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수술장 상담실 입구에 쭈그려 앉아 울고 있었다. 눈물은 흐르지 않았지만, 분명히 울고 있었다. 사방이 고요하고 스산했다. 무릎 사이에 파묻은 얼굴을 들 용기가 나질 않았다. 고개를 들면 누군가가 나를 노려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것밖에 안 되냐고, 겨우 그렇게밖에 못하냐고 차가운 눈초리로 힐난할 것만 같았다. 그래, 모두 다 내 탓이다. 내 책임이다. 환자의 생사라는 버거운 무게가 내 두 어깨에 오롯이 지워져 있었다. 그 누구도 책임을 나누어 질 수 없었다. 외로웠다. 너무나 외로웠다.
환자와 교감할 줄 아는 의사가 참된 의사다. 의과대학 학생일 때 그렇게 배웠고, 10년여의 아직은 길지 않은 경험에 비추어 보더라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나친 감정이입은 냉철한 판단을 저해한다는 점이다. 매 순간순간 가장 현명한 판단을 해야 하는 외과의사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가깝지만 너무 가깝지는 않도록 환자와의 거리를 적당히 유지하는 것. 앞으로 평생 크론병 환자를 다루어야 할 입장에서 짊어져야 할 숙제다.
대중들은 말기암 환자에게만 주목할 뿐 환자를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리기 위해 애쓰는 의사들의 속사정은 모른다. 한 사람의 생명이 스러질 때 담당 의사가 얼마나 고뇌하고 좌절하며 절망하는지 의사가 아닌 일반인은 절대 알 수가 없다. 배를 열었음에도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배를 닫아야 하는 외과의사의 심정을 그 상황에 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눈곱만큼도 헤아릴 수 없다. 그 절망마저 따뜻하게 전달해 달라고 하는 건 무리한 요구다. 그건 인간이 할 수 있는 능력 밖의 일이다. 환자와 보호자를 위로하기 위해 거짓을 말할 수는 없고, 사실을 말하면서도 희망을 주기란 불가능하다. 그것이 말기암 환자를 대하는 의사들이 전달해야 하는 사실만을 건조하게 말하는 이유다.
생판 모르는 남의 목숨을 살려내고자 똥으로 가득 찬 배 속을 헤집으며 사투를 벌여본 적 있는가? 제발 살려 달라고, 우리의 노력을 헛되게 하지 말아 달라고 믿지도 않는 신에게 빌어가며 밤새 뜬눈으로 중환자실을 지켜본 적 있는가? 남들이 모두 기피하는 외과의사로 살면서도, 사람을 살리는 의사라는 자존심 하나로 버텨 온 지난 세월이다. 그 마지막 보루가 무너지는 순간 외과의사로서의 내 삶은 끝이다.
앞날이 창창한 서른 살 아들에게 내리는 시한부 선고라니. 부모의 반응이 어땠을 것 같아? 부정하고, 분노하고, 애원하며 매달리는 부모를 달래 주어야 했는데, 나는 차마 그럴 수가 없었어.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그들이 진정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거든. 내 피로와 우울이 그들의 절망과 만나 상담실을 무겁게 짓눌렀어. 나는 숨조차 쉬기 어려웠지만, 그들이 일어서기 전에는 차마 자리를 뜰 수가 없었어. 그들의 절규와 오열을 받아줄 대상이 거기에 있어야만 했고, 나 말고는 달리 그 역할을 할 사람이 없었거든.
“살려줘서 고마워. 복 받을 거야.”
이것이야말로 외과의사만이 누릴 수 있는 최선의 기쁨이자 행복이다. 내 환자들만큼은 쾌차해서 퇴원하는 것. 설령 구급차에 실려 들어오셨더라도 퇴원할 때는 걸어서 가실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게 좋아서 외과를 선택한 것이니까. 어르신, 수술도 예쁘게 잘 되었으니 오래오래 사셔야 합니다. 부디 천수를 누리셔야 해요. 다른 사람도 아닌, 제 환자이시니까요.
대한민국의 외과의로 살아간다는 건, 숱한 위기와 고난과 역경을 헤쳐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다 보면 분명 그만두고 싶어지는 때가 온다. 그럴 때 정신을 온통 지배하고 놓아주지 않는 감정이, 바로 저 자괴감이다. 내가 이러려고 의사가 되었나.
