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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4월 18일
쪽수, 무게, 크기 428쪽 | 642g | 140*205*30mm
ISBN13 9788956254494
ISBN10 8956254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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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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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준은 1930년대 중반에 쓴 장편 『성모』에서 지금으로선 꽤 낯선 교실의 풍경을 그려낸다. 이제 막 중학생이 된 철진이가 엄마에게 자기네 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아예 지리부도까지 펴놓고 침을 튀기는 것이었다.
“엄마? 우리 반에 글쎄 여기 이 제주도서 온 아이두 있구 또 나허구 같이 앉었는 아인 함경북도 온성서 온 아이야. 뭐 경상남도 진주, 마산, 부산서도 오구 평안북도 신의주, 그리구 저 강계서 온 아이두 있는데 걘 글쎄 자동차루, 이틀이나 나와서 차를 탄대…. 퍽 멀지, 엄마?”
지도를 거침없이 짚어가는 그 손가락이 퍽 부러울 뿐이다.
--- p.5

도쿄?엄밀한 의미에서는 ‘동경’이라는 기표?는 싫든 좋든 우리 근대 문학의 자궁 같은 곳이었다. 사실 우리의 근대는 수신사를 파견하던 시절 이후 도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는다. 근대 문학사에 이름을 올리게 되는 거의 대부분의 주요 작가들 역시 도쿄를 통해 어떤 형태로든 문학과 인연을 맺게 된다. 가령 최남선이 처음 가서 보고 기겁한 도쿄는 서울에서 말 그대로 대롱으로만 보던 것하고는 전혀 딴판 세상이었다. … 아직 학생 신분을 벗어나지 못한 이광수 역시 『소년』과 그에 이은 『청춘』의 주요 필진이었다. 두 사람은 도쿄에서 처음 맺은 인연을 한 40년 좋이 이어간다. 그 인연의 절정 또한 도쿄를 빼고 말할 수 없다. 1944년 그들이 새삼 도쿄까지 건너가 나눈 대담의 기록이 실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거기서 조선을 대표하는 두 지성인은 도쿄에서 공부하는 조선의 청년 학도들을 향해 “조선이란 점에 너무 집착하는 모습”을 벗어나 “대동아의 중심이자 중심인물이 된다는 기백”을 지닐 것을 요구한다. 그러면서도 같은 지면에서 그들은 처음 도쿄에 와 문학에 눈을 뜨던 시절부터 새삼 회상을 이어나가는 가운데, 몇십 년을 ‘국어(일본어)’로 글을 써오긴 했으나 ‘외국인’으로서 흉내 내기가 가능할지 근본적으로 의문이라는 속내 또한 솔직히 드러낸다.
--- p.8

서울을 처음 방문했을 때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정동 언덕 위 러시아 공사관이 도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록 산은 가장 높은 삼각산이 고작 800미터밖에 되지 않지만 도성 안에서 호랑이와 표범을 사냥할 수 있다고 뽐낼 수 있는 도시란 그리 흔치 않다고도 덧붙였다. 그때가 1894년이었다. 그로부터 100년도 더 지나, 우리 시대의 한 작가는 제가 사는 도시 서울에 대해 이렇게 썼다.
- 자기 몸에 새겨진 문신을 지우려 애쓰는 늙은 폭주족처럼, 서울은 필사적으로 근대의 기억을 지우고 있다.
--- p.24

성북동에서 아침에 성을 보며 양치질을 할 때, 저녁에 노을을 볼 때, 정원에서 꽃나무를 볼 때, 그리고 옛사람의 글과 그림을 보거나 그도 아니면 옛사람이 쓰던 막사발 하나라도 어찌 구해 문갑 위에 올려놓고 들여다볼 때, 상허는 더 이상 식민지인이 아니었다. 가람이 불러 벗들과 함께 난의 자태와 향을 즐긴 날에는 더더욱 옛 조선인 선비 혹은 묵객이었다. 성북동은 이렇게 서울에 있되 서울의 현실과는 어지간히 거리를 두고 있는 셈이었다. 상허는 그 성북동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 p.230

소설가 구보 씨는 자기에게 여행 경비가 있으면, 적어도 지금 자기는 거의 완전히 행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는 자기가 떠나온 뒤의 변한 도쿄가 무척이나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무슨 일을 하더라도 구보 씨는 어느 틈엔가 다시 ‘가난한 소설가와 가난한 시인’과 ‘그렇게도 구차한 내 나라’를 생각하고 마음이 어두워지게 마련이었다. 그는 이 사실만큼은 골수에 박히도록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이러매, 식민지의 작가로서 구보 씨는 정확히 식민지를 산책했을 뿐이었다.
--- p.265

조선의용군 포로 김학철이 일본 나가사키 형무소 복역 중 맥아더 사령부의 석방 명령서를 받아든 것은 10월 9일이었다. 서울에 나타난 것은 그러고도 한참이나 더 시간이 흘러서였다. 그때 그는 목발을 짚은 외다리였다. 총상 입은 다리를 형무소에서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결국 잘라야 했던 것이다. 그는 이제 곧 어지러운 해방 조국에서도 독특한 이력을 지닌 소설가로 첫발을 뗄 터였다. 그의 머릿속엔 벌써 원산의 어린 시절과 서울로 와서 보성학교를 다니던 때, 그리고 중국으로 건너가 보낸 파란만장한 세월이 무논의 개구리 떼처럼 왁자글 소리를 내고 있었다. 어느 것을 먼저 써야 할지 종잡는 것 자체가 힘들 정도였다. 한 가지는 분명했다. 재미있게 써야 한다는 것! 원산에서 발가벗고 물장난을 치던 소년 시절부터 그의 천성은 변함이 없었다. 아무리 험한 투쟁의 길을 쓸 때라도 그의 펜 끝은 우울과 비장함보다는 반드시 손에 쥘 승리에 대한 유쾌한 희망을 훨씬 더 선호했다.
--- p.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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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시대의 우리 문학, 근대 백 년을 짚는 지도가 되다

작가 김남일은 오래도록 세계 문학과 동아시아 문학을 읽고 탐구하는 과정을 거쳐 새삼 ‘문학’을 지도 삼아 이 땅의 근대를 면밀하게 탐사하고 있다. 이제 작가는 식민지 시대에 모국어로 글을 쓴 선배 작가들의 우정과 만남, 고뇌와 열망, 운명과 죽음, 기쁨과 슬픔, 영예와 비루함을 찬찬히 응시하는 작업에 열정과 관심을 온전히 바치고 있다.

그렇게 우리 근대 문학의 흔적을 따라 지난한 길을 걸으며 길어올린 『서울 이야기』는 대작 ‘한국 근대 문학 기행’ 시리즈의 문을 여는 시작점이다. 이 책은 ‘서울’이라는 공간을 화두로 박태원, 염상섭, 채만식, 김남천, 윤동주, 유진오, 이광수 등 근대 문인의 삶과 문학을 둘러싼 풍성한 일화를 소개한다. 김남일의 풍부한 문학사적 지식, 근대와 고투한 문인들에 대한 깊은 애정, 남다른 인문적 식견, 인간과 시대를 바라보는 곡진한 마음을 깔고 덮으며 신선한 자극과 배움을 얻는 즐거운 독서가 이 안에서 펼쳐진다. 『서울 이야기』뿐만 아니라 한국 근대 문학 기행 대작으로 ‘근대 문학과의 밀도 깊은 대화’라는 뜻깊은 도정을 통과한 작가가 장차 펼쳐 보일 작품이 몹시 기대되는 순간이다.
- 권성우 (문학평론가,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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