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내가 일에 임하는 자세 정도는 한마디로 간추릴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사는 이 세상을 세세하게 관찰하고 온몸으로 익히는 일. 그것이 내가, 그리고 나의 동료들이 품은 일의 기본자세이고, 다른 직업과 구별되는 특징이다. 몸의 감각을 일깨우며 세상 구석구석에서 가치를 창출하는 임팩트 투자자. 그것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담당하고 있는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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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세상에 변화를 일으키는 데 최적의 도구인 AI를 잘 활용하는 스타트업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들이 닦아가고자 하는 길을 충분히 이해하고, 든든하게 협력할 수 있는 파트너가 되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나는 이 일을 하는 것이 정말 신난다. 사회를 바꾸어가는 이들의 위에 서지 않고, 옆에서 나란히 걸으며 서로 돕고 성장하는 것이 참 좋다.
--- p.29
그를 곁눈질하며 나도 한 뼘씩 커간다. 당신은 대단해, 우리는 함께 잘해낼 거야. 계속 긍정의 메시지를 주며 더 잘 뻗어나가보자고 힘을 북돋는 것이 상대와 팔짱을 낀 우리의 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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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투자하는 건 단지 그 팀만이 아니다. 팀이 만드는 생태계, 그렇게 만들어질 세상, 그것이 만들어낼 가치에 공감하며 투자라는 행위로 함께하는 것이다. 이 팀이 그 그림을 잘 만들어갈 수 있을까? 정말 그 가치를 추구하는 게 맞을까? 그걸 알아내기 위해 우리는 계속해서 질문을 만들고 건넨다.
--- p.61
말은 내뱉어봐야 계속 꺼낼 수 있다. 운전하는 30분 동안 혼자 조잘조잘 말 연습을 한다. 이 말을 했다가 저 말로 바꾸어보며 흐름도 잡는다. 이렇게 연습을 해도 현장에 가면 종종 헛말을 하지만, 사실 이 연습은 나의 자신감을 위한 것이다. 사람을 만나고 현장을 경험하기 위한 모든 용기를, 나는 차 안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그렇게 조금씩 키워가고 있다.
--- p.83
경계를 넘어서서, 배제되어온 여러 주체를 포괄적으로 아우르며, 기존 시스템에서 비롯한 문제를 또렷하게 하고, 그 문제를 탁월하게 해결해가는 여성 창업자, 그리고 여성 기술인들의 활약을 고대한다. 그리고 그러한 인재들을 발굴하는 것이 바로 나의 일이다.
--- p.88
다들 성장이라는 한 방향을 향해 달리고 있다. 그 방향은 분명히 맞는 길이고, 옳은 길이다. 성장해야 하고, 대박을 내서 엑시트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그 방향으로 가는 와중에 다른 지표를 두드려볼 수도 있다. 자본과 아이디어를 뭉쳐 기후 위기 문제를 해결하자고 할 수도 있고, 젠더 이슈를 풀어보자고 할 수도 있다.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비즈니스로 끌어올리는 방법들도 찾아볼 수 있다. 성장의 방법을 한 가지로만 보기엔, 세상에 고민해볼 만한 관점이 너무 많다.
--- p.100~101
중심을 잘 잡고 나의 결을 만들어가는 것은 퍽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긴 연표를 그려보면, 지금의 변화도 지구의 시간, 우주의 시간 안에서는 찰나에 불과하다. 굳이 멀리 가지 않더라도 나보다 20년, 30년을 더 앞서간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살면서 몇 번은 겪었던 변혁의 순간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 p.113
세상에는 숫자나 텍스트, 사진이나 음성만으로는 표기되지 않는 일이 참 많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고 무심결에 지나친 장면들, 감각하지 못하고 흘려보낸 풍경, 막 지나친 상대에게서 느껴진 초조한 기운 같은 것을 어떻게 데이터로 표현할 수 있을까. 세상의 모든 것을 담으려면 지도에 모든 땅을 그려 넣으려던 소설 속 주인공의 시도처럼 한없이 커져버리고 말텐데. 그래서 우리는 시를 쓰고, 소설을 읽고, 그림을 그리는 것 아닐까. 포착되지 않는 감정을 글자 사이에 꼭꼭 숨겨두어 나도 몰랐던 세계의 이면을 나도 모르게 가슴에 담으려고.
--- p.167
성장과 효율과 생산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시대에서 결국 단단히 붙들어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이구나 싶다. 우리는 생각보다 뛰어나고, 예상보다 훌륭하다.
--- p.1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