마지막 한마디 나누시고 조용히 눈감으시라 했던 환자는 어떻게든 살아보겠다는 의지를 꺾지 못하고 수술을 감행했지만 중환자실에서 결국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고, 조용히 보내 드리겠다던 보호자를 설득해서 무슨 수를 써서든 살려보겠다고 애썼던 환자는 의료진을 향한 보호자의 원망만 안은 채 숨을 거두었다. 기적을 믿고 무의미할지도 모르는 치료를 지속하는 것과 더 이상 환자를 힘들게 하지 않고 조용히 보내 드리는 것, 어느 쪽이 바람직할까.
둘째가 크면 꼭 이야기해 줄 것이다. 아빠가 반드시 살리고자 했던 환자가 한 명 있었단다. 네가 태어나던 바로 그 순간에 중환자실에서 죽음과 사투를 벌이고 있던 환자였지. 아빠는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그 환자는 삶을 이어가는 대가로 손을 잃고 말았어. 하지만 삶의 의지만큼은 누구보다도 단단했고, 손을 잃고도 아빠를 향해 환히 미소를 지어 주던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딸아, 어둠이 없이 빛이 존재할 수 없듯, 삶이 있으면 반드시 어딘가에는 죽음이 있는 거란다. 네가 세상에 태어나서 이만큼 자라는 동안 그만큼의 생명이 아프고 스러져갔음을 꼭 기억하렴. 이 순간 살아있음에 감사할 줄 아는 아이로 자라야 한다. 알겠니?
“아버님을 살린 건 제가 아니라, 아버님 자신이라고요.”
그렇게 R은 기적과도 같이 생환했다. 나는 기적을 부르는 한 사내의 의지를 보았다. 누구도 진심으로 믿지 않았지만, 환자 스스로는 진정으로 믿고 수없이 되뇌었을 기적을 부르는 주문, ‘이겨낼 수 있다’. 그래, 기적은 그렇게 스스로의 의지를 타고 우리 곁으로 찾아온다. R이 그랬던 것처럼.
임종이 얼마 남지 않은 말기암 환자들에게 내가 기어코 수술을 권하는 것도, 그들의 귀중한 남은 삶에 짧게나마 일상을 마련해 주고픈 이유 때문이다. 그것이 내가 외과의사로서 해줄 수 있는 마지막이다.
그냥 다 잘 되었다고 설명하고, 걱정은 속으로 혼자서만 할 걸 그랬나 싶은 후회의 감정이 슬며시 밀려들었다. 그래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을, 단지 결과론에 불과하다는 것을, 만약 그랬다가 아이의 상태가 갑자기 나빠지기라도 했다면 뒷감당이 어렵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면서도 부질없는 후회를 하는 것은, 오열하며 무너지던 엄마를 감당해 내기가 정신적으로 버거웠기 때문이리라. 노인 환자의 자식들이 울 때는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도, 젊은 환자의 엄마가 울 때는 나도 같이 감정이 격해지곤 한다. 부모된 자의 마음은 누구라도 다 똑같다.
의학은 선택의 연속이다. 답이 하나로 정해져 있다면, 매 순간 최선의 선택을 고민하는 부담이 덜해지겠지. 의학이란 1 더하기 1이 2가 아닐 가능성을 항상 생각해야 하는 학문이라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난 분명 의학이 아니라 수학이나 물리학을 전공했을 것이다. 나는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문제에 대하여 옳은 선택을 하도록 늘 강요받고, 그 결과는 온전히 나의 책임으로 돌아온다.
환자가 병동에 입원해 있는 한 의사는 ‘살아 있는 실패의 증거’를 매일 마주해야 한다. 보호자들은 회진 때마다 고맙다며 인사를 하지만, 실은 속으로 얼마나 나를 원망하고 있을까? 항상 결과가 좋을 수만은 없다는 자기 위안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마음의 짐이 환자를 만나는 하루하루 커져만 간다.
“지금이라도 편히 떠나실 수 있게 조치해 주실 수는 없습니까?”
아니다. 안 될 말이다. 나는 삶을 이어가게 하는 법을 배웠을 뿐, 삶을 거두는 방법은 배운 적이 없다. 이미 짙은 죽음의 그림자가 병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보호자들도 알고 있었다. 조용히 고개를 젓고 병실을 나왔다. 할머니는 다음 날 아침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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