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리바이어던』에서 엿보이는 홉스의 정치사상은 17세기 당시의 영국 및 유럽적 상황하의 시대적·정치적 제약성을 내장한 ‘시대의 아들’로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오늘의 민주화 시대를 한층 더 진척시켜나갈 이론적·실천적 가능성과 역량이 충만한 ‘시대를 선도할 아들’로서 정치철학적 역할을 온전히 수행할 사상 체계라는 점 또한 이 책을 통해 확인해볼 수 있다. 아무쪼록 홉스 정치철학의 핵심적 알갱이와 논지가 응축된 『리바이어던』을 보다 사회 발전적이며 변혁적인 관점에서 읽어내보는 색다른 재미를 체험해보며 새로운 홉스 상을 찾아냈다는 나름의 성과와 지적 뿌듯함을 제대로 느껴보기를 감히 소망해본다.
--- p.9, 「서문」 중에서
‘리베르타스’는 모든 개인들이 각자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상호 간에 처절한 생존 투쟁을 벌이고 있는 ‘자연 상태’에서의 비참한 모습을 가리키고 있다. 그리고 ‘임페리움’은 막강한 권력을 쥔 통치자가 지배하는 강력한 국가하의 평화로운 모습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흡사 ‘나락’과 ‘낙원’을 대비시켜 보여주는 그림 속에는, 강력한 통치권에 기초한 국가가 정초될 경우에라야 죽음의 상태에서 벗어나 안정되고 평화로운 사회가 구현되어 비로소 풍족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홉스의 바람과 논지가 담겨 있다.
--- p.54, 「1장 자유 민주주의 이념의 선구, 홉스」 중에서
홉스와 데카르트 양자는 신과 교회 권력에 의해 지배되고 있던 당시의 전근대적 신분제 사회로부터, 이성과 합리적 국가권력에 의해 통치되는 근대적 시민사회로의 이행을 추구하는, ‘체제 전복적이며 혁신적인’ 정치철학적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이처럼 가히 ‘혁명적’이라고 불릴 만큼 ‘급진적 사상가’로서 두 철학자의 공분모적 특징은 신의 말씀에 기댄 종교 권력이 신분제적 사회 체제를 옹호하며 모든 것을 통제하던 당시의 구시대적 지배 질서를 전복하기 위해, 그 통치 이데올로기로서 ‘신’을 허물어뜨리고자 철학함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 p.64, 「1장 자유 민주주의 이념의 선구」 중에서
홉스를 근대 자유 민주주의의 철학적 선구로 보게 만드는 또 다른 요소는 『리바이어던』에 등장하는 저항권 개념이다. 확고한 평화 체제의 구축을 위한 필수적 전제 조건으로서 강력한 국가권력 내지 통치권을 요청했던 탓에, 홉스는 오늘날까지 절대군주제를 정당화한 사상가로 오인되어왔다. 물론 그렇게 읽힐 수 있는 내용과 대목이 있다. 그는 비록 강력한 국가권력을 수립코자 했지만 그러한 권력의 규범적 정당성이 반드시 확보되어야 함을 강력히 주창했다. 그리고 그러한 정당성이 구성원들의 자유로운 계약을 통해 마련되는, 계약론적 절차 방안을 제시했다.
--- p.68-69, 「1장 자유 민주주의 이념의 선구, 홉스」 중에서
오늘날의 국내외적 실상이 이렇다면, 홉스의 사상과 그 핵심이 담긴 『리바이어던』이 우리에게 던지는 철학적 메시지는 더 이상 낡은 과거의 것이 아닌 셈이다. 그것은 여전히 우리에게 중요하면서도 유의미한, 새로운 철학적 성찰의 울림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 p.77, 「1장 자유 민주주의 이념의 선구」 중에서
홉스는 철학의 고유한 본성과 역할을 저버린 채 신앙을 논리적으로 체계화하는 기제(機制)로 전락해버린 스콜라 철학을 ‘헛되고 해악한’ 철학으로 규정, 비판했다. 동시에 이를 폐기처분하고 본래의 철학적 역할과 기능을 회복하고자 시도했다. 이를 위해 그는 기존의 철학적 사유 방식과 전면적으로 단절된 새로운 혁신적 방법론을 도입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당시 떠오르던 근대적 과학 탐구 방식이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 p.86, 「2장 『리바이어던』읽기」 중에서
마치 끊임없는 종교 전쟁으로 인해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던 데카르트가 전쟁을 종식하기 위해 구교나 신교에서 내세운 신 대신, 인간 누구나 지닌 ‘이성’을 옳고 그름의 보편적 판단의 척도로 삼을 것을 주창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를 철학적 해결책으로 제시한 것처럼, 홉스는 ‘사회계약론’을 제기했던 것이다. 홉스 역시, 신앙에 관계없이 이성적 능력을 소유한 개인들은 자발적인 의사에 따라 상호 계약하고 합의할 수 있는 역량과 실천 의지를 지니고 있으며, 그러한 절차를 통해 평화로운 사회를 구축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 p.103, 「2장 『리바이어던』읽기」 중에서
홉스는 자연 상태를 개인의 생명조차 유지하기 어려운 대단히 참혹하고 절망스러운 상황으로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속에서 희망의 탈출구를 발견해낸다. 우선, 죽음에 대한 극도의 공포 및 생명에 대한 애착과 관련된 ‘정념’들은 인간들로 하여금 상호 공존과 평화를 추구하게 만든다. 더불어 인간의 ‘이성’은 그러한 평화로운 상태로 이행해나가야 할 근거를 제시하고 그 구체적인 과정과 방법을 주도한다. 이렇듯 홉스는 정념과 이성, 이 두 가지 인간의 근본적 특성에 대한 고찰을 통해, 인간의 이기적 본성이 무차별적으로 분출됨으로써 야기되었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로부터 벗어날 탈출구를 확보하고자 한다.
--- p.135, 「2장 『리바이어던』읽기」 중에서
그토록 무소불위의 힘을 과시하던 리바이어던을 소멸로 내몬 요인, 다시 말해 국가의 붕괴를 초래하는 주된 원인으로 홉스는 크게 두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홉스는 이 두 가지 가운데 특히 후자를 중시한다. 그가 보기에 당시 영국 사회의 혼란상과 무정부 상태는 그 같은 선동적이며 자극적인 잘못된 교설의 해독에서 비롯된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러한 결함은 반란이나 혁명을 정당화하는 여론을 형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해악이 훨씬 더 크다고 보았다. 홉스는 이 같은 선동적이며 충동적인 교설을 대략 여섯 가지 정도로 구분해놓고 있다.
--- p.200-201, 「2장 『리바이어던』읽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