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쉽게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존재다. 그냥 같이 누워서 떠오르는 대로 상상한 이야기를 들려주면 아이는 좋아서 깔깔대며 계속 더 이야기해달라고 한다. 그래서 아이 역시 나를 세상에서 가장 쉽게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아이가 있어서 아내와 나는 하루에 수십 번, 수백 번을 너무 쉽게 웃는다. 우리는 이 시절이 너무 짧다는 것을 매번 의식하고, 그래서 자주 슬퍼진다.
--- p.19
그때부터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다른 종류의 태도였다는 걸 알게 된다. 숨구멍 같은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 언제든 의심하고 도망칠 준비를 하거나 여지를 남겨놓고 ‘거리’를 둔 채 관계 맺는 게 아니라, 그 반대로 거리를 좁히며 서로에게 스며들어가는 삶이 시작된다는 걸 알게 된다. ‘함께 살아감’이라는 걸 위해 집요하게 서로를 이해하면서, 타협하고, 맞추어나가고, 서로를 고쳐나가면서 더 나은 삶으로 ‘같이’ 가야 하는 삶의 방식이 도래했다는 걸 느끼게 된다. 이제 삶은 내 것 또는 네 것 사이의 거리 조절이 아니라, 우리의 것을 함께 만드는 일이라는 걸 말이다.
--- pp.24~25
그 시절을 다시 살아내라고 하면, 솔직히 자신은 없다. 고생스러웠던 건 사실이고, 하루하루 아내의 우울과 수면 부족과 체력 부족으로 인해 일종의 거대한 ‘늪’ 속에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사실 그런 기억은 거의 희미해졌다. (...) 힘겹다고 항상 불행한 건 아니었다. 아이가 처음 기어다니고, 일어서서 걷고, 침대를 굴러다니며 함께 장난치고 웃던 날들은 ‘불행했다’라는 단어 하나로 덮어버릴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 pp.29~30
우리의 시야는 ‘나 자신’만 생각하던 것에서 타인을 고려하는 것으로, 나아가 아이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보는 것으로 확장된다. 아이라는 이 작고 여린 존재의 세상을 보는 건 때론 두렵고 불편하지만, 그래도 또 그러부터 배우는 세상에 대한 더 섬세한 시선들이 있다. (...) 나의 삶에 타인의 시선이 하나 더해지면서, 나는 조금 더 세상을 올바르게 볼 줄 알게 되었다.
--- p.34
내 세월, 내 시간, 내 삶을 이것을 위해 여기 있다. 나라를 구하거나, 노벨상을 받거나, 거대한 부를 축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모든 것들을 하잘것없는 것으로 치워버린 자리에서, 그냥 사랑하며 소모하고 떠나보내기로 택한 것이 어느 시절의 삶이고, 하루이다. (...) 가끔은 내가 인생의 모든 시간을 한순간에 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상하게도 한 아이의 어린 시절이 곁에 있다는 것에서 슬픈 축복, 외로운 감사함 같은 걸 느낀다. 나는 여기에서 바람 같은 삶을 잠시 살고 있다.
--- pp.42~43
그런 밤이면, 내게 찾아온 이 새로운 삶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나는 나의 이 산산조각 난 삶의 부서짐을 얼마나 그리워할지, 생각한다. 다시 내가 좋아하는 고요가 찾아오고, 늦은 아침과 오후의 세상이 돌아올 무렵, 나는 나에게 도래했다 떠난 이 삶의 소란스러움을 얼마나 그리워할까 생각한다. 삶에는 내가 그 이전에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유의 깔깔거림과 생동감과 사랑이 있다는 걸, (...) 삶의 아주 가까운 진실 같은 것을 깨달아버린 어느 나날들에 관하여.
--- pp.76~77
아이의 욕망에는 한계가 있고, 아이의 호기심은 작은 곳에서 무한을 본다. 공원 안의 작은 디테일들, 이를테면 애벌레, 개미, 달팽이, 세 개의 미끄럼틀, 하루 종일 팔 수 있는 모래알들은, 아이가 자기 욕망을 펼칠 수 있는 ‘알맞은’ 공간들이다. 아이가 그렇게 만족하면, 나도 더 이상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셋이 함께 있는 게 좋을 때 알맞음, 만족, 욕망의 한계를 배운다.
--- p.122
다른 생물의 입장을 ‘상상’해보는 것도 하나의 교육일 거라 생각한다. 다른 생물의 입장을 상상하는 습관을 들이다 보면 다른 사람의 마음도 상상하는 데 익숙해질 것이다.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상상하는 것이 곧 공감 능력이고, 사실 이 능력이야말로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능력이라 생각한다. 아이랑 나는 매일 공감 능력을, 다른 존재의 입장을 상상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냥 ‘착하게 살자’가 아니라, 오히려 ‘정확하게 알자’에 가깝다.
--- p.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