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가 좋았다. 호칭 따위 설정에 들어가 아무때나 바꿀 수 있는. 20구경 50배율의 망원 렌즈를 통해야만 표정을 읽을 수 있는. 마음에 드는 모습만 골라 저장할 수 있고, 나의 시간에 맞추어 꺼내볼 수 있는. 똑같이 휴대폰을 들어도 그쪽에서 나를 찍을 리 없고, 불쾌하게 뜨거운 체온과 끈적이는 체액을 공유할 일 없고, HPV 고위험군 바이러스 같은 것을 나누지 않아도 되는. 언제든 내키지 않으면 그만둘 수 있는. 그래서 더 달콤하고 안전한. 이만큼의 거리가 이제는 좋고 편했다. --- p.33
그래, 집을 화분이라고 생각해보자. 식물이 죽어나간다고 화분의 수명이 끝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깨끗이 화분을 닦고 또 다른 식물을 담으면 화분은 완전히 다른 풍경을 보여주곤 하지 않았나.
이 소설들은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인물과 소재가 다양한데도 모든 이야기에 실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디테일이 풍부하고 동선이나 상황 묘사가 정밀해서 쉽게 이입이 된다. 하지만 흥미의 지점에서 멈춰 있는 게 아니다. 가령 아이돌 팬덤 현상을 실감나게 재현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작동시키는 구조와 그를 통해 소비되는 개인의 욕망, 그 유착관계를 통찰함으로써 윤리적 질문을 던진다. 식물을 유기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내면에 있는 불안과 두려움을 포착하는 지점 또한 서늘하게 다가온다.
- 은희경 (소설가)
신뢰가 확보되면, 작품은 읽는 이의 취향과 무관하게 강렬한 흡인력을 갖는다. 깊은 울림과 풍부한 여운까지 준다면 더 말할 것이 없겠다. 이런 작가를 발견한다는 것은 심사자에겐 큰 행운이다. 올해 우리는 큰 행운을 얻었다. 작가의 더 큰 성장을 지켜볼 수 있다는 기쁨도 함께.
- 정유정 (소설가)
문체에 깃든 감정의 목소리가 설득적이어서 매번 나는 류시은의 마음이 기우는 쪽으로 함께 스러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