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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책이 좋아서

: 책을 지나치게 사랑해 직업으로 삼은 자들의 문득 마음이 반짝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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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에세이 48위 | 에세이 top100 3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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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1월 11일
쪽수, 무게, 크기 252쪽 | 318g | 125*188*15mm
ISBN13 9791186561874
ISBN10 11865618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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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3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추천사 읽고 쓰기를 좋아하긴 하지만, 과열의 분위기는 다소 식혀 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한 권의 책에 네 명, 다섯 명의 추천사가 붙는 경우가 늘고 있다. 주목할 만한 책이라는 강렬한 신호가 필요한 때가 분명 있지만, 읽는 입장에서는 오히려 눈길이 덜 가기도 하고 추천자들이 겹치는 경우도 늘 수밖에 없다. 과열의 끝이 소모일 때가 많아, 우려의 마음을 표해본다.
---「정세랑, 추천사를 어쩌면 좋을까?」중에서

출판계가 어려워서 사람대우를 제대로 못해준다는 이야기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 같다. 출판계가 여유 없이 어려운 것은 맞으나 열의를 가진 사람들을 너무 예사로이 여기고 홀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물을 필요가 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계속 출판계의 문을 두드리겠지만, 이대로라면 떠나는 속도 또한 빨라질지도 모른다. 마땅한 존중을 이야기할 때가 왔다
---「정세랑, 출판계 밖에서 만나는 출판인들」중에서

어떤 서점들은 오래된 책,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좋은 책, 재발견되어야 할 책들을 빛나는 자리에 두고 그럴 때 공간은 마치 한 사람의 내면세계 같아 재밌어진다. 목록과 배치의 차이가 그려내는 점묘화가 뚜렷한 개성을 자아내는 것이다. 누군가의 머릿속에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경험은 서점에서 드물게 가능한 것 같다.
---「정세랑, 짧은 여행과 색깔이 강한 서점들」중에서

음악을 북디자인과 비슷하다고 느꼈던 것은 둘 다 오래전에 결정된 형식의 반복과 변주를 지속해왔다는 부분 때문이었다. 물론 책의 역사에도 기술의 발명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많은 변화가 있었고, 때로는 변주라는 말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혁신과 비약의 순간들도 있었지만 그 결과로 빚어진 차이는 관심을 기울여 살펴보지 않는 이상 좀처럼 감지하기 힘들다. 그리고 이 점 또한 두 분야가 비슷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한 분야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쌓이면 재능이나 감식안의 유무와 상관없이 누구든 전에는 보이지 않던 부분을 볼 수 있게 되는 법이다.
---「김동신, 취향의 방향을 가늠하기」중에서

책 표지라는 공간에는 글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진, 일러스트레이션, 색상 등 경중을 따질 수 없는 다른 요소들도 함께 존재하며, 이런 상황에서 글자의 역할이란 책의 전체적 인상을 구성하는 일부로서 녹아드는 것이 보다 일반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어떤 표지 디자인에 정렬의 축이 뚜렷이 드러난다면 그것은 다른 시각적 요소들의 중요도를 감소, 혹은 배제하면서까지 타이포그래피 중심의 디자인 콘셉트를 좇겠다는 디자이너의 의지가 있기에 생겨난 결과다. 나는 이런 자기주장을 하는 표지들과 그것을 가능케 하는 디테일들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김동신, 취향의 방향을 가늠하기」중에서

신체와 관련된 책의 세부 명칭 가운데 가장 절묘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책등이다. 등에는 인체를 지탱하는 기둥인 척추가 있기 때문이다. 코덱스의 구조적 정수가 종이를 엮었다는 점인 만큼 엮인 부분들이 모여 만들어진 면을 등이라고 일컫는 것이 퍽 적절하게 들린다. 영어권에서는 직접적으로 spine이라고 부르는데, 실제로 노출 바인딩으로 제작한 책에서 표지를 입히지 않은 책등을 보면 종이 묶음을 실로 엮은 모습이 뼈마디와 닮아 보이기도 한다.
---「김동신, 코어에 힘주기, 책등 디자인」중에서

