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이었다. 심장 두근거리는 소리가 한참 동안 귀에 들렸다. 이미 얼굴은 시뻘게졌는데 다른 사람이 볼까 봐 아무렇지 않은 척하느라 혼났다. 마음속으로 환호성을 백만 번 넘게 질렀다. 아직 서류 합격일 뿐이지만 최종 합격이라도 한 것처럼 기뻤다. 인생은 정말 한 치 앞도 모른다. 대기업 입사만을 간절히 원했던 그 스무 살 직원은 당시만 해도 몰랐다. 5년 뒤에는 선생님이 될 것이고, 학생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리란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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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 교사 시절, 학교를 처음으로 마주하는 신입생처럼 학교의 모든 것이 어색하기만 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데, 일주일이 지나도록 복도도 운동장도 교무실도 쭈뼛거리며 걸어 다녔다. ‘선생님’이라는 호칭도 교무실 내 자리도 마냥 남의 것 같던 날들이었는데 책상에 놓인 종이 한 장이 어색함을 사르르 녹였다. A4용지를 4등분 해서 자른 듯 손바닥만 한 크기의 종이에 ‘교사 시간표’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그 아래 내 이름 석 자가 보였다. 새삼 이제야 이 학교의 선생님이 되었다는 게 실감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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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게 된 것은 내가 모든 학생에게 영감을 줄 수 없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기 때문이었다. 대학 시절 교육학을 공부할 때만 해도 무의식적 혹은 의식적으로 ‘내가 선생님이 되면 조금 다르겠지’, ‘사랑을 건네면 학생은 무조건 변할 거야’라고 믿었다. 안타깝게도, 이론과 현실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1년간 정성을 다해 돌보려고 노력한 학생에게 따뜻한 시선을 한 번도 받지 못한 적이 있었다. 반면에 수업을 들어가지 않는 학급에 단 한 번 보강을 들어가 만난 학생은 졸업하고 수년이 흘러도 나를 멘토라며 찾아온다. 나를 통해 1년에 단 한 명의 학생이라도 긍정적인 영향을 받는다면 그걸로 가치 있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유튜브 채널을 통한다면 그 영향력이 한 명이 아니라 열 명, 혹은 백 명 이상에게도 가닿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p.55
“요즘은 스승의 날이지만 파티나 이런 건 잘 안 하죠. 아무래도.” 순간 정적이 일었다. 왠지 꺼내서는 안 될 말을 한 듯했다. 그들의 당황한 표정을 보니, 우리 반만 스승의 날 파티를 생략한 모양이었다. “아이들이 종례 때 하려고 준비하는 거 아닐까요? 오늘 지각생도 몇 명 있었다면서요.” 졸지에 위로받는 입장이 되었다. 얼른 태세 전환이 필요했다. 정말 아무렇지 않음을 표현하기 위해 음식도 더 맛있게 먹고 더 크게 웃어 보였다. 사실은 마음속에 폭풍이 일고 있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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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하러 가는 순간부터 나의 바람은 오직 오늘 하루가 무탈하게 지나는 것이다. 교실 안에서는 크고 작은 여러 사건이 거의 매번 일어난다. 수업 시간에 다른 행동을 하는 학생을 보았을 때 1 대 1 대화를 나누며 지도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못 본 척 넘어가거나 그 학생만 알아볼 만한 신호를 보내기도 한다. 그것 또한 학생 스스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피드백이라 여긴다. 같은 행동일지라도 대처 방법은 하나가 아니며, 모두에게 좋은 해결 방안은 애초에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학생들과 교감하기 위해 노력하며 최대한 원활하게 일을 풀어내고자 할 뿐이다. 학생들의 마음에 공감하는 것, 그리고 그들이 다른 사람의 마음에 공감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내 역할이다. 상황에 맞게 움직이되 중심이 흔들리지는 않는, 시의적절한 교육을 할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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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녹화했다는 영상을 받아 재생해 보니, 아이들은 조회 시간이 다가오자 작전을 개시하듯 비장한 움직임을 보였다. 선생님이 혹시 먼저 올까 봐 망을 보는 친구도 있고, 다른 친구를 조용히 시키며 공지를 하는 듯한 아이도 있었다. 내가 등장하자 웃음을 참느라 몸을 들썩이는 친구, 우왕좌왕하는 모습에 뿌듯해하는 친구까지, 나는 아이들의 치밀한 작전에 제대로 당한 모습이었다. 약간 바보 같은 움직임이 웃겼지만 만우절을 미처 생각하지 못해서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같은 주 일요일에 만우절 에피소드가 담긴 영상을 유튜브에 업로드했다. 학생들이 직접 촬영해 준 장면이 있어 더 소중한 브이로그였다.
--- p.151
학교는 학생의 성장만 아우르는 곳이 아니었다. 선생님의 성장도 담긴 곳이었다. 작년의 나는 올해의 나와 다르고, 아마 내년의 나는 또 달라져 있을 것이다. 학교와 학생을 바라보는 감정이 매해 다르다. 또 내 개인적인 일상에서의 큰 변화, 예를 들면 결혼과 출산, 육아와 같은 일이 겹치면 다시 한번 새로운 시야를 가질 것 같다. 다양한 연령대의 선생님들이 모두가 같은 직급인 덕분에, 학생들은 사회에 나가기 전 조그마한 사회를 겪어 볼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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