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이지 나에게 산티아고 순례길은 이래저래 험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발하기로 했다. 이번에도 떠나지 못한다면, 다시는 도전하기 어려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설령 디스크 악화로 완주하지 못하고 중간에 귀국하는 일이 있더라도, 아예 시도조차 하지 못한다면 평생 후회로 남을 것 같았다.
알베르게에서의 첫 번째 숙박을 감안해 4인실로 예약했었는데, 나 빼고 3명이 모두 여성이었다. 아내에게 여성 세 명과 동침하게 생겼다고 카톡을 보냈더니 “계 탔네!”란 짧은 답이 왔다.
조선시대 왕비 의상 북마크. 책을 읽다 책 사이에 끼워두면 네가 왕비가 되는 것이라고 뻥을 섞어 말해줬더니, 환한 웃음과 함께 너무 좋아했다.
까미노 길을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세계 각국에서 온 순례자들과 만나게 된다. 길을 걸으며 마주치는 사람마다 서로 “올라(Hola!)” 또는 “부엔 까미노(Buen Camino!)”라고 인사를 나눈다. 스페인어로 ‘안녕!’ ‘좋은 순례길 되세요!’란 뜻이다. 그리 특별하다고 할 수 없을 것 같은 이 인사말은 힘이 들 때마다 묘하게 큰 힘과 위로를 준다.
몸은 고단하지만, 까미노 길을 걸으며 소소한 행복이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아마도 평소 일상과는 전혀 다른 경험을 하기 때문이 아닐까. 더군다나 한 달 반이라는 긴 시간을 낯선 타국에서 혼자 보내는 경험은 처음이다 보니 더 그런 것 아닐까 싶었다. 어쨌든 산티아고 순례길은 힘들지만 소소한 행복이 있고, 그 소소한 행복으로 인해 힘든 순간을 거뜬히 넘길 수 있는 것 같다.
빨래가 거의 끝나갈 무렵 그 스페인 여성이 나에게 다가와서는 다시 뭐라고 말을 했다. 이번에도 알아듣지 못하자 왈~왈~ 개 짖는 소리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닌가! 아! 이런~ 그때야 비로소 내 빨래를 넣은 빨래통이 반려동물 전용임을 깨달았다. 자세히 보니 빨래통 앞에 작지만, 개와 고양이 그림도 그려져 있었다.
나의 후미에는 뭘까? 실제로는 결코 그렇지 못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젠틀하고 정의롭다는 평가를 받고 싶었다. 마초 근성이 가득하면서도 페미니스트처럼 보이고 싶었다. 가끔 불쑥 튀어나오기도 했지만, 나의 본성과는 다르게 행동해야 했던 것. 그런 위선을 통해 가당찮게 괜찮은 사람이란 평가를 받고 싶은 인정욕구가 강했던 것. 바로 그게 내가 밟아야 할 나의 후미에가 아닐까?
부르고스에 도착해서야 메세타 구간을 건너뛰고 산티아고 도착 후 다시 피스테라까지 걷는 걸로 결정했다. 끝없이 고독한 황무지 길이자 침묵 속에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메세타 대평원길보다는, 생장에서 산티아고까지 걸었던 길을 반추하며 걷다가 대서양 바다를 만나는 피스테라 길이 더 끌렸다.
숙소에서 배낭을 정리하던 중, 잃어버린 줄 알았던 안경을 발견했다. 배낭 속 침낭 칸 사이에 끼어 있었다. 마치 집 나간 며느리라도 돌아온 것처럼 무지하게 반가웠다. 늘 잃어버리기만 했는데, 이렇게 돌아오는 것도 있구나. 아니, 돌아온 게 아니라 안경은 그 자리에 있었을 텐데, 눈 어두운 내가 보지 못한 것이었다. 하물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놓치고 사는 것은 또 얼마나 많을까.