출판계와 디자인계는 각각 실무 노동자 많은 수를 여성이 차지하고 있는 여초 업계다. 그러나 관리자·임원급으로 가면 압도적으로 남성이 많고 여성은 실무자·사원으로서 ‘남성의 ‘하부구조’를 이루는 식의 성별에 따른 차별이 공고하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 사회에 분야를 불문하고 존재한다. 그중에는 애초부터 여성의 진입을 막아 여성의 수가 극히 적은 업계가 있는가 하면 출판계나 디자인계처럼 이른바 ‘여성적’인 노동으로서 여성의 유입이 많은 분야도 있다. 단, 그렇게 유입된 여성들이 올라갈 수 있는 한계는 뚜렷하다. 더 많은 권력을 지닌 보직, 특히 규모 있는 출판사의 소유자는 대체로 남성이다.
---「김동신, 북디자인과 여성」중에서

책표지는 자주 얼굴에 비유된다. 만약 이 얼굴에 성별이 있다면 그것은 여성일 것이다. 요즘 표지 디자인의 스타일이나 유행이 ‘여성적’이라는 게 아니다. 표지-얼굴이 처한 상황이 여성의 그것과 닮았다. 호감이 가야 하고, 항상 웃어야 하고, 예쁘면 가장 좋은, 손쉬운 평가의 대상이 되는 얼굴. 꾸미면 화장이 너무 진하다고 훈계를 듣고 때로는 얼굴보단 마음이 고운 게 진짜 예쁜 거라며 칭찬을 듣는 존재. 너무나 익숙한 말들이다.
---「김동신, 북디자인과 여성」중에서

나는 종종 ‘을(乙)이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것이 신입사원의 자세라고 여겼던 것이다. 주변으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기도 했다.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청강한 ‘취업 강의’에서 강사가, 막 입사한 곳에서 만난 상사가 너희는 을이어야 한다, 을이라고 생각하고 일해라, 라는 말을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품은 시간이 계속될수록 나는 작가와의 관계에서도, 편집자와의 관계에서도, 마케터와의 관계에서도, 아니 그밖에 맺게 되는 모든 관계에서도 언제나 을이어야 하는 일이라는 게 정말이지 안타깝다고 생각했다. 역시 편집부로 입사했으면 더 좋았으려나. 아니, 을이라니? 그런 생각은 얼마나 후진가.
---「신연선, 출판사의 홍보기획부라는 애매한 위치」중에서

일터에서 친절은 가치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분명한 업무 능력의 문제이기도 하다. 내가 일터에서 여러 번 자리를 바꾸어가며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도 변함없이 반갑게 인사를 나눌 수 있는 것은, 그들과 불필요한 불안감이나 긴장감, 쓸데없는 에너지 소모 없이 수평적으로 일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내가 나의 긍지를 위해 삼았던 친절과 다정의 태도 덕분이라고 믿는다. 나는 동료들과 친절로 호감을 나누었고, 그 호감은 일을 잘 해내고 싶다는 마음, 즉 책임감으로 돌아와 사회생활의 양분이 되었다. 실제로 그렇게 일할 때 일의 결과도 좋았다.
---「신연선, 어디서든 친절로 한 명의 사람을 만나야 한다」중에서

나는 국내 여행을 좋아하는데 어느 지역에 가든 그곳의 동네 책방을 찾아 방문하는 코스가 여행의 필수 과정이다. 즐겁게도 이 여행 방식을 이제 많은 분들이 즐기고 있는 것 같다. 그 동네 책방에서만 만날 수 있는 멋있는 독립출판물을 발견하는 기쁨, 그곳만의 색깔이 담긴 색다른 큐레이션을 감상하는 즐거움은 여행지에서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순간 중 하나다.
---「신연선, 삼구무배의 추억」중에서

무너지는 댐에 난 구멍을 제 몸으로 막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계속해서 나를 다독인다. 일말의 희망을 가르쳐준다. 비와 햇빛이 되어준다. 그 존재들에 번번이 감동하고 놀라는 이유는 인간이란 존재가 쉽게 변질되고 마는, 나약하고 어리석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의 허기가 타인의 병보다 중하기 때문에. 애쓰지 않으면 타인은, 언제나 나의 바깥에만 머무는 존재이기 때문에. 도무지 가닿을 수 없을 것 같은 영역까지 나아가 타인과 세상의 고통을 그대로 나의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언제나 놀랍다. 나의 사랑하는 울보들.
---「신연선, 나의 사랑하는 울보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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