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지금까지 법률가들이 쓴 책과는 조금 다르다. 법이나 판결을 교과서처럼 ‘설명’하는 것에 치중하지 않고, 나를 주인공 삼아 경험을 ‘윤색’하거나 주장과 신념을 ‘피력’하지 않는다. 이 책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판결’이다. 나는 판결을 전면에 내세우며, 판결에 담긴 판사의 고민과 성찰, 판사가 택한 의외의 파격 같은, 판결의 색다른 이모저모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요컨대, 판결의 ‘속살’을 이야기하고자 했달까.
--- pp.9~10, 「프롤로그」중에서
나는 “판사의 말이 곧 법이다”라는 말을 오히려 거꾸로 새기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법이 곧 판사의 말이다.” 판사는 사건에 적용될 법이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그 법이 어떻게 해석되는지를 풀어 설명하는 것을 그 역할로 할 뿐이다. 판사가 하는 일은 ‘법’에 근거하며, 따라서 ‘법’을 벗어날 수 없다. 법이란 ‘판사의 말뚝’과 같다. 판사가 ‘제아무리 멀리 벗어나려 해도 말뚝이 풀어준 새끼줄 길이’만큼만 가능한 것이다.
--- p.20, 「제1부」중에서
그날의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는 증명의 영역이 아니라 실제의 영역이다. 증명되지 않는다고 하여 진실이 부정될리 없다. 그러나 이 진실을 하늘도 알고 땅도 알고 당사자는 알 수 있을지 몰라도 제3자가 파악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에 재판은 진실의 그림자인 ‘사실’을 드러내 인정하고 이를 통해 진실을 재구성하는 고된 과정이 된다. 어쩌면 이 글 첫머리에 적힌 판결은 판사 스스로 하는 다짐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허위, 과장, 왜곡, 착오를 배제하고 진실을 반드시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그런 다짐 말이다.
--- pp.65~66, 「제1부」중에서
말을 절제하며 정확하게 쓰려고 한다는 점에서 시와 법은 닮았다. 법은 첨예하게 대립하는 현실 사이에서 작동한다. 이 첨예한 대립적 현실을 언어로 담아내야 하기에 법 역시 언어를 계속해서 갈고닦을 수밖에 없다. 예컨대 새로운 법을 제정할 때 압축적이면서도 섬세하게 문장을 만들고자 하고 그 정제된 문장을 해석하고자 노력하면서 해석론이 발달하게 된다. 이것은 마치 시에서 작법과 해법이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판사의 이러한 ‘언어적’ 관심, 어쩌면 집착은 중요 사건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 p.91, 「제2부」중에서
나의 주장을 이리저리 재지 않고 일목요연하게 일사천리로 펼쳐내면 충분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마치 야구에서 직구가 시원하게 뻗어 가듯 그 자체로 논리에 힘이 생길 줄 알았다. 생각이 바뀐 것은 몇 차례 자가당착에 빠진 이후이다. 신나게 주장을 하다가 의외의 반박에 부딪혀 그제야 그에 대한 답을 생각해 말하다가, 내가 했던 예전 말과 지금 답이 아귀가 안 맞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나는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준비할 ‘반론’을 미리 생각해 보는 습관을 들이고자 노력했다. 마치 조치훈과 같은 바둑기사가 ‘수읽기’를 하는 것처럼. 그런데 이러한 수읽기의 모범은 사실 판결에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 p.129, 「제2부」중에서
재판과 판결 과정에서도 라포르가 중요하다. 재판과 판결은 누군가 한 명이 외따로 완성해 나가는 일방적 결과물이 아니다. 판사와 당사자 사이에, 또 판사들 사이에 상호작용을 통해 쌓아 올린 결과물이다. 진지하게 임하다 보면 분위기가 무거워져 긴장 수위가 한없이 올라갈 수 있다. 이때 판사의 특별한 재치가 공기를 바꿀 수 있다. 판사의 재치는 상대의 웃음을 유발하고 장벽을 허물어 허심탄회하게 서로를 바라볼 수 있게 한다. 판사의 품 넓은 재치는 재판과 판결에서 넉넉함과 여유를, 나아가 라포르를 갖게 하는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나는 여전히 재미없고 진지한 판사이다. 그래도 끊임없이 재치와 유머를 탐구하는 것은 이와 같은 재치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 pp.179~180, 「제3부」중에서
판결에서도 비유를 사용할까? 나도 한때 ‘설마 판결에서 비유를 사용하겠는가?’ 하는 의구심을 가졌다. 차마 내가 비유를 쓸 감이 되지 않음을 잘 알기에, 나에 비추어 다른 판사들을 바라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보기 좋게 틀렸다. 놀랍게도 판결에서도 비유를 사용한다. 그러고 보니 어느 심리학자는 비유를 “추상적 생각을 구체적 이야기로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했던가. 이러한 효율적인 기능을 가진 비유를 판결에서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겠다. 문학에서만큼 신선하고 멋있지는 않겠지만,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판결에서도 간단한 비유를 사용한다.
--- p.190, 「제3부」중에서
재심에는 두 가지 용기가 필요하다. 판사의 과거 판단을 정면으로 바라볼 용기, 과거 판결에서 잘못이 발견될 때 이를 취소할 수 있는 용기. 쉽지 않은 일임을 안다. 하지만 고쳐 생각해 보면 ‘법’에 근거하여 사건을 추스르는 것이 생각만큼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있다. 장석지가 그랬던 것처럼 법에 기대어 우리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법에 근거하여 나의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 굳건하고 그렇게 실천한다면 그 자체로 ‘용기 있는 판사’이지 않을까?
--- p.230, 「제3부」중에서
지난 10년 동안 판결은 느리지만 차근차근 발전해 왔다고 생각한다. 문장이 간결해지는 한편, 이지리드(Easy-read) 판결이 시도되는 등 판사의 부단한 노력이 더해졌다. 갈수록 복잡해지고 어려워지는 사건을 대하면서도 판결을 매만지는 작업을 멈추지 않은 것은, 법원과 판사가 당사자와 사회 구성원에게 다가서는 정성이었다고, 나는 이해한다.
--- p.233, 「에필로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