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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융합 한국어교육

: 미국에서 펼친 한국어 놀이 이론과 실행의 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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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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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4년 03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416쪽 | 153*225*20mm
ISBN13 979116919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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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스트로스의 브리콜라저

언어와 문화의 상관관계와 밀접성을 우리는 안다. 새삼 거론하지 않아도 익히 아는 사실이다. 언어 속에는 문화가 들어 있고, 문화는 언어로 성장한다. 언어와 문화에 공통으로 혼이 녹아 있고, 숨이 살아 펄떡인다. 언어와 문화는 삶 그 자체다. 언어와 문화의 관계와 밀접성은 언어를 배울 때 문화의 마당을 펼치게 한다. 언어를 배운다는 게 문화의 마당 위에서 말과 글로 놀아 보는 경험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한국에서 과거에 행했던 문자 중심의 외국어 교육처럼 문장의 뜻을 읽고 해석하게 하는 방식이나, 언어 주입식 영어 교육처럼 대화 상황을 전제해 놓고 서로 주고받는 말을 배우는 식으로는 진짜의 언어를 배우기 어렵다. 거기에서는 문화의 마당이 펼쳐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언어의 진짜 모습은 사람이 사용하는 도구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여전히 학습의 대상이자 한 과목으로 배우는 영어처럼 존재하는 것은 진짜 언어가 아니다. 점수를 얻어야 하는 과목일 뿐 언어가 아니다. 언어는 인간이 사용하는 가장 고차원의 도구이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처럼 무언가 어떤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도구성을 지니는 게 언어라는 뜻이다. 사람이 말하거나 듣거나, 읽거나 쓰는 데에는 특정의 목적이 있다. 그 목적에 도달하고자 말과 글, 즉 언어를 사용한다. 그래서 언어는 도구다. 삶의 도구다.

언어, 즉 말과 글의 사용은 삶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그 삶 속에는 문화가 들어 있기 마련이다. 어떤 언어든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고유한 삶이 있고, 그 삶이 지닌 고유의 문화가 있는데, 그 삶과 문화의 맥락 안에서 사람들은 언어를 사용한다. 그래서 언어에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문화가 배어들어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보자.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한국어의 ‘반찬’이라는 말에는 밥과 반찬으로 식사를 하는 음식 문화가 들어 있다. 이 말을 영어나 프랑스어, 중국어 등으로 옮길 수 없는 까닭은 영어, 프랑스어, 중국어 화자들의 삶에 ‘반찬’을 먹는 음식 문화가 없기 때문이다. ‘반찬’이라는 말이 아예 없다. ‘국’과 ‘국물’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국’이나 ‘국물’은 영어의 ‘soup’과 같을 수 없다.

다른 언어로 바꾸기 어려운 한국어에는 한국인들의 삶과 문화가 들어 있다. 한국인들이 회자하듯이, ‘정(情)’, ‘한(恨)’, ‘화병(火病)’, ‘덕분(德分)’ 등의 말을 다른 언어로 옮기기 어려운 까닭은 그 말에 담긴 삶과 문화를 다른 문화권에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어뿐이 아니다. 특정 언어에는 그 언어 화자들의 삶과 문화가 들어 있다.

인사말에도 문화가 들어 있다. 가령, 한국인들이 업무 관련하여 처음 만난 사람들과 인사 나누는 장면을 생각해 보면, ‘안녕하세요?’로 시작하여 ‘처음 뵙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말을 자기소개와 함께 구사한다. 서양식으로 악수를 하면서도 ‘잘 부탁드린다’라고 인사를 나눈다.

미국인들은 업무 관련하여 처음 만난 사람에게 ‘잘 부탁드린다’라는 식의 인사말을 하지 않는다. ‘Nice to meet you.’로 인사를 나눈다. 그런 후에 한국인들이 ‘잘 부탁드린다’라고 하듯, 한 마디 더 보태어 좋은 관계를 맺어 가고 싶거나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다면, ‘I am so happy to be here.’와 같은 말을 건넨다. 이 말을 들은 상대는 자기가 상대방을 기분 좋게 했다는 생각으로 좋아한다.

