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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다가와도 괜찮아

: 마흔에 맞닥뜨린 암, 돌아보고 살펴본 가족과 일 그리고 몸에 관한 일기

김진방 | 따비 | 2024년 05월 1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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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5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240쪽 | 386g | 148*210*15mm
ISBN13 9791192169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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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에서 삼차신경통을 얻어 귀국한 뒤에도 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아마도 낙향한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랬겠지 싶다. 괜한 자존심 때문이었다. 그게 몸을 갉아먹었고, 암이 커지게 된 이 상황을 만들었다. 지금 나를 암 3기로 때리지 않으면 멈추지 않을 것이라 하나님은 생각했을까?
--- p.28

한 분 한 분 연락이 올 때면 내가 이분께 무엇을 해드렸을까 떠올려본다. 굵직한 사건이야 기억이 나지만, 대부분은 기억조차 희미한 작은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그래도 연락이 올 때마다 과거의 나를 칭찬한다. 그리고 반성한다. 여태까지 지인들의 암 진단 소식에 무덤덤했던 나를 말이다.
--- p.58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아픈 왼쪽 골반에 손을 얹는다. 그리고 눌러본다. ‘안 아픈데, 이게 다 꿈인가’ 손을 허리 쪽으로 가져가 튀어나온 데를 만져본다. ‘아, 꿈은 아니네.’ 현실이라는 게 확인되면 기도를 한다.
--- p.83

진료실을 나오자마자 병원에 함께 와준 베이징 형에게 큰 목소리로 “나 림프종 3기래!” 하고 기뻐서 외쳤다. 다른 환자들은 ‘저 미친놈이 아파서 돌았나’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암 3기에 저리 기뻐하는 환자를 본 적이 없겠지. 하지만 그 순간 나는 림프종 3기가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없었다.
--- p.87

지금까지 열심히 살았고, 가족과 지인들 살뜰히 챙겼고, 사회적으로 이룬 성취도 만족스러웠다. 다만, 늘 바쁘게 일만 하던 아빠가 훌쩍 떠나버렸을 때 남겨질 아이들이 걱정이었다. 골육종 진단을 받은 뒤 집에 있지 못했던 이유도 아이들이었다. 보고만 있어도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 p.95

내가 투병을 시작한 지 거의 한 달이 돼간다. 당사자인 나는 지치지 않는데, 주변에서 조금씩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럴 때마다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
--- p.107

이제는 베이징에서 일했듯, 잼버리 때 일했듯, 내 몸에 대해 알아갈 시간이다. 사소한 것 하나도 기록하고, 정리하고, 분석해서 최대한 내 골반과 림프절에 있는 암 덩어리들을 사라지게 만들어야지.
--- p.121

아내가 받는 육아 스트레스가 미안하고, 처제 처남의 일상을 망친 것이 미안하고, 단이의 틱이 걱정되지만, 내 몸속의 열 1도에도 나는 다 남겨두고 떠날 수 있다. 아주 완벽하고 빈틈없이 모든 것을 해내야 겨우 붙잡을 수 있는 나의 일상이 그냥 무심한 손길 한 번에 다 날아가는 것이다.
--- p.135

나는 아파 죽겠는데 다른 사람들은 일상의 소소함을 즐기고 있는 것에 시기가 난 것일까. 안 보면 그만이지만, 하루 종일 병실에 갇혀 있는 내가 외부와 소통하는 유일한 창구인 휴대전화를 꺼둘 수는 없었다. 시기보다는 외로움이 더 크니까.
--- p.159

내가 아무리 자존감이 높아도 누가 있는 곳에서 이 머리를 내보이기는 쉽지 않다. 꼴이 우스워서가 아니라, 미용사나 다른 손님들이 물으면 암 환자인 것을 말해야 하고 무슨 암인지도 말해야 하는, 그런 게 귀찮았다.
--- p.176

지금 내 머릿속에서 가장 걱정되는 것은 손끝저림 같은 아주아주 사소한 증상이다. 동상 같은 이 증상도 항암제를 맞으면 씻은 듯이 나을 것이다. 손끝에 신경 쓸 수 없을 만큼 온몸이 너덜너덜해질 테니까. 앞으로 암 환자를 만나면 나는 작게라도 꼭 응원의 선물을 줄 생각이다. 항암치료를 받을 때마다 새로 태어나야 하는 그들의 노고를 조금이라도 위로하고 싶다.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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