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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립고 그립고 그립다

그립고 그립고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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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6월 14일
쪽수, 무게, 크기 320쪽 | 380g | 133*197*30mm
ISBN13 9791191769395
ISBN10 1191769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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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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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이 센 보리는 가는 내내 울면서 몸을 돌려보고 벨트를 밀어내지만 아빠는 벨트를 풀어주지 않는다. 어쩔 수 없다. 안쓰러워도. 마음이 쓰리고 너무 안됐지만. 어린이집 앞에 차를 세우고 안아주니 눈썹이 눈물에 촉촉이 젖은 채로 배시시 웃는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보리를 안는다. 아빠가 빠이빠이를 하며 뭔가 설명을 한다. 불안하다. 울기 시작한다. 우는 소리를 뒤로하고 회사로 향한다. 회사에서도 등이랑 배가 허전해 보리 생각뿐이다.
--- p.21

아내가 토라지고 성질을 부릴 때는 ‘절대 임신하면 안 된다, 우리는 물론 아이도 불행해진다’고 생각했다. 절대 아니기를 신께 기도했다. 그런데 마음이 풀린 지금은 또 생기면 낳아 감사히 잘 돌봐야지 하고 있다. 새벽에 몰래 배에 손을 얹고 마음속으로 물으니 생명이 있다고 했다. 보리에게 물어보니 남동생이라고 한다.
--- p.69

몸을 두고 떠났다
안아주고 볼을 부비던 보리
깨어진 채 있다
아무리 안아도 “아빠”하며 안아주지 않는다
멈추었다
이 안에 없다
--- p.79

보리가 떠날 때 다섯 살이었다. 나에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보리가 태어날 때 받아 안던 기억과 떠날 무렵 보리의 일상 이외에는. 보리는 느닷없이 태어나 갑자기 사라진 것만 같았다. 보리와 보낸 시간이 보리의 부재로 무의미해졌다. 내가 가장 수치스럽게 여겼던 ‘무의미’.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를 용서할 수 없는 이유가 내 안과 밖에 빈틈없이 들어차 있었다.
--- p.108

사진 속 보리 몇 달째
같은 표정 같은 몸짓
가짜다
찢어지면 그만인데
볼 때마다 새롭다
내 인생도 사진처럼 가짜라면
돌아가는 영사기 꺼서 그만이면
지금은 좀 슬퍼도 괜찮을 텐데
누구의 누구를 위한 영화일까
--- p.197

아내와 아이들을 보면서 보리가 나에게 바란 게 결국 이거였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되는 것. 수없이 실패를 반복하고 부족한 점이 많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것. 지금까지의 모든 과정, 보리를 보내주는 길은 결국 나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 p.254

떠나간 사람은 무조건 빨리 보내줘야 한다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처음엔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는 어떻게 하면 되살릴 수 있는지 그 길을 더듬어 온 것이다. 몸이야 어쩔 수 없더라도 참된 보리 말이다. 보리를 붙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보리를 위한 진정한 기도는, 보리를 잘 보내주는 것은, 보리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은 무엇인지 묻고 또 물었다. 결국 보리를 잘 보내주는 일은 이제 그만 잊고 살아가는 것이기 보다 내 삶에 그리고 주변에 보리의 빛을 보태는 것이었다.
--- p.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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