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꿈은 여탕 때밀이였습니다. 세신사라고도 불리지만, 표준어가 아니라고 하며 한국표준직업 관리상으로는 목욕관리사라고 칭합니다. 제 꿈은 프로페셔널한 여탕 전속 목욕관리사였습니다. 하지만 성별이 다르면 직업적으로 상대방의 등을 절대 밀어줘서는 안 된다는 걸 알게 된 후에, 매우 아쉽지만 꿈을 접어야 했습니다.
그다음은... 아주 소박한 꿈이 있었습니다.
한 이천 평쯤 되는 적당한 대지에 마당 딸린 아담한 삼층집에서, 4인 가족이 타는 벤츠 S 클래스 같은 흔한 차 타고, 한지민 같이 수수하게 생긴 색시 만나서, 남들 다 있는 토끼 같은 아이 낳아서 사는.. 뭐... 그저 그런 흔한 꿈이었습니다.
지금은... 그짓말을 피노키오만 코만큼 보태면, 한지민 두 배만 한 색시와 토끼 인형을 찢어발기는 아들이 두 마리나 있습니다. 만약에 색시가 이 글을 본다면, 저를 찢어발길 수 있습니다.
벤츠도 없고, 삼층집도 없습니다. 삼이라는 공통점을 굳이 쥐어짜면, 현관까지만 우리 집이고 나머지는 국민은행장님 집인 30평대 아파트에서 산다는 것 정도?
주변인, 제2의 탄생기, 질풍노도의 시기에는 항상 무언가 특별한 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토요일 저녁에 아무런 약속이 없으면 “내가 인생을 잘 못 살았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는 “하루하루 감사하면 살자.” 라는 말이 정말 유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둥근해가 뜨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제일 먼저 이를 닦으면 하루는 시작되고, 어제와 똑같은 평범한 하루가 매일 반복되는데 도대체 뭐가 감사하다는 거지?” 그런데 살다 보니 “아무 일 없이 보낸, 지극히 평범한 하루” 가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지금보다 젊었을 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너무나 소소한 일들과 현재 가진 것들에 정말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직업의 특성상 새벽에 출근합니다. 잠이 부족해서 항상 졸리고 피곤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늘어져서 그런지, 피곤이 원기옥처럼 모여듭니다.
그래도 행복합니다. 유치원 버스에서 내리면 아빠가 너무 보고 싶었다고 매달리는 둘째. 학교 끝나고 학원까지 다녀오면 힘들 텐데, 문을 열면서 씩씩하게 인사하는 첫째. 온종일 지역사회 의료 발전에 이바지하고 퇴근해서 “맛있는 된장찌개 얼른 끓여줄게. 같이 밥 먹자.”라고 말하는 색시. “오늘도 고생했다. 수고했다.”라고 말씀해주시는 부모님이 계셔서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