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된 사랑으로는 모든 것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다. 그것은 위선일 뿐이다. 사랑의 반대는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이다. 나는 내 어깨를 두드렸다.
“성미야, 잘 살아줘서 고마워. 참아줘서 고마워. 참을성 있게 살아온 너를 칭찬한다.”
어둠 속에서 저에게 한 줄기 빛이 되어준 말이 있다.
---「문성미_마음을 깨운 사랑의 메아리」중에서
삶에서 모두 드러낼 수 없는 나의 마음들이 적어도 글을 쓸 때만큼은 나 자신을 적나라하게 보여줄 수 있는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 나도 모르게 내 안에서 한계를 긋는 모든 범위를 벗어나 마음껏 춤추듯 날았으면 좋겠다. 누구의 이야기인지 모르게 상상력을 품고 너와 나의 이야기로 화답했으면 좋겠다. 글쓰기의 즐거움과 아름다움에 규칙은 없으니 계속해서 글을 쓰면서 도전하고 두려워하지 말자. 마음껏 쓰자.
---「신수정_마음껏 쓰자」중에서
이 땅에서의 삶은 영원하지 않다. 성경에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이 땅에서의 삶이 ‘나그네길의 세월’이라고 말했다. 당신이 살아온 인생 여정은 어떠하셨는지 아빠에게 여쭤보고 싶다. 많이 힘드셨냐고, 때로 행복할 때도 있으셨냐고…. 20대 중반에 예수를 믿고 부모님의 영혼 구원을 위해 오랜 시간 기도했다. 항상 나의 기도 제목 1순위였다.
---「이성은_아버지를 향한 간절한 부르심」중에서
이 무렵 오랜 인연을 맺어온 안만호 목사님 권유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글쓰기에 입문하게 됐다. 그저, 나처럼 전공도 안 하고 실력 없는 초급자들이 배우는 공간이려니 했는데, 초대받고 들어와 보니 각계각층의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모여 있었고, 그분들의 직업과 경력에 압도당했다. 책을 좋아하고 읽는 것을 좋아하지만 제대로 글을 써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머릿속으로만 긁적이는 것이 아니라 글로 만들어서 다른 사람들과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모르는 사람에게 나를 드러내는 게 꺼려지지만, 글쓰기란 본질적으로 진정성을 나타내는 일이다. 나는 나의 취약점을 맘껏 드러내며 내면의 글을 쓰도록 내려놓는 연습을 아직도 하는 중이다. 잘하는 사람을 따라 하는 것만으로도 반은 성공한다 했던가! 따라가다 보니 어딘가에 닿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글쓰기를 거듭하다 보니 사유하는 시간이 많아져 말보단 글로 전달하는 게 편해졌다.
---「정향옥_나를 작아지게 하는 요인들」중에서
정신없이 살다가 문득 우리 가족 이대로 가다간 나이 들어서 함께 얘기 나눌 추억거리가 너무 없는 건 아닐지 걱정될 때가 있다. 그럴 때 후다닥 스케줄을 모아본다. 금요일 밤 4가족이 토요일 쉬는 게 확인되면 토요일 새벽이 바로 그날이다. 새벽 4시쯤 일어나 눈 못 뜨는 애들 깨워서 뒷좌석에 밀어 넣으면 동해가 보일 때까지 구겨져서 잔다. 남편이 운전하는 동안 옆에서 부지런히 맛집, 카페, 가볼 만한 곳 검색은 내 몫. 너무 이른 탓에 가게 문을 열지 않아 바닷가에서 한 참 걷고 놀다 와야 해도, 그저 아무말 안 해도 함께 움직이는 것 자체가 그림이다. 우스꽝스런 사진도 찍고 그걸 또 카톡 대문 사진에 올리고, 평소 못했던 대화도 나누고 이 맛에 여행하나보다. 아침으로 뜨근한 물곰탕 한 뚝배기하고 커피 거리에서 차 한잔하고 엄청 맛있다는 메밀 국숫집을 점심으로 먹고 풍광 좋고 걷기 좋은 곳 한참 거닐다 와도 오후 4시면 어느새 집이다. 12시간의 깔끔한 여행~ 그야말로 게릴라 작전 같은 여행이다.
---「정은경_게릴라 가족」중에서
“엄마! 난 엄마가 자랑스러워, 엄마가 우리 엄마라서 너무 좋아.”
“엄마의 일하는 모습도 좋고 존경스러워요. 어릴 적에는 엄마는 왜 매일 일만 할까? 다른 엄마들은 학교도 잘 오고, 같이 놀아 주기도 잘하는데, 우리 엄마는 왜 매일 바쁠까? 생각도 했는데, 어른이 된 지금은 엄마가 이해돼요. 빈손으로 시작한 집안을 이만큼 일으켜 세우시느라 힘을 다해 수고하신 것, 그래서 우리가 이만큼 넉넉하게 당당하게 자란 것, 그러면서도 엄마는 스스로 성장을 위해 배움과 일을 놓치지 않고 계시지요. 나도 엄마처럼 살고 싶어요.”
내 눈가에 방울방울 눈물이 맺힌다. 예상치 못한 아이들의 말에 어찌할 줄 몰랐다.
---「오순옥_우리 엄마라서 너무 좋아!」중에서
“한국 선생님들, 긴급 기도해 주세요. 팔룬이 코로나로 죽어가고 있어요.”
미얀마 페닐신학대학 망보이 학장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페북 전화를 통해 들려오면서, 우리는 팔룬의 회복을 위한 긴급 기도를 시작했다.
“하나님 팔룬을 살려주세요. 그분 가시면 하나님 일이 심히 어렵습니다.”
팔룬은 한국팀이 미얀마 타무에서 진행하는 일들을 총괄하는 분이다. 우리는 기도하면서 자주 팔룬의 경과를 페북을 통해 체크했는데, 2주가 지나도 차도가 없고 아무것도 먹지도 못하고 몸이 점점 허약해지면서 정신마저 오락가락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기도하던 우리는 팔룬에게 위로와 힘이 되고,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받으라고 입원비를 보냈다. 망보이 학장을 팔룬에게 보내서 전화기를 통해 통성 기도도 했다. 그렇게 기도하기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나 팔룬이 코로나19로부터 기적적으로 회복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팔룬이 “감사합니다. 제가 죽음 문턱까지 다녀왔습니다. 여러분의 기도 덕분에, 해야 할 일이 있어서 회복되었습니다.”라는 전화를 받으면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안만호_미얀마에 흐르는 희망의 시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