 우리가 비교해야 할 것은 옛날과 지금이 아니라 오늘, 나와 타자의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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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요’라는 말이 대뜸 적힌 수많은 카드와 편지. 조금만 친해지면 그려줬던 내 얼굴. 색색의 종이로 접어준 하트와 꽃. 통크게 나눠준 정체불명의 간식. 손등에 붙여준 스티커. 내 건조한 설명이 무색할 만큼 눈부시고 놀라웠던 수업시간 작품들. 이런 것들로 학교에서의 내 일상은 다채롭고 화려했다. 솔직하고 겸손하며 나쁜 일을 잊는 데 선수인 작은 사람들 덕택에 나는 천성적인 우울과 비관을 잊고 많은 순간 낙관적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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