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에서 전쟁이 맹위를 떨치는 때, 눈앞에서 바라본 평화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그 모습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공동체가 작디작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불평등과 분배를 처리하는 방식, 다양성을 정의하고 다루는 방식, 어지러운 시기에 취약자를 보호하는 습관을 들이는 방식, 어떤 행동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 되는 방식 안에서 말이다.
--- p.21, 「1장 〈대답 없는〉」 중에서
오렌지 꽃의 땅에 있었던 다니엘은 부모님께 이렇게 편지를 썼다.
“가장 헐거운 틀조차도 제게는 너무 비좁습니다. 제가 생각하고 소망하는 바를 전적으로 자유롭게 말하고 실천하고 싶습니다. 부르주아의 전형적인 커리어에서 그러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 저는 서구 문명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게 서구 문명은 유일한 문명이 아니라 여러 문명 중 하나이고, 저는 그 문명을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다른 문명과의 관계 속에서 바라봅니다. … 그것[기독교]에 아름다움과 진실뿐만 아니라 거짓과 추함도 들어 있음을 압니다. 그러므로 요점은, 계속 여행하면서 새로운 것들을 보고 더욱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것입니다.”
--- p.46, 「2장 〈경외일〉」 중에서
수 세기 동안 비바레리뇽 고원의 개신교도들은(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 개혁교회에 다녔다) 간헐적으로 잔인하게 박해받았다. 같은 기간에 고원 사람들은 취약한 외지인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하는 일종의 습관을 키우며 그들을 숨겨주고, 먹여주고, 프랑스 바깥으로 실어 날랐다. 16세기의 프랑스 종교전쟁 때는 개신교도를 보호했고, 프랑스혁명과 뒤이은 공포정치하에서는 가톨릭 신부들을 보호했다. 19세기에는 자연학습의 초기 버전처럼 산업도시에 사는 가난한 아이들을 데려왔고, 그다음에는 알제리의 아이들을, 스페인내전 중에는 스페인의 어머니와 아이들을, 유럽 전역의 정치적 부랑자들을 데려왔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나치 점령지에서 도망쳐 나온 수많은 다른 난민들을 보호해주었다. 고통받는 데 익숙했던 이들은 고통받는 사람들을 지켜주었다.
--- p.67, 「3장 〈대탈출〉」 중에서
다니엘은 자기 업무의 리듬에, 새 아이들을 받아들이는 리듬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아마 바로 이 아이들이 예상치 못한 가장 큰 선물이었을 것이다. 다니엘은 이미 11월에도 자신이 아이들과 사랑에 빠지고 있음을 느꼈다. “제가 아이들을 잊었다고 생각하시나요?” 다니엘은 부모님에게 이렇게 썼다. “저는 아이들을 무척 사랑합니다. 아무런 구분 없이 전부 다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이들 한 명 한 명과 더욱 친해질 수 있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더 기다릴 필요는 없겠지요.”
한자리에 모인 이 귀뚜라미들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밝게 빛나는 이 작은 존재들의 짙은 색과 금색 머리카락을, 동그란 얼굴과 계란형 얼굴을, 환한 웃음과 먼 곳을 보는 듯 수심에 잠긴 얼굴을. 한데 모인 아이들은 부산하고 와글거렸다. 그러나 서른두 살의 다니엘에게 이 작은 귀뚜라미들은 눈앞에서 점점 유일무이한 인물로 살아나고 있었다.
--- p.118, 「5장 〈작은 귀뚜라미들〉」 중에서
민족주의 이념은 효과가 있다. 이 이념 탓에 우리는 어떤 것들이 (사실 그렇지 않은데도) 거대하고 영원하다고 믿는다. 생각해보면 꽤 조잡한 속임수다. 그러나 프랑스는 (독일과 러시아, 이탈리아 등등과 마찬가지로) 그 아브라카다브라로 만든 국가만도 못하다. 그 내부를 보면 알 수 있다. (…) 그 어떤 국가도 순수한 인간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그 어떤 국경도(아무리 높고 아무리 위협적인 철조망을 휘감았어도) 실재하는 것을 감싸고 있지 않다. 그러리라는 생각은 동화와 같다.
--- p.163, 「6장 〈손과 발〉」 중에서
다니엘은 자신이 놓고 올 수밖에 없었던 업무 때문에 점점 속을 태웠다. 레 그리용의 아이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아이들이 자기 없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감옥에서 쓴 또 다른 편지(르 샹봉에서 함께 난민을 돕던 나이 많은 목사 푸아브르에게 보낸 것)에서 그는 자신이 이곳에 최소 몇 주 정도 머물게 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또한 다니엘은 이렇게 말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도, (본인을 포함한) “그 누구도 대체 불가능하지 않습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같은 편지에서 그 실용적이고 낙관적이며 사기 넘치는 태도는 곧 자취를 감추고, 한 줄 한 줄에서 다니엘의 실제 불안이 드러났다.