이렇게 한국인과 미국인의 첫 만남 인사말에서도 우리는 각자가 살아가는 방식과 삶의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서로 문화가 다르다. 그러므로 한국어의 ‘잘 부탁드립니다.’를 영어로 옮기면 제대로 옮겨지지 않는다. 번역기에 이 문장을 넣어도 이 말을 우리가 뜻하는 영어로 옮겨 주지 못한다. 우리 저자들은 한국어의 ‘잘 부탁드립니다’를 ‘I am so happy to be here.’라는 영어로 옮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미국의 자동차는 한국의 구두 정도로 번역되어야 할 것이라고 본다”라며, 번역이 “문자의 옮김이 아니라 의미의 옮김”이므로, 번역에서의 “공간과 시간”이 중요하다고 피력한 주장(김용옥,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 민음사, 1985, 60~61)과도 일맥상통할 것이다.

미국의 자동차를 한국의 구두 정도로 번역해야 한다는 이 주장은 장을 보러 가려 해도 자동차를 몰고 나서야 하는 미국인의 삶을 직시하고, 자동차가 긁힌 사고가 났어도 얼굴을 붉히지 않고 명함을 주고받는 미국인들의 삶을 반영한 논리이다. 마찬가지로 장을 보러 가기 위해 신발을 신어야 하고, 구두에 흠집이 났다고 얼굴을 붉히지 않는 한국인의 삶에 구두는 ‘자동차’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보는 인식이다. 언어가 가진 의미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의 삶과 문화, 시간과 공간을 반영하고 있음을 통찰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한 언어에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언중의 의식과 정신도 들어 있다. ‘늙다’와 ‘낡다’를 구별하여 말하는 한국어에서는, 사람이 오래되면 ‘늙었다’라고 말하며, 물건이 오래되면 ‘낡았다’라고 말하면서 사람과 물건을 구별하는 의식을 볼 수 있다. 반면에 ‘그것은 낡았다.’라는 문장과 ‘그는 늙었다.’라는 문장의 ‘낡았다’와 ‘늙었다’를 똑같이 ‘old’라는 어휘로 옮겨 주는 구글 번역기에서는 사물과 사람을 구별하지 않는 의식이 보인다. ‘It is old.’와 ‘He is old.’라는 두 문장 사이에서 주어 외의 문장 성분에 특별한 구별을 볼 수 없는 인식이다.

영어와 한국어 사이에는 사람과 동물에 대한 구별도 차이를 보인다. 한국어에서는 개나 고양이를 ‘그’ 또는 ‘그녀’, ‘그들’이라고 칭하지 않는다. 그러나 영어에서는 개나 고양이 등의 동물도 ‘he’ 또는 ‘she’, ‘they’라고 칭한다. 미국인이 어떤 강아지를 보고, ‘She is so cute.’라고 말하면, 실제로 미국인들은 이렇게 말하는데, 이 말을 한국어로 옮기자면 ‘이 강아지 참 귀엽네요.’라고 해야 맞다. 그러지 않고 말 그대로 ‘그녀가 참 귀여워요.’라고 번역한다면 한국인들의 언어문화에 부합하지 않는다.

소유격 ‘’s’나 복수 어미 ‘s’에 대한 관념에서도 영어와 한국어의 서로 다른 언어 관습이 보인다. 한국인은 소유격이나 복수 어미인 s를 고려하지 않는 경향이 짙다. 예를 들자면, ‘Valentine’s Day’를 ‘발렌타인 데이’라고 하거나, ‘McDonald’s’를 맥도날드라고 서로 다르게 부르는 데서 그런 경향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미국의 마트 중 하나인 ‘Trader Joe’s’를 한국에서는 ‘트레이더 조’라고 부르고, 미국인의 ‘New Year’s Day’가 한국인에게는 ‘뉴 이어 데이’가 된다.

영어가 소유격을 무조건 중요시하는 건 아니어서 한국인과 같은 말로 쓰는 용례도 있다. ‘땡스기빙 데이’나 ‘이스터 데이’, ‘크리스마스 데이’ 등이 그것이다. 이들 말에는 영어에서도 소유격이 없다. 용례를 살펴보면, 영어에서는 주로 사람 이름이 들어갈 때 소유격이 되는 걸로 보인다. 따라서 사람 이름이 아닌 ‘대통령의 날’은 ‘Presidents Day’라고 한다. 하지만, 여기에도 예외가 있다. ‘마틴 루터 킹 데이’는 말 그대로, 소유격을 안 쓴다. 이렇듯, 잘 살펴보면 영어에서도 원칙이 없이, 이렇게, 저렇게 일관성이 없으니, 차라리 소유격이나 복수 어미를 중요하게 구분하지 않는 언어 관습과 문화를 가진 한국어가 더 편안한 언어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언어에 담긴 여러 가지 의식과 정신을 비롯한 문화를 알기에 언어교육자나 언어 및 언어교육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언어교육에 작용하는 문화의 중요성을 인식한다. 말이나 글을 사용하는 상황 맥락 못지않게 말글이 소통되는 문화적 맥락이 중요하다. 그래서 한국의 국어과 교육과정이나 미국의 자국어 교육과정은 ‘맥락(context)’에 따른 언어 사용 능력을 기르도록 계획하곤 한다.

