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할 때 내 시어머니는 75세였다. 결혼 전 상견례 때 처음 뵈었던 그분은 키는 작지만 고집 있고 강단 있어 보였다. 예쁨받고 싶었다. 아마 나도 수신지 작가의 웹툰처럼 ‘며느라기’를 겪은 듯하다. 만나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해가 갈수록 사람이니까 정이 들었고, 어머니의 연세가 많아질수록 측은지심이 더해졌고, 잘해 드리고 싶었다. 예쁨받았다. 어머니가 볼 때 나는 아주 나이가 어렸고, 큰손녀랑 별반 나이 차이가 없었으니까 기대하는 것도 없으셨고 아무것도 못 한다 생각하셨다. 하지만 어느 집안이나 그렇듯이 갈등이 생겼다. 그렇지만 어머니와 나는 싸워 가며, 화해해 가며 살 수 없었다. 그러기에 우리는 나이 차가 너무 많이 났다.
--- 「프롤로그, 내가 시어머니에 대하여 쓰게 된 이유」 중에서
어머니 집에 방문한 어느 날, 글을 모르시는 어머니께서 본인이 일 나간 날 수를 헤아리기 위해 동그라미를 매일 한 개씩 그린 노트를 본 그날, 돌아오는 자동차 속에서 나는 머릿속으로 글을 쓰고 있었다. 그때부터 1년에 두 편, 아니면 세 편씩 어머니에 대한 글을 쌓아 갔는데, 문득 어딘가에 올려서 이 이야기들을 다른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나는 브런치1를 시작했다.
--- 「프롤로그, 내가 시어머니에 대하여 쓰게 된 이유」 중에서
진료를 보고 내려와서도 마찬가지였다. 뒤에서는 빵빵 빵빵 난리인데, 우리 어머니는 나의 부축을 받아 시속 1km의 속도로 걷고 계셨다. 땀을 흘리며 뒤차들에 고개를 크게 숙여 연신 미안하다는 마음의 표시를 하며 어머니를 가까스로 뒷좌석에 태워 드리고 출발했다. 그런데 출발 직후 어머니가 날 불러 말씀하셨다.
“에미야, 나 벨트 매 줘라.”
둘 다 진땀을 한 바가지 흘리고 간신히 안도한 직후였지만, 어머니의 그 말에 운전석의 남편은 바로 갓길에 차를 세웠다. 일방통행 도로를 막 벗어난 참이었고, 오늘의 미션(어머니를 모시고 두 곳의 병원 방문 및 진료를 끝내야 한다는)을 썩 잘해 낸 후였으니, 퍽 홀가분했다. 그리고 우리는 어머니의 그 말에 비로소 웃음이 났다. 보통 뒷자리에 앉혀 드릴 때는 벨트를 꼭 매 드리는데, 너무 급한 나머지 내가 깜빡한 것이다.
“안전벨트요, 어머니? 깜빡했어요. 잠시만요, 어머니.”
우리는 어머니에게 그런 정신이 있다는 게 놀라웠고, 기특했고, ‘역시 우리 어머니’라면서 웃었다. 우리가 너무 속없이 크게 웃으며 즐거워했는지, 어머니께서도 민망한 듯 웃으시며 말씀하시기도 했다.
“그게 편해. 벨트를 해야 편해.”
--- 「나 안전벨트 좀 매 줘라」 중에서
“또 올게요, 어머니.”
그럼 어머니는 항상 같은 말을 하신다.
“안 와도 돼. 니들끼리 잘 살면 돼. 엄마 걱정 하나도 하지 말고, 잘 지내. 차 타고 멀리 오는 것도 걱정돼서 싫어. 안 와도 되니까 잘만 살아.”
옛날에는 그게 그냥 할머니들이 하는 레퍼토리라 생각했다. 뵈러 가면 그렇게 좋아하시면서, 왜 말끝마다 오지 말라고 하실까. 왜 노인들은 항상 반대로 말하고, 항상 마음에 없는 말을 할까 싶었다. 내 아이가 15살쯤 되니 이제 좀 알만한 이야기. 보고 싶은 마음은 참으면 되지만 자식이 슬픈 일이 생겼을 때 차오르는 걱정은 참을 수가 없다. 그러니 제발, 꼭, 잘 지내 달라고, 마음을 담은 소망을 이야기하시는 거였다. 오랜만에 만나면 반가운 마음도 진심이고, 자주 못 보더라도 내 아이가 평생 안온한 삶을 살길 바라는 마음도 진심인 거다.
