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지혜는 궁역락(窮亦樂) 통역락(通亦樂)이라, 막혀도 즐거움이요 뚫려도 즐거움이라 했으니, 너무 먼 길이지만 기꺼이 그 경지까지 걸어가 보기로 하자.
--- p.5, 「여는 글」 중에서
15년 전부터는 동서양의 대표 종교라 할 수 있는 유교, 불교, 도교, 기독교의 4대 경전인 논어, 금강경, 도덕경, 성경의 말씀을 상호 비교해서 살펴보는 ‘동서양 4대 경전 비교강좌’를 진행해 오고 있다. 이 책은 15년 동안 비교강좌를 진행했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 p.5-6, 「여는 글」 중에서
노자나 예수님, 석가모니는 말할 것도 없고 공자, 맹자, 장자, 소크라테스, 스피노자, 간디, 톨스토이, 소로우에서 우리나라의 최제우, 최시형, 류영모, 함석헌, 장일순 선생에 이르기까지 동서고금의 성현들이 전하는 진리는, 한 나무 안에서도 잎사귀나 꽃의 크기나 모양과 색깔이 조금씩 다르듯 표현만 조금씩 다를 뿐 그 바탕이 되는 뿌리는 한결같았다.
--- p.10, 「여는 글」 중에서
태어나면서부터 깨달을 수 없는 범부인 우리는 곤이지지(困而知之)나 곤이불학(困而不學), 즉 곤경에 처해서야 깨닫거나, 무지하여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배우지 않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 위해, 학이지지(學而知之)의 간곡한 마음으로 옛 성현들의 음성을 따라 현재와 미래의 해법을 찾아보고자 한다.
--- p.19-20, 「프롤로그」 중에서
도(道)나 우주는 인간의 인식으로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므로 끝없이 나아가(逝) 멀리 가고(遠), 끝없이 멀리 간다는 것은 결국 되돌아오는 것(反)을 말한다. 여기서 되돌아온다는 의미는, 도(道)가 인간 → 지구 → 태양계 → 은하 → 우주로 무한 확장되지만, 종국에는 다시 인간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 p.28, 「본문」 중에서
스피노자는 더 나아가 ‘신즉자연(神卽自然), 자연즉신(自然卽神)’이라 하며 노자의 자연(自然)을 서양 기독교의 신(神)과 같은 의미로 해석했는데, 여기에서 신과 자연은 스스로 움직이고 스스로가 스스로를 생산하는 자를 의미한다. 현대 천문학에서 우주가 스스로 끝없이 확장하고 있다는 빅뱅우주론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 p.29-30, 「본문」 중에서
첫 구절부터 살펴보면 ‘上善若水(상선약수)라,’ 가장 훌륭한 것은 물과 같다. 노자가 말하는 바람직한 삶의 태도를 한마디로 요약하라면 ‘물처럼 살라’는 것이다. 노자에게 있어서 물은 도(道)의 객관적 상관물이다.
--- p.50, 「본문」 중에서
물의 속성을 들어서 여러 가지 모양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우선 ‘居善地(거선지)라,’ 머무르는 데는 땅이 좋다는 것이다. 물이 머무르는 곳이 결국 낮은 땅인데, 사람도 그곳에 깃드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온갖 잡스러운 것이 섞여 있는 낮은 땅보다는 높은 곳을 지향한다. 고결한 것이 좋아 보이지만, 높을수록 위태롭다는 것을 잘 모른다. 예수님께서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위해서 왔다”라고 하셨는데, 의인이 있는 자리가 높은 곳이라면, 죄인이 있는 자리가 바로 낮은 땅이다.
--- p.82, 「본문」 중에서
다음은 ‘心善淵(심선연)이라’, 마음은 호수와 바다처럼 깊은 것이 좋다. 여기에서 마음은 세상의 이목이나 오감(五感)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말한다. 얕은 물은 약한 바람에도 파도가 잦지만, 깊은 바닷속은 늘 고요하고 잔잔하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도 깊은 바다와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 p.82, 「본문」 중에서
금강경에는 중국 선종의 역사를 연 육조 혜능이 큰 깨달음을 얻었던 ‘게(偈)’도 전해지는데, 혜능 스님은 “불응주색생심(不應住色生心), 응당 색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며, 불응주성향미촉법생심(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이라, 응당 소리·냄새·맛·감촉·법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 것이니라.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이라, 응당 머문 바 없이 그 마음을 낼지니라”라는 대목을 듣고 크게 발심하여 수행을 시작하셨다고 한다. 이 아무것에도 머물지 않는 마음이 바로 심선연(心善淵)의 마음이다.
--- p.83,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