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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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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0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264쪽 | 310g | 125*215*20mm
ISBN13 9791192884288
ISBN10 1192884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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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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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애의 인생은 오직 야학을 만나던 마흔일곱에 시작되는 것이다. 그의 이야기엔 놀라운 생기와 빛깔이 드리워졌다. “너무너무 좋았어요. 지금도 야학 이야기만 하면 소름이 돋을 정도로.” 그가 ‘너무너무’를 남발했다. 스무 살 남짓한 교사들이 서투른 솜씨로 매일 해주는 밥도 너무 맛있었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줄 알았던 자신이 손이 불편한 누군가에게 밥을 떠먹여 줄 수 있다는 것도 너무 좋았다. 바람에 머리가 날리는 것도 너무 좋았고 비 오는 날 우산을 쓰고 나가는 것도 너무 좋았다.
---「짐작과는 다른 일들」중에서

선을 넘는다는 건 위험한 일이다. 모욕과 멸시가 화살처럼 빗발치고 거대한 동물이 백주 대로에서 총을 맞고 살해된다. 그러나 진실을 본 존재는 반드시 선을 넘는다. 그리고 선을 넘은 존재들만이 볼 수 있는 어떤 세계가 있다. 나는 그들로부터 더 아름답고 위험한 세계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목숨을 걸고 탈주하는 비인간 동물과 짐승 취급을 거부하며 인간이 되기 위해 투쟁하는 장애인, 그리고 인간이기를 거부하고 동물이 되기 위해 싸우는 어떤 인간 동물들 사이에서 나는 이 세계를 다르게 감각하는 법을 배운다.
---「선을 넘는 존재들」중에서

사람들은 비장애인인 내가 장애인운동을 하는 것을 ‘연대’라고 하거나 다른 이의 해방을 돕는 것이라 여긴다.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장애인운동이란 이 세계의 근간을 뒤흔드는 목소리이자 이 사회의 설계를 완전히 바꾸는 운동이다. 버스를 점거하고 달리는 자동차를 향해 뛰어든 그들은 내 인생도 아름답게 망쳐놓았고, 그것이 나를 구원했다.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중에서

어떤 인간도 ‘짐승처럼’ 살게 해서는 안 된다며 떠나온 그 자리에 인간은 ‘짐승들’을 남겨두었다. 그리고 그들에겐 역사상 유례없는 학살이 자행되었다. 거대한 학살보다 끔찍한 것은 거대한 출생이다.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이 불의와 폭력이 그들의 숫자만큼 태어난다.
---「닭을 실은 트럭」중에서

나는 정하에게 이 힘든 일을 왜 계속하느냐고 물었다.
“콧줄 끼고 누워서 생활하던 분이 계셨어. 그분이 탈시설하신 뒤에 찍은 사진을 봤거든. 야간 개장한 경복궁이었는데…….”
역류성 식도염이 도졌다며 정하가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면서 말했다.
“웃고 계셨어. 시설에 살 땐 표정이 없는 분이었는데.”
세상 사람들은 절대로 모르는 희미한 아름다움을 정하는 아주 많이 알 것이다. 그 말을 할 때 정하도 희미하게 웃었다. 그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무엇을 감당해야 하는지 잘 아는 얼굴이었다.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중에서

규식은 생애 내내 이야기를 억압당한 사람이었고 그래서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권리인지 뼈저리게 알았다. 이야기한다는 것은 타인과 관계 맺는 일이고 우정을 나누는 일이며 그들로부터 날마다 배우고 성장하는 일이라고, 규식이 말했다.
---「어떤 생애의 탄생」중에서

내겐 소중한 사람이 언론에서 그저 ‘불쌍한 장애인’으로 취급되는 건 무척 모욕적이었다. 세상의 말과 글에 반격하고 싶었다. 장애인운동은 싸우는 만큼 세상이 나아지고 가장 약한 곳에서 세계가 확장된다는 믿음을 안겨줬다. 경이로웠고 황홀했다. 차별받은 존재가 저항하는 존재로 변신하는 일을 이 사회의 기억으로 남기고 싶었다.
---「서지 않는 열차를 멈춰 세우며」중에서

한 발짝만 내디디면 벼랑 끝인 이들에게 이 사회는 신호를 지키라고 했다. 그러나 선을 넘지 않고서는 절대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우리는 열차를 막았고, 동시에 어떤 죽음을 막았다. 우리는 누군가의 이동을 방해했고, 동시에 차별과 배제를 방해했다. 우리는 선량한 시민들의 발목을 잡았고, 아프고 늙고 가난한 사람들을 버리고 폭주하는 야만적인 사회의 발목을 잡았다.
---「서지 않는 열차를 멈춰 세우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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