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 어둠이 내려앉은 새벽 시간대에 걷기를 즐겼다. 그 시절 나는 심각한 아침형 인간이라 수면 시간이 짧았다. 새벽 두세 시에도 잠이 깨면 다시 잠들기 어려웠다. 그럴 때면 책을 보거나 산책을 나갔다. 겨울이 되면 새벽마다 밖으로 나가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겨울날 새벽 산책의 매력은, 걷기 시작할 때면 밤의 세상과 숲을 만났고, 끝날 때면 아침의 세상과 숲을 만났다. 마치 하루가 아닌 이틀이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겨울의 새벽 산책에 매혹됐던 것 같다.
---「봄꽃을 만나는 행복한 하루」중에서
한겨울 복수초를 만나면 어찌나 반가운지 나 또한 그림책 속 동물들처럼 몸과 마음이 춤을 추는 듯하다. 노란 복수초가 아름다워서일까? 겨우내 꽃을 보지 못해서일까? 무엇보다 복수초가 피니 이제 추운 겨울도 가고, 곧 따듯한 봄이 올 거라는 기대 때문인 것 같다. 제주도에서 자라는 세복수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꽃 소식을 전한다.
---「봄꽃을 만나는 행복한 하루」중에서
꽃들이 꽃받침을 키워 꽃잎을 흉내 낸 것도, 수술대를 꽃잎처럼 보이게 한 이유는 모두 수정을 잘하기 위해서다. 식물은 자신의 모든 전략을 씨앗을 만드는 것, 즉 후대를 위해 쏟는다. 꽃의 구성요소만 보아도 우리가 원하는 행복을 위해서 세상 모든 것을 다 갖추지 않고도 잘 살아갈 수 있음을 배운다. 무언가 하나 모자라면 다른 것으로 대체하거나 누군가와 함께 채우면서 살아갈 수 있다.
---「아름다움과 강인함을 품은 꽃」중에서
많은 이들이 꽃이 지는 모습에 생명력을 잃어가는 슬픈 모습으로 정서를 대입시킨다. 하지만 꽃이 진다는 것은 일부는 열매와 씨앗을 맺었다는 의미다. 꽃은 씨앗을 맺기 위해 피어나는 존재다. 아주 짧은 순간 화려한 꽃을 피우고 수정을 한 뒤 씨앗의 모습으로 오랫동안 살아간다. 그리고 후세를 기약한다. 그래서 꽃이 지는 모습은 슬프기보다는 찬란한 일이며, 강한 생명력을 내뿜는 행위다.
---「아름다움과 강인함을 품은 꽃」중에서
식물은 타고난 전략가다. 수분 활동을 성공시키기 위한 전략뿐만 아니라, 공격자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전략, 씨앗을 멀리 퍼트리는 전략 등, 살아가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짜고 치열하게 싸우고 변화한다.
---「꽃과 곤충의 한판 승부」중에서
식물들이 전략을 짜서 변화하면, 곤충과 동물들도 전략을 바꾸며 진화한다. 이것이 숲이고 생태계다. 숲은 잠깐 스치듯 보면 고요하지만,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매우 역동적이다. 숲 안에는 나뭇잎, 꽃, 다양한 곤충과 크고 작은 동물들이 살아가기 위해서 서로 돕고, 때론 전쟁을 치르면서 치열하고 장엄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런 생명의 역동성과 경이로움이 내가 숲을 좋아하는 이유다.
---「꽃과 곤충의 한판 승부」중에서
올해 심은 나팔꽃 역시 들녘에서 보았던 나팔꽃의 색보다 옅어서 다소 아쉬웠다. 아마도 나팔꽃이 원래 있던 자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빛깔을 뽐내는 게 아닐까. 나팔꽃처럼 사람도 가장 아름다운 색깔을 낼 수 있는 자신의 자리를 찾는 게 인생의 숙제인 것 같다.
---「씨앗이 자라는 소리」중에서
수관기피는 나뭇가지들이 서로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은 현상을 말한다. 숲에서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반대로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숲의 나무들이 마치 누군가가 가지치기를 해놓은 것처럼, 가지들이 서로 닿지 않고 떨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 숲해설을 할 때 나는 수관기피 현상을 나무와 나무 사이에는 일정한 간격이 있다고 설명한다. 그래야 나무들이 서로 건강히 살 수 있고 우리의 삶 속 인간관계 또한 비슷하지 않느냐고 말이다.
---「우린 모두 다르고 아름답다」중에서
새들뿐만 아니라, 개미 역시 벚나무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벚나무 잎이 돋기 시작하면 땅에 있어야 할 개미가 높은 벚나무 위를 오가는 모습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작은 개미가 그 높은 벚나무 위로 올라온 것은 오직 개미를 위한 꿀이 벚나무에 있기 때문이다. 벚나무 잎자루 끝에는 동그란 돌기가 두 개씩 달려 있다. 바로 꿀샘인 ‘밀선蜜腺’이다. 벚나무는 개미에게 꿀을 제공하고, 개미들은 해충을 잡아먹어 벚나무를 지켜준다.
---「우리가 지나친 나무의 얼굴」중에서
나무는 작은 상처가 나면 상처가 난 부위를 덧씌우는 세포덩어리인 캘러스callus를 만들어내서 스스로 상처를 치유한다. 소나무의 송진 역시 상처를 치유하고 방어하는 물질이다. 스스로 작은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나무들은 곤충이나 병해충에 더욱 쉽게 노출되고 끝내 상처 난 부위를 절단하는 등의 처치가 필요하다. 누군가에게 위로나 도움을 받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스스로 작은 상처를 치유하는 나무처럼, 우리 역시 마음의 작은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며 살아가야 한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힘」중에서
나 또한 이 식물학자처럼 가끔 나무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진다. 조용히 나무를 만지고, 우듬지를 올려다보고, 나무의 소리를 들었으면 할 때가 있다. 나무에게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청하는 식물학자처럼, 사람들이 직접 나무와 만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지면 좋겠다.
---「나에게 힘이 되는 사람」중에서
그런데 왜 도토리나무를 참나무라고 부를까? 참나무의 ‘참’은 ‘진실, 진짜, 우수한, 먹을 수 있는’ 등의 의미로 쓰인다. 참나무는 ‘진짜 나무, 먹을 수 있는 나무’라는 뜻이다. 인간이 먹을 수 있고, 인간에게 유용한 나무라는 말이다. 참꽃이라고 불리는 진달래꽃 역시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참꽃이라 불리는 것처럼, 인간의 입장에서 나무와 꽃에 ‘참’이라는 접두사를 붙인 게 아닐까 싶다.
---「밤 한 톨이 나무가 되기까지」중에서
산책의 좋은 점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자연을 관찰하고, 생명력을 보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힘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는 산책할 때 천천히 걷는 것을 좋아한다. 빨리 걷다보면 놓치는 것이 많다. 풀과 나무의 색과 꽃을 관찰하고, 사시사철 변하는 나뭇잎과 줄기, 가지의 변화를 살피는 산책이 좋다.
---「내 마음을 만나는 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