“용기 있게 작은 귀뚜라미들을 보살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다니엘은 푸아브르에게 이렇게 말했다. 부탁드립니다.
--- p.311, 「11장 〈아이들을 오게 하라〉」 중에서
나는 학교에 다녔고, 논리적 실증주의와 카를 마르크스에 대해 논할 수 있다. 실존주의를, 거대서사의 파멸을 안다. 온갖 종류의 구성주의의 편을 들어 토론을 벌일 수 있고, 토론에서 승리할 수 있다. 나는 여전히 과학을 믿는다. 변수는 (심지어 사회과학에서도) 명확하고 정밀해야 하며, 그렇지 못할 때 지독한 쓰레기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안다. 마술적 사고가 (종교적인 것이든 민족주의적인 것이든) 값싼 부족주의와 결합할 때 우리 최악의 모습이 나타난다는 것을 안다. (…) 그러나 ‘바이 미어 비스투 셴’을 위한 공간이 없는 과학, 제1원리에 깊이 파고들어 우리에게 아름다운 것들이 있는 신성한 장소를 찾아내지 못하는 과학의 세계에서는 살고 싶지 않다.
--- p.362, 「12장 〈체렘샤의 노래〉」 중에서
고원을 찾기 시작하면서, 이곳에서 인간 조건의 모든 차원처럼 느껴지는 것을 만나면서, 과학이 이 모든 아름다움과 이 모든 두려움과 이 모든 경이와 이 모든 파괴를 왜인지 실제보다 더 작고 납작하게 만드는 방법을 내게 보여준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다. 과학은 이 모든 것을 깔끔하게 눌러서 언어와 숫자를 부여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그리고 내 안에 구도자가 숨어서 살고 있음에도 나는 오랫동안 거대한 것을 작게 만드는 습관을 키워왔고, 종교를 분석적인 방식 안에, 작고 예쁜 상자 안에 넣어두었다. 릴케가 말한 잃어버릴 수 있는 돌처럼.
--- p.411, 「13장 〈거미가 따라왔다〉」 중에서
다니엘은 며칠을 들여 이 모든 내용을 숙고하고, 선택을 내렸다. 그리고 9월 11일, 결심이 가득 담긴 답장을 보냈다. 이제 주사위가 던져졌고, 르 샹봉이 자신에게는 하나의 모험이자 거의 종교적인 부름이며, 세상을 재건하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그리고 스스로 부끄러운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고.
이제 나는 깨닫는다. 주머니 안에 접혀서, 다니엘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17개월간 다니엘과 함께한 것은 대답이 아니었다. 어쨌든 다니엘의 아름다운 응답은 한참 전에 바람에 실려 날아갔다. 고원과 작은 귀뚜라미들, 긴 산책, 체포, 물랭 감옥, 콩피에뉴, 부헨발트, 마이다네크를 거치는 내내 다니엘과 함께 남은 것은 질문이었다. “사랑하는 아들”, “이제는 네가 선택을 내려야 해”라는 말과 함께 애정과 신뢰를 담아서 쓴 질문이었다. 어쩌면 이 질문은 소각로 앞에 있던 철제 테이블까지 내내 그와 함께였을지도 모른다.
--- p.470, 「14장 〈마샬라〉」 중에서
다니엘은 작은 귀뚜라미들을 사랑했다. 동료 수감자들을 사랑했다. 미치도록 사랑했고, 과도하게 사랑했다. 고원의 주민들은 밤에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을 때 문 뒤에 누가, 또는 무엇이 있을지 알지 못했음에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문을 열어주었다. 상드린은 학생들을 사랑했다. 비록 그 사랑이 언젠가 한 학생이 입학해 다른 학생을 죽일 수 있다는 뜻일지라도.
사랑은 북극성이다. 사랑은 열 개, 1백 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변수를 품고, 사랑의 실천에 관한 일종의 전문 지식이 생겨날 때까지 한 번, 두 번, 세 번, 1백 번, 1천 번 해석되기를 가만히 기다리고 있다. 마틴 루서 킹 주니어가 “예수님께서는 장난을 치신 것이 아닙니다”라고 말한 사랑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변수들을 품은 북극성이다. 그러나 사랑은 반드시 추구해야 하는 것, 시도해야 하는 것, 매 순간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사랑이 습관이 될 수 있도록, 어느 정도 품성의 날줄과 씨줄이 되어서 언젠가 바람이 불고 경보가 울릴 때 그 품성이 올바른 행동을 할 수 있도록.
--- p.510, 「 15장 〈나무의 열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