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부족한 내 모습을 보게 한다. 스스로 돌이켜 반성할 수 있도록 한다. 책이라는 세상으로 들어서지 않았다면 내 모습을 바로 볼 수 있었을까? 사람은 배운 만큼 자신을 알 수 있다.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을 수 있다. 책을 통해 부풀려졌던 내가 책으로 인해 부족함을 알게 된다. 자아 성찰이란 현재의 부족함을 알고 내가 바라는 모습과의 간극을 깨닫는 것이다. 그 차이를 메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매일 행하는 것. 지금껏 잠을 줄여 가며 책을 읽고 있는 이유다. 진정한 배움이란 공부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자아실현을 해가는 길이다. 자아실현이란 부자가 되어 뻣뻣해진 목을 갖는 과정이 아니라, 스스로 익히고 닦은 것을 통해 삶의 의미와 목적을 이루어 가는 과정 끝에 온다.
--- p.15~16
책을 통해 얻은 것을 나열할 수는 없지만, 책을 읽고 희미해졌거나, 사라져버린 것들은 몇 가지 떠오른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다. 책을 읽을수록 모르는 것이 쌓이는 느낌이다. 독서의 목적이 내가 무엇을 몰랐는지 알아가는 과정이라면 책을 영 헛읽은 것은 아닌가 보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메타인지가 생긴 건가? 모르는 것을 인정하자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럽게 알고자 하는 욕구가 밀려든다. 그러니 책을 계속 읽을 수밖에. ‘욕망’을 드러내는 일에 주저하지 않는다. 무지의 인정만큼 쉽지 않았던 일이 욕망을 입 밖으로 내뱉는 행위였다. 감추어야 할 치부 같고, 은밀하게 나 혼자만 알게 키워야 할 것 같았던 욕망을 끄집어냄으로써, 나의 욕망과 타인의 욕망이 만나 더불어 커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p.50
영양가 없는 불안을 간혹 하던 차에 ‘재독’, ‘N독’을 마다하지 않는 독서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매주 발행되는 신간들은 넘쳐난다. 그런데 우리는 굳이, 읽었던 책을 다시 읽기도 한다. 혹시 처음 읽는 데 어려운 책을 만나면 씩씩하게 다음 해 재독 목록에 올려둔다. 평생 함께 읽을 거니 그때 같이 읽으면 된다고 서로를 격려한다. 그때 무척 안도감이 든다. 또 읽을 수 있으니 다시 대기목록에 올려두고 손에서 책을 내려놓을 수 있다.
--- p.121
지금도 독서의 목적은 변함이 없다. 프시케가 남편 에로스를 찾아 떠나는 여정에서 만나게 되는 곡식을 가려주는 개미, 금빛 양모를 모아 오는 방법을 알려주는 목신 판, 하데스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탑 속의 어떤 소리처럼, 책이 그런 안내자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독서를 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변화는 대학원 진학과 지금 이 글을 쓰기까지의 모든 소소한 과정을 포함해 멈추지 않고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수동형 인간에서 점차 능동형으로.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이다.
--- p.161
책 읽는 취미를 권하고 싶다. 책 모임에 나가보자. 어색할 것 같지만 어제 만난 사람처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남편, 자식 이야기를 빼고도 할 이야기가 넘친다. 뒷담화 없는 유익한 대화를 즐길 수 있다. 오롯이 나로서만 존재함을 느끼고 자존감을 올릴 수 있다. 무슨 일을 하는 사람, 누구네 엄마, 아내, 며느리, 딸, 아줌마가 아닌 내 이름 석 자에 어떤 수식어도 붙지 않는 나를 만난다. 명품 가방, 신상 의류, 유행 따라가기는 오래전 관심 밖이 되었다. 인터넷 서점에서 주는 할인 쿠폰, 이벤트 쿠폰, 주말 쿠폰으로 싼 가격에 책을 구매할 때 대한민국 아줌마의 심리가 작동한다. 행복하다. 천 원으로 푸짐한 찬을 준비했을 때와 같은 행복이다.
--- p.199
자기 개선의 출발은 자신을 정확하게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진실해야 한다. 숨기고 싶은 나의 치부까지 철저히 직면할 수 있어야 한다. 의식하지 못한 자기기만까지 보아내고 인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변화가 시작된다. 독서는 작고 모자란 나를 기꺼이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했다. 읽으면 읽을수록 읽을 것이 많아지고,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이 많음을 인식하게 했다. 그런 나는 더욱 겸손할 수밖에 없다. 내가 나를 모른다는 것이 부끄럽기도 했지만, 이제라도 알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가. 관계에의 갈등으로 고민하던 내게 한 지인이 해 주었던 말이 생각난다. “나를 알게 되면 타인에게 관대해진다.”
--- p.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