--- 「부모가 필요치 않은 나이는 없는 것처럼」 중에서
어머니가 정말 미웠던 적이 있다. 한두 번이 아니고, 여러 번이다. 밉다기보다는 야속하고 서운한 마음. 그런데 그것과 별개로 애틋하고 감사했던 적도 많다. 이것 또한 한두 번이 아니고, 여러 번이다. 어머니와 진정한 가족이 되고서 깨달은 것은 이러한 내 양가적 감정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어쩜 그렇게 이랬다저랬다 하냐고 변덕스럽다 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이, 가족이란 태생부터가 그런 부분이 있다. 고맙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고, 밉기도 한. 내가 아는 가족이란 그렇다. 아무리 유전적으로 같은 혈육이라 해도 결국 타인인데, 타인과 50년, 60년 관계하며 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니까. 50년, 60년 가깝게 관계하며 지내는데 갈등이 없을 수 없다.
--- 「나의 양가적 감정을 알아차린 날」 중에서
처음 결혼을 앞두고 어머니 댁을 방문했을 때 나는 혼자 야심 차게 계획했었다. 저 오래된 이부자리들을 싹 다 버리고, 포근하고 산뜻한 것으로 싹 다 바꿔 버려야지. 뚱뚱하고 먼지 쌓인 텔레비전도 버리고, 짝 없는 젓가락들도 다 버려 버려야지. 시장에 가면 많이 있는 싸디싼 속옷, 양말들을 올 때마다 사 날라야지. 그렇게 살뜰하게, 이 나이 든 여자의 집을 싹 다 바꿔 버려야지. 그런데 웬걸, 계획은 번번이 수포로 돌아갔다. 그리고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가 아니라 ‘부모 이기는 자식 없는’ 시댁 가족들을 이해하는 반열에 들어섰다. 나는 어머니를 이길 수 없었고, 앞으로도 이길 수 없다. 유통기한 지난 라면 하나, 두유 하나도 우리는 어머니의 허락 없이 버릴 수 없었고, 급기야 명절 뒤 발생한 음식물 쓰레기는 몰래 옷가방에 숨겨 서울로 가지고 올라와 버려야 할 상황이 됐다.
--- 「에미야, 이거 너 가질래?」 중에서
연신 웃으며 뭐하러 왔냐고 말씀하시던 분이 갑자기 내 손을 잡고 말씀하셨다.
“에미야, 이제 일 그만하고 집에서 쉬면 안 돼?”
사실 처음에는, 어머니의 질문의 요지를 파악하지 못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아비 혼자 벌어서는 안 돼? 언제까지 일할 거야?”
비로소 나는, 어머니 말씀의 요점이 파악되었다. 힘들지 않냐고, 그만 일하고 집에서 놀고 쉬라고, 그런 말을 연달아 하시며 또 말씀하셨다. 어머니 노인 연금 통장에 돈 있으니까 그걸로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90세 노인에게, 일하는 이유는 돈이 전부일 거다. 그리고 그건 정말 맞다. 돈은 중요하니까. 하지만 아직 70대 초반인 내 친정어머니께서는, 내가 일하는 이유에 돈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다고 어렴풋이 짐작하신다. 집에서 살림만 하는 건 허무하다고, 아이는 내가 키워 줄 테니까 그리고 할 수 있으면 계속 일을 하라고도 이야기하셨다. 구십 노인과 칠십 노인의 차이는 이렇게 크다. 하지만 구십 노인의 그 촌스럽고 순진한 마음에 나는 자주 위로를 받는다. 이렇게 어머니의 물정 모르는 소리가 나는 정말 좋다.
--- 「이제 일 그만하고 집에서 쉬면 안 돼?」 중에서
어머니가 어머니 인생에서 제일 큰 수술을 하신 후 어느 날, 어머니 찻상에 놓인 약을 찬찬히 훑어본 적이 있다. 고혈압 약은 식전에 한 번, 당뇨약은, 정형외과 약은, 비뇨기과 약은……. 나도 구분하기 어려운 많고 많은 약을 드시던 어느날. 결국 탈이 나시고야 말았다. 진통제의 간격을 잊고 연달아 세 차례 드셨고, 위장 장애가 온 거다. 어머니가 스스로 챙겨 드신 거니, 남은 약의 개수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간병하시는 시누이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이미 먹어 버린 약이니 어쩔 수 없었고, 약의 독성이 몸에서 빠져나갈 때까지 앓고 나신 후에야 괜찮아지셨다.
