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달쌍하다, 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릴 적부터 하도 많이 들어서 그놈의 달쌍 얘기만 나오면 화가 난다. 오죽하면 엄니를 붙잡고 이런 한탄을 했을까.
“엄마는 나를 왜 이렇게 낳았어? 맨날 세숫대야 같다고, 보름달 같다고 하고. 동네 사람들 죄다 달쌍하다고 하고. 나보고 남자라고 하고.”
“나라고 너를 그렇게 낳고 싶었겄냐. 문희, 윤정희처럼 낳고 싶었지. 헌디 느그 아배 씨가 그런 걸 나보고 그러믄 안 되지.”
--- p.47 「달쌍하다」중에서
“나가 어릴 적에 도구통을 많이 찧어서 이런 겨. 끄떡허믄 보리 찧어라, 깨 빻아라, 떡 쪄라, 틈만 나믄 불러서 도구통을 찧게 했당께. 요즘이야 다 껍다구 베껴져서 나오니께 기냥 씻어서 묵기만 허믄 되지만, 그땐 다 찧어서 까불러야 혔어. 어린애가 뭔 심이 있겄어. 기냥 시키믄 시키는 대로 혔지. 그렇지 않으믄 밥 구경을 헐 수 있었깐. 아부지 엄니는 가게에서 일허니께 죙일 나 핵교 끝나기만 기다렸다가 오믄 밥해라, 아궁이에 불 넣어라, 물 질어 와라, 동생 업어 줘라, 그래서 나가 어깨가 나간 겨. 나가 올매나 징그러웠으믄 시집올 때 도구통을 마당에 패대기를 쳐 부렀을 겨……, 그나저나 나간 어깨를 어찌 찾아올지도 모르겄네. 팔도 안 올라가고 요지경이 됐는디.”
--- p.51 「도구통」중에서
어릴 적부터 다리가 약해서 학교 갈 때마다 고생이었다. 5분 정도 걷다가, 10분 걷다가 쉬는 어린이였다. 그때마다 동생이 내 가방을 메고 먼저 학교에 갔다. 누나는 쉬었다 오라는 나름의 배려였다.
(중략)
나는 두둠바리다. 때론 천천히 걷기도 하고, 달리기도 한다. 가다 보면 넘어져 다치기도 하고, 휘청거리기도 한다. 코스에서 벗어나 방황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느새 제자리로 돌아와 나만의 코스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 p.64 「두둠바리」중에서
어느 날, 아부지가 쌀가마니를 어깨에 메고 내 작업실에 오셨다. 그러고는 빛 안 드는 서늘한 베란다 구석에 놓았다.
“씬나락여. 내년 봄에 쓸 거여. 귀한 거여. 귀한 딸 집에 귀한 거만 놓는 겨.”
“내가 쫌 귀하지?”
씽긋 웃던 아부지가 간다는 말씀도 없이 현관문을 열고 나가셨다. 내년 농사 씬나락은 말 그대로 씨앗이다. 종자가 좋아야 열매도 좋다. 좋은 종자를 얻기가 힘이 드는데, 아부지는 찰배미논에서 나온 쌀을 늘 씬나락으로 했다. 그 귀한 씬나락을 내 안에 덜썩, 갖다 놓고 저승 가신 아부지.
--- p.105 「씬나락」중에서
장물이 뒤집어지면 집안도 뒤집어진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이 진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날 일은 아직도 생생하다.
장물이 뒤집어진 날, 길창이네 할머니는 커다란 갱엿을 사다가 독에 넣었다. 그러고는 아픈 허리를 붙잡고 약수를 떠다가 장꽝에 놓고 기도를 했다. 천지신명님께 빌고 또 빌었다. 한데, 그날 밤 길창이 아버지가 술 마시고 오다가 다리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팔이 부러지고 발목이 골절됐지만 다른 곳은 이상이 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니면 할머니의 기도 덕분인지 모르겠으나, 장물이 뒤집어진 날 맞춰서 사고를 당한 길창이 아버지는 할머니의 잔소리와 한숨과 걱정을 많이 받아서 술을 끊었다.
길창이 할머니는 돌아가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장꽝을 벗어나지 않았다. 할머니가 아는 모든 신을 한곳에 모셔 두었다.
--- p.130 「장물」중에서
아부지 저승 가신 지 10년이지만, 매년 봄이 올 때마다 창꽃 얘기를 하시는 엄니.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못 들은 척하고는 산에 가서 아부지 대신 창꽃을 꺾어 왔다. 그러면 창꽃을 안고 환하게 웃으며, 꼭 하는 짓이 지 아배하고 닮았다고 지난 이야기를 두런두런 하신다.
“올해도 곱게 폈구만. 당신 가고 해마다 창꽃은 피는디, 당신은 피지도 않고, 내 곁에 읎네.”
아부지도 매년 창꽃으로 피고 진다면 어떨까. 누구나 가슴속에 피고 지는 꽃이 있을 것이다. 그 꽃이 어떤 모습으로 어떤 향기를 내는지 모르겠지만, 그저 품는 것만으로도 가슴 아리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 p.140 「창꽃」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