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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생각하다 잃어버린 것들

연시리즈 에세이-16이동
리뷰 총점10.0 리뷰 4건 | 판매지수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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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3월 17일
쪽수, 무게, 크기 192쪽 | 252g | 124*188*20mm
ISBN13 9791191384420
ISBN10 119138442X

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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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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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이 무수히 빛나던 날, 잊지 못할 선물을 받았다. 받은 건 반드시 돌려줘야 한다는 이유로 선물을 기분 좋게 받지 못한다. 가진 것을 베풀거나 순수한 마음으로 선물을 건넨 적도 없는 것 같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낯을 가린다는 이유로 선뜻 나서지 못한다. 이런 나지만 많은 선물을 받아왔다.
--- p.12

해가 뜨지 않은 시간, 방 정리를 마치고 터미널로 향했다. 창밖의 널브러진 소들과 드넓은 대지를 구경하며 2시간이 지났다. 걱정했던 것보다는 참을만한 드라이브였다. 환승센터에 내려 두 번째 버스를 탈 때는 엉덩이가 힘 없이 축 처져 있었다. 잔디밭을 거닐며 신선놀음에 빠진 소들을 부러운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 잠에 들기 위해 눈을 감으면 쨍한 햇빛이 커튼을 지나 얼굴에 쏟아져내렸다.
--- p.25

오늘 당장은 시내로 나가는 버스가 없어 무작정 걸었다. 죽은 캥거루를 무심히 지나치고, 찢어진 타이어에 앉아 숨을 돌려가며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으스스한 도로에는 지나가는 차들도 드물었다. 휑한 길바닥에 바람이 지나는 모습과 아슬아슬 도로 끝에 걸친 내가 더해졌다. 캐리어 바퀴의 덜그럭 소리를 끄는 이는 나 하나뿐이다.
--- p.43

내 왼쪽 손목엔 세미콜론 타투가 새겨져있다. 세미콜론 타투를 새기는 건 우울증이나 자살 충동, 약물 중독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사랑을 주는 의미로 알려져 있다. 내가 타투를 새긴 이유는 세상에 알려진 의미와 다르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을 향한 애도의 표시 이자 자살 충동을 막아주는 방어막이다.
--- p.54

늘 같은 자리에 있는 산과 같은 방향으로 흐르는 개울가. 개울가를 따라가면 데이지 꽃, 산딸기, 매실나무가 나온다. 작은 동네를 한 바퀴, 두 바퀴 아무 생각 없이 걷는다. 한 발자국만 내디디면 세상과 만날 듯이 가까워진 것 같다가 어떨 때는 현실이 아닌 공간에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순수한 시각으로 꽃과 나무를 바라볼 때는 세상과 가까워졌다고 느꼈다. 반대로 틀에 박힌 생각을 할 때는 세상과 멀어진 기분이었다.
--- p.88

글쓰기 관련 책이나 시집을 읽다 보면 순수한 시각이 중요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동심으로 돌아가 아무 편견 없이 사물을 보는 것. 나는 그게 어떤 건지 잘 몰랐다. 이론은 이해했지만 머릿속에 있는 지식을 걷어내고 세상을 처음 마주한 듯 바라보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조용히 내 무의식에 들어온 편견과 쓸모없는 지식들을 걷어낼 수 없었다. 그것들은 물건이나 동물, 사람 등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정확히 볼 수 없게 했다.
--- p.147

운전석 앞 범퍼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확인해 볼 겨를도 없이 빠른 속도로 집으로 향했다. 정작 내가 도착한 곳은 집이 아닌 동네 뒷산이었다. 늦은 밤, 산을 둘러싼 빨갛고 파란 불빛. 어수선한 분위기 속, 나는 초록색 바구니가 달려있는 리어카 앞에 발걸음을 멈췄다.
--- p.169

담양과 화순의 경계를 지키는 산에 두 지역의 경찰관, 소방관이 모여 있다. 그들은 나를 데리고 산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나는 몇 발자국 내딛지 못하고 줄곧 담배를 태웠다. 30분만 찾아보겠다면서 떠난 형사님이 다가왔다.
--- p.201

누구나 그렇듯 내게도 최선을 다해 한 사람을 사랑하던 때가 있었다. 그녀와 헤어진 이후, 나는 우리의 사랑 역시 흔한 사랑이야기 중 하나일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그녀와의 추억이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그 추억들은 시간이 지나며 하나 둘 사라지거나 조각조각 나뉘었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저장되어 있다. 이 조각난 기억들 마저 잊기에는 그 순간이 그리울 때가 있다.
--- p.233

최근 서해 갯벌이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멸종위기에 놓인 철새들의 쉼터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이유였다. 뉴스를 통해 이 소식을 들은 나는 철새의 하루를 상상했다. 긴 비행 동안 한 번 밖에 못 쉬는 새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하루를 내 기준에 맞추면 안됐다. 철새들에게는 그 시간이 알맞은 휴식이었다. 철새가 안쓰러워야 할 때는 잠시라도 쉴 공간이 사라지거나 휴식시간이 없을 때 해도 늦지 않는다. 나는 함부로 철새의 하루를 무시했다.
--- p.241

친구를 찾아갔지만 날 보지 못했다. 나 역시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우리 사이가 조금씩 멀어지고 있는 게 느껴졌다. 만질 수 없을 만큼 멀어질까 두려워 팔을 쓰다듬었다. 손등의 털은 팔꿈치까지 길게 자라있었다. 바람을 느끼고 흙을 만지던 날들을 그려보았다.
---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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