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체는 각각 고유한 역할을 하는 수천 종류의 단백질을 생산해. 효소도 그중 하나야. 그리고 반응을 일으키는 데 관여하는 효소나 생체 신호, 수용체, 항체 등의 역할을 하는 여러 단백질은 모두 유전자에서 유래하지. 즉, 유전자는 단백질을 만드는 방법이 적힌 설계도면이었던 거야. DNA의 한 부분인 유전자는 암호화라는 방식을 통해 단백질에 대한 정보를 세포가 읽을 수 있는 방식으로 가지고 있었어
--- 「2. 염색체, 유전자, DNA」 중에서
멘델은 선구적인 연구를 통해 훗날 유전자로 밝혀진 유전인자를 별개의 실체로 제시했어. 이어 모건, 비들, 테이텀은 실험적으로, 개로드는 의학적으로 유전자의 기능을 증명했지. 유전학자 리하르트 골트슈미트(Richard Goldschmidt)는 1950년대까지의 이러한 고전유전학의 발전을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뉴턴의 천체 운동 설명, 갈릴레오의 실험과 다윈의 진화론 확립’에 견줄만한 과학의 도약이었다고 회상했어.
--- 「2. 염색체, 유전자, DNA」 중에서
1953년 4월, 왓슨과 크릭은 한 쪽짜리 간단한 논문을 발표해 과학계를 놀라게 했어. 그들은 이 논문에서 DNA 분자 모형을 제시했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까지 분자생물학의 상징이 되고 있는 이중나선 DNA 모형이야. 70년이 지난 지금도 이 DNA 모형은 현대생물학의 중심에 있지. 멘델이 생각한 유전인자와 모건이 발견한 염색체 위 인자들은 모두 DNA로 구성되어 있었어. 화학적 관점에서 이야기하자면, 부모님으로부터 온 DNA야말로 우리가 최초로 물려받은 유산인 거지. 그래서 유전물질인 DNA는 우리 시대의 가장 기념비적인 물질이라고 할 수 있어.
--- 「3. DNA의 정체」 중에서
장기판에서는 왕이 궁궐을 떠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니? 게임의 승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말이다 보니 함부로 움직일 수 없는 거야. DNA도 마찬가지야. DNA가 가지고 있는 유전정보가 워낙 중요해서 DNA는 세포의 핵을 떠날 수 없어. 그런데 세포의 구조와 기능을 책임지는 단백질은 핵 바깥에서만 만들 수 있지. 그래서 DNA는 유전정보를 핵 바깥의 세포질로 전달하기 위해 단일 가닥으로 이루어진 RNA를 활용해. 이런 역할을 맡은 RNA를 mRNA라고 하는데, 배달꾼을 뜻하는 메신저(messenger)의 m을 붙인 거지.
--- 「4. 유전정보의 발현과 조절」 중에서
불확실한 점도 있지만 후성 유전의 기본적인 작동 원리는 어떻게 환경에 의해 대물림되는 유전적 변화가 유발됐는지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어. 유전자와 환경 사이 상호작용을 중개하는 후성 유전학적 메커니즘을 통해 환경 인자가 건강과 질병을 만든다는 증거는 동물, 심지어는 사람에서도 많이 찾을 수 있지. 유전학자 모셰 스지프(Moshe Szyf)에 의하면 후성 유전은 유전체가 세계를 감각하고 스스로를 바꾸는 생리적 메커니즘이야.
--- 「4. 유전정보의 발현과 조절」 중에서
대부분의 돌연변이는 생물체에 중립적이거나 해롭지만, 일부 돌연변이는 특정 환경에서 이로울 수 있어. 드물게 발생하는 돌연변이가 진화에 원료를 제공하는 거야. 어느 경우든, 돌연변이는 진화 과정 동안 자연선택이 작용할 수 있는 변이의 근원이 되고, 결국에는 신종의 출현을 일으킬 수 있어. 만약 유전체의 복제와 수선이 완벽해 돌연변이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진화나 새로운 생물 종의 출현은 없었을 거야. 복제와 수선 과정의 정확성과, 비록 낮은 확률이지만 무작위로 발생하는 돌연변이 사이의 균형이 오랜 기간에 걸쳐 종의 진화를 유도해 오늘날 지구상에서 볼 수 있는 풍부한 종 다양성을 이끌었던 거야.
--- 「7. 유전자와 진화」 중에서
우리는 유전자가 우리의 정신이나 신체의 모든 특성을 결정한다는 유전자 결정론에 쉽게 빠져. 아마 일부 언론이나 심지어는 학자들이 이런 생각을 부추기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아. 물론 이전에는 환경이 주된 원인으로 생각되던 특성들이 유전의 영향을 받는다고 새로 밝혀지고 있기는 해. 하지만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유전자가 이런 특성을 전부 결정하는 일은 없어. 환경의 영향도 유전자 못지않게 사람의 특성을 조절할 수 있고, 심지어는 유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
--- 「8. 유전자의 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