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는 엉뚱한 연구에도 관심이 많았어요. 내가 네 살 때 어머니께 한 말은 지금도 정확하게 기억이 나요. “엄마, 사람들이 치료약을 어떻게 발명하는지 저는 알아요. 죽고 싶은 사람들과 아픈 사람들에게 구두약, 휘발유, 무엇이든 다 먹게 하는 거예요! 그런 걸 다 먹고도 살아나면 자기 병을 고칠 수 있는 약을 발명하게 되는 거 아닐까요?” 물론 그럴 때마다 어머니께 야단만 맞았지만 말입니다. 그 무렵 나는 생각이 넘쳐났어요. 어느 날은 잠들기 직전에 갑자기 죽음의 공포가 밀려와서 벌떡 일어나 앉았던 기억이 납니다. ‘언젠가는 나도 죽겠지?’
하지만 평생 나를 따라다닌 질문은 죽음에 대한 것이 아니었어요. ‘삶의 허무함 때문에 인생의 의미를 잃어버린다면?’ 나는 스스로 묻고 답을 찾기 위해 애썼죠. 그리고 마침내 답을 찾았습니다. ‘죽음이 삶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든다.’ 존재의 허무함이 존재의 의미를 파괴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겪은 모든 시간과 경험은 과거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안전하게 보관되는 것입니다. 누구도 그 무엇도 그것을 훼손하거나 없앨 수 없습니다.
--- p.17~18
의미 있는 일에 등급이 있듯이, 의미 없는 일에도 등급이 있습니다. 그것을 구별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우리가 겪는 일들 중에는 꼭 기억해두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테레지엔슈타트 수용소의 화장실 벽에서 이런 문장을 발견한 적이 있어요. “어떤 일이든 이겨내자. 오물에 빠져도 즐거워하자.” 우리는 긍정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인생을 즐길 수 있습니다. 미래를 기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거를 의미 있게 기억하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잃어버린 노트를 찾기 위해 애쓰는 나의 소설 속 주인공처럼 감사한 날, 행운의 날을 기념일로 지정하고 기억하며 축하해야 합니다.
--- p.27~28
우리가 최종적으로 발견해야 하는 삶의 의미는 우리의 수용 능력을 넘어섭니다. 무엇보다 나를 초월하는 의미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자기 초월의 욕구가 있고, 자기 초월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나를 초월하는 의미를 믿어야 합니다. 열여섯 살 그해, 햇살이 쏟아지는 오후, 타보르슈트라세를 산책하다가 나는 나 자신을 만났습니다. 그때 내 마음속에 고이 간직했던 문장을 떠올렸습니다. ‘운명을 축복하자! 운명의 의미를 믿자!’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궁극적 의미, 초월적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의미를 다 알 수 없지만, 믿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아모르 파티amor fati, ‘운명에 대한 사랑’입니다.
--- p.60~61
나는 로트실트 병원에서 일하는 동안 다행히 학술적인 연구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하루에 평균 열 명, 자살 시도자가 응급실로 실려오던 때였습니다. 빈에 사는 유대인들은 매일 절망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어요. 내과 의사인 도나트 교수가 살아날 가망이 없다고 포기한 환자에게도 나는 응급 처치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정맥에 여러 가지 자극제를 주사했어요. 그것은 저의 신념이었습니다. (…)
나의 조수였던 라파포르트 박사는 자살 시도자들이 응급실로 실려 왔을 때, 적극적으로 살려내려고 애쓰는 나의 노력에 반대했던 사람입니다. 그녀가 어느 날 자살 시도자가 되어 응급실에 실려 왔을 때, 내 심정은 참담했습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녀를 적극적으로 살려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결국 강제수용소로 끌려가고 말았습니다. 나는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의 결심을, 고통을 존중합니다. 하지만 한 생명이라도 끝까지 살려내려는 나의 신념과 원칙도 존중받기를 원합니다.
--- p.89~91
죽음의 수용소 아우슈비츠로 가는 날 겪었던 일을 책에 쓴 적은 없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는 아우슈비츠에서의 일화들을, 이 책에서 처음으로 자세히 기록해보려고 합니다.
아우슈비츠로 가는 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역에서는 포로들을 분류하는 심사가 있었습니다. 포로들은 줄지어 서서 심사를 기다리고 있었고, 악명 높은 멩겔레 박사30는 한 사람 한 사람을 훑어본 다음 누구는 오른쪽으로 누구는 왼쪽으로 밀쳐냈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노역장으로 끌려갈 포로들은 오른쪽으로, 가스실로 끌려갈 포로들은 왼쪽으로 밀쳐낸 것이었죠. 내가 아는 젊은이들은 모두 오른편으로 분류돼 있었어요.
나는 멩겔레가 잠시 딴눈을 파는 사이, 조용히 오른편 제일 끝자리에 가서 서 있었습니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면 목숨을 건 모험을 한다고 해서 손해 볼 것이 없었기에 시도한 것이지요. 절박한 상황이 닥치면 그런 생각과 용기가 내면에서 솟아난다는 걸 알게 되었죠. 그렇게 나는 단 몇 초 사이에 생사의 강을 건넜습니다.
--- p.117
늙는다는 건 존재의 덧없음을 느끼게 합니다. 하지만 이 덧없음이야말로 내 삶을 책임지게 하는 자극제이기도 합니다.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책임감! 우리는 내 삶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로고테라피 치료의 원칙은 인간 개개인이 자신의 삶에 이 책임감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이 원칙은 어느 날 꿈속에서 로고테라피 이론에 대해 고심하다가 번뜩 떠오른 것이었죠. 그래서 자다 일어나서 기록을 남겼습니다. ‘인생을 두 번째로 살고 있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지금 당신이 막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 번째 인생에서 이미 실수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
--- p.158
어느 날 아침, 병원에 출근하니 미국 교수들과 정신과 의사들과 학생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연구를 목적으로 빈에 체류 중인 사람들이었죠. 나는 환영사를 해야 했어요. “미국에서 『미국 인명사전Who’s Who in America』에 올릴 20명을 선정한 후, 그들에게 ‘인생의 관심사’를 한마디로 써달라는 부탁을 했어요. 나는 20인 중 한 사람이었죠. 내가 뭐라고 답했을 것 같나요”
모두 생각에 잠겼을 때, 버클리 대학 학생 한 명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답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돕는 것에 삶에 의미가 있다. 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삶을 살겠다.” 정확한 답이었습니다. 나는 정말로 그렇게 썼습니다.
--- p.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