언어 사용의 맥락은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하나는 의사소통의 목적이나 때, 곳, 방식, 대상 등의 요소가 되는 상황 맥락이고 다른 하나는 소통하는 이들을 둘러싸고 존재하는 사회문화적 맥락이다. 우리 두 저자가 미국에서 한국어 교실을 운영하면서 나눈 대화에도 대화의 목적, 방식 등이 반영되게 마련이고, 한국문화와 미국 사회 및 미국 문화라는 사회문화적 맥락이 자연스럽게 반영된다. 그러므로 미국에서 설계하고 실행한 한국어 교실의 운영에 문화를 기반으로 삼고 문화와 언어를 버무린 것은 당연하고도 마땅했다.

이처럼 ‘한국어’라는 말을 배우고, 그 말을 ‘한글’이라는 문자로 적는 법을 익히기 위해서는 한국어를 사용하는 문화의 마당부터 펼쳐야 그 효과를 높일 수 있으므로 언어와 문화의 융합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 융합이 가능했던 건 오직 우리 두 저자가 한국문화를 사랑하고 한국어에 기반을 둔 사고체계 위에서 한국어로 소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문화와 언어를 융합하며 우리가 설계하고 운영한 한국어 교실을 우리는 ‘문화적 브리콜라저(Bricolage Culturel)’로 규정한다. ‘문화적 브리콜라저’는 레비스트로스가 『구조인류학』(Structural Anthropology, 1974)에서 거론한 용어로, 한국어로는, ‘문화적 손재주꾼’으로 옮길 수 있다. 우리의 한국어 교실에 레비스트로스의 학문적 관점이 영향을 미쳤다는 뜻이다. 돌아보면 우리 두 저자는 레비스트로스의 영향을 받은 세대이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널리 받아들여져서 안착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문화와 문명을 보는 인식까지 바꾸어 놓은 레비스트로스의 연구와 그가 주창한 ‘신화적 사고’는 우리의 한국어교육 프로그램 설계에 그대로 작동하였다. 레비스트로스는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초청으로 한국에 방문하여 당시의 학자, 교수들과 한국학을 논의한 바 있다. 이때 그의 책 『야생의 사고』(La Pensee Sauvage, 1962)는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이후 그의 책이 더 왕성하게 번역 출간되면서 학계에도, 일반 대중에게도 인류학에 관한 관심이 더 높아졌다.

레비스트로스의 신화학이나 인류학에 관한 관심은 이후에도 이어져 저술의 출간이 활발해졌다. 그가 1977년 12월, CBS 라디오 시리즈인 〈현대 사상〉 편 방송에서 프로듀서와 나눈 대화를 모은 내용은 한국에서 『신화의 의미』(레비스트로스, 임옥희 옮김, 이끌리오, 2000)로 출간되었다. 레비스트로스와 CBS 파리 지부의 프로듀서 캐럴 오어 제롬이 나눈 일련의 긴 대화를 모은 이 강연집은 둘 사이에서 주고받은 질의응답을 엮은 책으로, 일반인이 가질 수 있는 궁금함을 이해하기 좋게 풀어내고 있어 읽고 이해하기에 편안하다. 인류학과 신화학에 경도된 적이 있는 우리가 레비스트로스의 ‘브리콜라저(Bricolager)’가 되어 한국어 교실을 설계하고 운영한 것은 필연이 아닌가 한다.

우리가 이 책의 영어 번역본(The Savage Mind, George Weidenfield, Nicholson Ltd, 1977)과 한국어 번역본 『구조인류학』(레비스트로스, 김진욱 옮김, 1987, 종로서적)을 대조하며 읽는 동안에도 레비스트로스의 문화와 언어에 관한 관점이 21세기의 미국에서 우리에게 스며들었다. 2018년의 미국이라는 제한된 시공간에서 한국의 문화를 끌어와 ‘신화적 사고’에 의존하며, 우리 스스로 ‘브리콜라저’라는 ‘손재주꾼’이 되어 가며, 재미 교민 자녀들의 한국어 수업을 시도하였으니, 다시금 주목해 보는 그의 명저 『야생의 사고』에서는 ‘bricolage’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문화적 손재주꾼들의 한국어 교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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