어느덧 집을 떠나온 지 한 달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순례길을 걷기 시작해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낯선 여행자였다면, 이제는 익숙해져 원래부터 방랑 생활을 해온 순례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순례길을 완주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속도로 걷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 모든 것이 낯설고 매일 매일이 새롭다. 처음 가보는 장소, 처음 만나는 사람, 처음 먹어보는 요리…. 내 인생에서 이렇게 특별한 순간이 또 있을까.
이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40km도 채 남지 않았다. 순례길을 걷기 시작할 때만 해도 산티아고까지 남은 거리가 줄어들 때마다 은근히 쾌감도 느껴졌는데, 200km가 남은 순간부터 쾌감보다는 아쉬움이 더 커졌다. 특히 100km 지점을 통과한 후에는 빨리 걷고 싶은 마음조차 사라져 점점 줄어드는 남은 거리 표지석이 쳐다보기도 싫어졌다. 왜일까? 산티아고에 도착하게 되면 내 인생에서 가장 특별하고 비현실적인 시간이 끝나고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오후 3시경에 탈수해 널어둔 빨래가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6시경에는 바짝 잘 말라 있었다. 스페인의 햇살이 강렬함을 새삼 확인했다. 내 급한 성질머리도 스페인의 햇살에 널어 말리면 바짝 마를까.
순례길을 걸으며 행복한 순간이 참 많았다. 하지만 그 순간 행복하다고 느끼기보다는 지나고 나서 행복이었음을 깨달았던 경우가 훨씬 많았다. 살아가면서 행복을 그 순간에 바로 감지할 수 있다면 인생은 훨씬 풍요로워질 것 같은데 말이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면 작은 일에도 즉각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으로 변할 수 있을까? 오늘의 내 모습을 보면 여전히 회의적이다.
돌아보니 내가 순례길을 걷는 동안 정말 많은 천사가 찾아와 주었다. 이제는 내가 천사가 될 시간이었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싶어 기꺼이 일행을 위해 저녁값을 계산했다.
그녀는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출발해 산티아고까지 걷는 동안 20여 명의 머리를 잘라줬다고 한다. 힘든 순례길을 걸으며 자신의 재능을 기부하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까미노 순례 중 헤어컷 서비스를 받는 것은 아주 특별한 체험이었다.
순례길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노란 화살표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생명선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길에 노란 화살표가 없다면 그건 산티아고 순례길이 아니라 그냥 길일 뿐이다. 이 노란 화살표 덕분에 내가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지가 명확했다.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순례자들은 노란 화살표를 따라 자신이 이곳에 온 의미를 되새기며 묵묵히 걷기만 하면 된다. 인생을 살면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될 때마다, 순례길의 노란 화살표처럼 갈 길을 알려주는 그런 존재가 나에게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대서양과 마주한 항구 마을 피스테라까지는 63km밖에 남지 않았다. 비가 워낙 세차게 내리다 보니 고어텍스 신발 안으로까지 흠뻑 물에 젖었다. 약 3시간 동안을 거센 비바람을 맞으며 아무도 없는 길을 혼자 걷는 느낌은 특별했다. 외롭고, 처량하고, 춥고, 배고프고…. 누군가 홀로 걷고 있는 나에게 이렇게 묻는 것 같았다. 너 거기서 뭐 하고 있니?
“요즘 뭐하면서 지내?”
“산티아고 순례길을 준비하고 있어.”
이제 순례길도 끝나가고 있으니 한국으로 돌아가면 무어라 대답할 수 있을까. 고작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다고 뭔가 큰 깨달음을 얻는다던가, 인생이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퇴직 후 삶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를 이루어낸 나는 적어도 산티아고 이전과 이후의 삶이 같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은 들었다.
설렘과 걱정이 공존하며 시작했던 은근 소심한 중년아재의 나 홀로 46일간의 산티아고 순례길…. 제법 많은 실수와 시행착오가 있었고, 또 전혀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내 인생에서 이렇게 특별한 순간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