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는 이 세상이 존재하는 데 아무런 이유도 목적도 없고, 인간의 삶이 따라야 할 그 어떤 이유도 목적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니체가 말하는 인간에게 닥친 운명이다. 그러나 그는 이런 운명에 절망하거나 낙담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긍정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제 삶의 이유와 목적을 스스로 창조하는 자기 창조적 삶을 살라고 말한다. 따라서 운명을 사랑하라는 것은, 이 세계와 삶의 무의미함 속에서 자기 자신을 창조하는 니힐리스트의 삶을 받아들이라는 뜻이다.
--- p.97
인간에게 삶의 의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 의지는 제대로 실현될 수도,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인간에게는 삶의 의지만이 아니라, 이를 실현할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니체는 삶의 의지만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힘에의 의지’를 말한다.
--- p.98
따라서 주인과 노예의 생존 조건이 다른 만큼 이들이 추구하는 도덕도 다르다. 주인 도덕은 적극적 자기 긍정, 자기 지배, 자기 창조, 힘의 강화 등을 높이 평가한다면, 노예 도덕은 겸손, 자기희생, 이웃사랑, 이타심, 평등, 평화 등을 선으로 보면서 주인 도덕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 p.113
나만이 자기 창조적 존재인 것이 아니라, 타인 역시 자기 창조적 존재임을 인정하고, 각 개인의 자기 창조적 삶이 잘 실현될 수 있도록 서로 배려하고 협력하는 것을 도덕적 덕목으로 삼는다면, 노예 도덕은 주인 도덕과 대립하지 않는다. 이웃사랑, 평등, 평화 등의 의미를 노예 도덕이 말하는 자기희생과 같은 덕목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인정, 배려, 협력으로 해석할 때, 노예 도덕은 자기 창조적 삶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강화할 수 있다.
--- p.116
니체가 말하는 초인은 진정한 니힐리스트를 의미한다. 따라서 초인은 이 세계가 존재하는 그 어떤 이유나 목적도 없으며, 인간이 살아야 할 그 어떤 이유나 목적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초인은 이 허무함에 절망하지 않는다. 초인은 허무함을 적극적으로 긍정하고 이를 자기 창조적 삶의 계기로 삼는다.
--- p.139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가 전한 복음은 사랑이며, 사랑이 실현되는 곳이 천국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니체는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기독교인이라고까지 말한다.
--- p.149
현대인에게는 자신이 내린 인생의 결정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 이를 보증해 줄 그 어떤 객관적 토대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현대인은 누구나 삶의 확신
을 갖지 못하고, 심리적 불안감에 빠질 수 있다. 현대인의 삶은 그래서 힘들다.
--- p.160
이런 점에서 스미스는 ‘공정한 관찰자’라는 가상의 인간을 도입한다. 즉 공정한 관찰자의 시각에서 공감 가능한 행동을 할 때 도덕적 행위가 되며, 타인에게 공감을 표할 때도 공정한 관찰자의 공감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 p.189
타인의 시선은 니힐리스트에게도 지옥일 수 있다. 그들은 통속적인 잣대에 나를 얽어매고, 내가 이와 다르면 나를 경멸하고 무시하기 때문이다. 이런 타인의 시선에 복종하면 니힐리스트는 자기 삶의 주권자가 아니라, 그를 바라보는 타인이 그의 삶의 주권자가 된다.
--- p.194
김우진과 윤심덕은 노인을 보고, 너는 무엇을 찾으러 망망대해에 나가 험악한 고통을 겪었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사흘 밤낮 동안 사투를 벌이며 청새치를 잡은 노인에게, 가련한 인생아, 다 잃을 줄 모르고 칼 위에서 춤추는 자라고 비웃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노인은 모든 것을 잃었어도 눈물로 된 이 세상 죽으면 그만이라고 체념하지 않았다. 노인은 소년과 함께 다시 바다로 나갈 계획을 세웠다. 노인은 인생의 슬픔과 기쁨마저 초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사자의 꿈을 꾸었다.
--- p.223
니힐리스트는 인생의 허무나 무의미함을 형벌처럼 안고 살지만, 어떤 절대적인 가치를 통해 여기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삶을 비관하며 괴로움 속에서 살아가는 것도 아니다. 니힐리스트는 인생과 이 세계의 허무함을 적극적으로 긍정할 뿐만 아니라, 이를 자기 창조의 기회로 삼는다.
--- p.236
따라서 인간의 삶을 예술작품처럼 만든다면, 이는 생산적 권력에 종속된 주체성 유형과는 달리 삶의 무한한 가능성을 드러낼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인간은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최고의 주권자가 된다.
--- p.256
그러나 사랑은 니힐리스트가 진짜 니힐리스트로 살아가는 데 안식처를 준다. 사랑한다는 것이 상대방을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고유한 존재로 인정하고, 각자 자신의 고유성을 자유롭게 발휘하며 살도록 서로 공감하고 협력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 p.2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