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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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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장면 (큰글자도서)
[도서] 여행의 장면 (큰글자도서)
고수리,김신지,봉현 등저 유유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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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장면 (큰글자도서)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6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228쪽 | 256g | 118*188*20mm
ISBN13 9791198159632
ISBN10 1198159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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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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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나는 여전히 혼자를 고수했다. 사람 속에 파묻혀 지낼 때면 느끼는 고유의 멀미 때문이다. 웃고 있지만 지겹다는 생각,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끔찍하다는 생각, 그냥 홀로 누워 완전히 고립되고 싶은 생각. 그게 내가 늘 홀로 떠난 이유였다. 내게 여행은 낭만이 아니라 도피에 가까운 행위다. 여행지에서는 연락도 안 오고, 내가 이연인지 누구인지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약속을 잡을 가까이 사는 친구도 없다. 그러면 모든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다. 사람 사이에서 지칠 때쯤 그런 자유를 갈망하게 된다.
---「이연, 태양계 여행」중에서

살면서 힘든 일이 생기면, 버티기 힘든 순간이 찾아오면, 이 마을에 다시 와야겠다고. 내가 이런 삶을 원했던가? 싶어지는 순간, 사는 일이 끝없는 숙제처럼 느껴지는 순간 우리에겐 고요하고 평화로운 여행지가 필요할지 모른다. 아, 눈앞의 이 삶이 전부가 아니지, 느끼게 해줄 여행지가. 슬픔과 후회에 너무 오래 발목 잡혀 있기엔 그래, 삶에는 다른 좋은 일도 많지, 생각하게 만들어줄 여행지가.
---「김신지, 잠시 다른 인생을 사는 기분」중에서

한국인이시군요. 여긴 왜 오셨어요. 네. 이 집 메뉴판 어렵죠. 그것 때문에 내가 또 일을 더 하고 있고…… 아무튼 설명해드릴게요. 일본어 사용 안 하니까 억양 좀 내릴게요. 안주는 꼭 하나 시켜야 하는데요. 감자튀김이 여기서 제일 괜찮아요. 그리고 맥주는…… 그냥 기본 맥주 한 잔 시키세요. 그게 나아요. 오래 있을 곳은 아니에요. 글쎄, 이 장면은 나를 몇 번이고 개운하게 만든다니까.
---「임진아, 혹시, 한국 분이세요?」중에서

운동보다 좋은 것은 운동이 끝난 다음이며 도서관보다 좋은 것은 도서관 문을 박차고 나올 때다. 여행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데, 여행에 관한 글을 쓰기는 인생에 관해서 쓰기만큼이나 까다롭다고 생각하면서도 여행보다 좋은 것은 여행 이후라고 생각한다. 인생이 끝나고 나면 인생보다 좋을까 잘 모르겠다.
---「서한나, 카페 사이공」중에서

묘비 주변에 꽂혀 있는 꽃들은 싱싱했고, 어린아이의 솜씨처럼 보이는 알록달록한 그림이 그 앞에 놓여 있었다. 언니의 얼굴이었다.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싱긋 웃으며 “코코다요(여기야)”라고 자기의 무덤 자리를 천진하게 알려주는 언니를 따라서, 나도 싱긋 웃고 말았다. 묘 앞에서 그저 쓸쓸하고 무거울 줄만 알았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밝아졌다. 나는 눈을 감고 시인에게 감사 기도를 드렸다.
---「오하나, 쓸쓸한 마음, 그럼에도 밝은 쪽으로」중에서

우리가 살았던 흔적은 냄새로 남았다. 온 짐과 온몸 구석구석 모닥불 냄새가 났다. 숲 냄새 같기도 흙냄새 같기도 했다. 어쩌면 초여름 밤 냄새일까. 아이들 목덜미와 머리칼에도 밴 그 냄새가 좋아서, 툽툽한 그 냄새가 함께 보낸 시간의 냄새인가 싶어서, 나는 아이들 품에 코를 박고 한참 껴안고 있었다. 힘들 걸 알면서도 또다시 떠나고 싶을 거란 생각을 했다. 그건 어쩐지 인생을 닮았네.
---「고수리, 돌아보면 반딧불이 같은 추억일 거야」중에서

궁금증을 궁금한 상태로 두지 않는다.
검색 가능성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태도.
원하는 답변을 얻지 못할 때는 검색어를 조금만 구체적으로 바꾸어보면 결국 궁금증이 깔끔하게 해소되리라는 믿음.
평소에 변수 앞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라 말하는 이들도 결국 스스로 돌발 상황을 그럭저럭 대응해나간다. 현지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믿을 만한 건 인터넷뿐이며 그것은 구글로 대표되는 검색 엔진이다.
---「서해인, 구글 지도와 어떤 돌봄노동」중에서

소나기를 피하러 헤밍웨이가 묵었다던 호텔 문도스의 바에 들어섰다가, 바닥이 점점 물바다가 되어가는데도 창밖에 내리는 비를 웃으며 구경하던 사람들과 그 사이에 앉아 즐긴 에스프레소 한 잔, 15쿡에 올 인클루시브를 제공하는 히론 푼타 페르디즈 비치에서 멍하니 앉아 본 바다 풍경, 말을 타고 숲을 지나 도착한 끝이 보이지 않는 폭포 아래에서 스포츠 브라에 레깅스 차림 그대로 에잇, 하고 커다란 웅덩이로 뛰어들어 즐겼던 수영, 아바나에서 만난 여행자들과 삼삼오오 모여 치킨 사들고 말레콘 해변 방파제에 앉아서 바라보던 석양……. 모두 완전한 여행의 장면들이었다.
---「봉현,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중에서

원치 않는데 내리는 빗소리. 들리지 않지만 어쩐지 들리는 것만 같은 눈 쌓이는 적요.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 유난히 북적거리는 시장통의 활기.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깔깔 웃으며 지나가는 명랑. 영업시간이 끝난 상점가에서 드르륵 문을 내려 완전히 잠그는 영업종료의 신호들. 기차역에서의 신호음. 건널목에서의 신호음. 지하철 도착 신호음. 식당 입장을 환영하는 인사말. 분명 집 근처에서도 맥락이 같은 소리를 들었을 테지만, 여행지에서는 소음과 신호를 구분하기가 유난히 어렵고 그래서 더 귀를 쫑긋하고 듣게 됩니다.
---「이다혜, 사라진 감각과 선호에 대하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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