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통증의 시간을 해독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통증과 함께 이어진 병가, 휴직, 휴직의 연장 그리고 퇴직까지. 사람들에게 지난 시간의 나는 단지 아픈 사람일 뿐이었다. 나의 시간은 아팠다는 말 하나로 성에가 낀 유리창처럼 뿌옇게 희미해졌다. 뽀득뽀득. 나는 그 유리창을 닦아본다. 뿌옇고 희미한 것, 이건 나의 시간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살지 않았다. 나는 내 시간에 의미를 찾아주고 싶다. 어떤 이는 내가 몇년째 ‘부재중’이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난 어디에도 간 적이 없었다. 나 여기 있다고, 여기서 절대 포기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매 순간 투쟁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건강하지 않았다고 해서 나의 그 시간들이 아무 의미 없이 흘러간 것은 아니라고. 하루에 단 십 분을 산책하는 날도, 혹은 아예 바깥에 나가지 못한 날도 나는 더 나아지기 위한 마음을 단 한 순간도 놓은 적이 없었다.
--- p.9~10
처음엔 오른쪽 목이 아팠다. 통증이 온몸으로 퍼지며 섬유근육통이란 진단명을 받게 된 것은 반년 후의 일이었다. 나쁜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듯 내 몸은 순차적으로 와르르 무너졌다. 목을 치료하러 갔다가 온몸에 주사를 맞게 되고, 엑스레이와 MRI를 찍다가 핵의학 검사를 받게 되었다. 한 달 동안 병원에서 받을 수 있는 모든 검사를 한 후 받아 든 결과지는 이상 없음. 모든 것이 이상했다.
--- p.17
두 달 전 경추 MRI 결과를 봤을 때와 비슷한 두려움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몸이 아픔에도 검사상 아무 이상이 없을 때 환자가 가지게 되는 두려움. 나는 이제 신경성이나 심인성 질환을 의심받게 되는 것은 아닌지, 나의 통증이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아닐지 불안했다. B 대학병원 의사는 다행히 나의 통증을 의심하지 않았고, 약 처방을 여러 방면으로 바꿔보는 식으로 치료를 이어 나갔다. 그곳에서 나는 통증에 쓸 수 있는 모든 약, 즉 뉴론틴, 익셀, 심발타, 리리카, 아이알코돈을 순차적·복합적으로 복용했으나 모두 효과가 없었다. 마침내 마지막 마약성 패치가 부작용 때문에 실패로 끝나자 더 이상 시도해볼 수 있는 약이 없게 되었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총점 79.75점이라는 높은 점수의 섬유근육통 설문지 점수뿐이었다. 의사도 나도 말수가 많이 줄어든 상태였다. 그 시기 나는 섬유근육통, CRPS(복합부위 통증증후군)를 인터넷에서 찾아보며 점점 불안감이 커져갔고, 신동욱 배우의 CRPS 투병 이야기를 보며 자꾸 눈물이 났다. 다시 아프기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 p.37
옷은 나에게 단순한 물건이 아니었다. 그 옷을 입고 갔던 곳, 했던 일, 만났던 사람이 고스란히 떠오르는 감정적인 물건이었다. 내가 그 옷들과 어떤 설렘을, 어떤 떨림을, 어떤 공기를 공유했는지 자꾸 떠올라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마음을 굳게 먹고 옷걸이에서 옷을 하나하나 빼냈다. 내가 아직 건강했을 때 음악 페스티벌에 입고 갔던 옷, 홍대 앞 클럽에서 공연할 때 입었던 옷, 가장 친한 친구 결혼식 때 입었던 옷을 꺼내 차곡차곡 개키는데 마음이 시렸다. 옷을 정리하는 것은, 마치 내가 그 옷들과 함께했던 청춘의 시간을 정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의 이십 대와 삼십 대 초반이, 가장 건강했던 나의 모습이, 가장 활발하고 생기 넘치게 이곳저곳을 누비던 나의 시간이 옷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 p.69~70
내 몸 상태를 어떤 단어로 설명해야 할까.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무거워, 라고 말하는 것은 어차피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절인 배추 같은 상태라고 표현하기 시작했다. 몸통에 물 을 잔뜩 머금어 무겁게 축 늘어져 배추 본연의 파릇함을 잃은 상태. 섬유근육통은 마치 그런 상태로 살아가는 느낌이다(자매품으로 데친 시금치라고 비유하기도 한다). 절인 정도가 매일 다르긴 하다. 굉장히 괜찮을 때는 겉절이 정도였다가 어떤 날은 절여놓고 몇 달은 잊은 채 방치해둔 상태 같다.
--- p.128
편두통과의 싸움에선 내가 완패다. 나는 매번 지기만 했다. 감히 이길 생각도 없다. 그저 잘 어르고 달래 앞으로의 생에서 덜 만나려고 노력할 뿐이다. 머리에 심장이 있는 듯 혈관이 쿵쿵거리는 까만 밤중에 편두통이 가라앉기만을 기다리는 시간은 항상 괴로웠다. 이제 그 밤에는 덜 들르고 싶다. 숨지 않고 빛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 p.149
식물을 받은 후 사흘 후에 물을 줘야 한다고 했는데, 그게 그날이었다. 나만 믿고 우두커니 서 있는 커다란 식물은 혼자서 물을 먹을 수 없었고, 내가 죽든 살든 일단 그 식물을 살리고 싶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나는 생사를 고민하다 눈물을 닦고 몬스테라에게 첫 물을 주었다. 내가 자발적으로 키운 첫 번째 식물이자 나를 제외하곤 처음으로 잘 키워보고 싶은 다른 존재였다. 나는 화분에 물을 주고 또 주면서 이 아이가 나를 일으켰다는 것에 북받쳐 올라 다시 울고 눈물을 닦기를 반복했다. 그날 내 눈앞의 풍경은 눈물 필터 덕에 조금 뿌옜다. 그러다 눈물을 닦으니 푸르고 파릇한 잎들이 서 있는 것이 참으로 예뻤다. 감격스럽게 예뻤다. 죽을 생각 말고 사 주 후에 또 물을 줘야지, 라고 미래를 계획하게 되었다.
--- p.171~172
가끔 노래하던 내가 그리우면 예전에 내가 노래했던 영상을 본다. 노래를 들으며 다시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날을 꿈꿔본다. 통증이 많이 나아진대도 기타 연주는 어려운 미션일 것이다. 그럼에도 완전히 포기해버리고 싶진 않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을 것이다. 나는 다시 사람들 앞에서 내 노래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공연은 오 년 전이었다. 내가 다시 노래할 수 있을까? 아니다, 마지막 무대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 p.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