--- 「노인과 약」 중에서
“에미야, 저 여자가 사람을 죽였어. 쯧쯧쯧.”
“그런데. 본 사람이 없으면 괜찮대.”
“사람을 죽였대. 글쎄. 뭔 저런 여자가 다 있냐. 쯧쯧쯧.”
이 얘기를 마치 몹쓸 짓 한 도둑이나 강도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의 표정을 지으며 세 번쯤 하셨다. 5분에 한 번씩, 드라마를 보며 줄거리를 며느리에게 설명하는 89세 시어머니라니. 이렇게 뭔가에 몰입하신다는 게 참 신기하고, 어머니가 그리고 텔레비전이라는 것이 대견하고 그랬다. 친한 지인에게 이 이야기를 하니, 일일 드라마 하는 시간에 안부 전화드리는 게 제일 큰 불효란다. 그 시간은 피해서 전화를 하는 게 기본이라고. 실제로 드라마를 보시다가 자식이 전화를 걸면 대충 대꾸하고 서둘러 끊으시는 게 눈에 보였다. 어머니에게도 일상이 있는데, 어쩌면 우리는 우리 편한 시간에 아무 때나 전화를 해 온 것은 아닐까.
--- 「드라마라는 요물에 대하여」 중에서
성인이므로 본인의 의사가 제일 중요한 것이 맞는데, 어디까지 의사를 존중해 드려야 할지 잘 모르겠다. 우리는 어머니의 의사를 항상 존중한다. 하지만 어머니의 선택이 어머니의 건강에 나쁘다면, 어머니의 생활을 불편하게 한다면, 어머니의 안전을 위협한다면, 그것도 모두 존중해 드려야하는 것일까. 시골 분이셔서, 건강이 많이 약해지셔서, 경제 관념이 30년 전이셔서, 혼자 금융 업무를 볼 수 없으셔서, 우리가 대신해 드려야 할 일들이 매우 많다. 어머니는 내 아이처럼 돌봄이 필요하다.
--- 「아이와 노인을 돌보는 마음, 존중과 돌봄 사이」 중에서
나에게 있어 가장 마지막까지 머릿속에 남았던 말은, 거기 들어가면 죽는 날만 기다리게 된다는 그것이었다. 우리 어머니의 경우 살던 집도 정리하고 들어가셨으니, 그리고 3개월 후인 지금은 나오기 힘들다는 것을 본인이 받아들이시게 되었으니, 예고된 수순인지. 요양 병원에 들어가신 지 불과 한 달 남짓 지났을 때, 어머니께 소변줄을 꽂아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나쁜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의 안전을 위해 꽂겠다는 의도는 이해했지만, 그것은 관리하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한 것이기도 하니까, 과연 그 판단이 옳은 것인가. 소변줄을 꽂으시면 급격히 거동의 제약이 있으실 테고, 그렇다면 누워만 계실테고, 결국 움직임이 줄어들면 근육량도 줄어들고, 점점 침대에만 붙어 계시게 되는 건 아닌지. 이건 굉장히 큰 결정이 아닌가. 우리의 많은 생각과 달리 인지가 좋으신 어머니께서는 본인이 거부하셨고, 그 고비도 이겨내셨고, 씩씩하게 본인이 직접 화장실에 다니시기로 했고 그렇게 정리가 됐다.
--- 「요양 병원에 대한 말말말」 중에서
죽음을 우리보다 적은 시간 남겨 둔 노인들의 관심사는 지금 앓고 있는 큰 병(이를테면 암이라던가)의 완치가 아니다. 중병의 완치에 에너지를 허비할 시간이 없다. 그냥 오늘 하루 편안히 지내는 것. 어떤 방법으로든 통증을 줄이는 것. 남아 있는 시간을 옆에 있는 가족과 최대한 자연스럽게 맑은 정신으로 보내는 것. 확실한 건, 수술이 필요한 큰 병보다 지금 당장의 관절염해소가 노인의 마음 관리에 더 도움이 된다는 것. 그런 것이었다.
--- 「여보, 내가 엄마한테 큰 실수를 한 것 같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