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트 무질은 “세계의 역사는 적어도 그 절반은 사랑의 역사”라고 말했다. ‘잃어버린 보물 사냥꾼’ 플로리안 일리스는 일기, 편지, 잡지, 신문, 그림, 사진 자료를 바탕으로 베를린 황금기의 끝자락인 1929년부터 제2차세계대전이 일어난 1939년까지 격동의 10년을 문화사적으로 의미 있는 주요 인물들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풀어낸다. (…) “1920년대 사람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사랑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얻은 것은 흥분제였다”는 저자의 메시지는 지금 우리에게도 딱 맞지 않은가?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 역시 바로‘사랑’일지 모른다.
---「옮긴이의 말」중에서
사르트르가 묻는다. “그런데 이 많은 사람 속에서 어떻게 그렇게 빨리 저를 찾아냈습니까?” 엘렌이 이렇게 대답한다. “언니가 말했어요, 키가 작고, 안경을 썼고, 아주 못생겼다고.” 이렇게 20세기 가장 위대한 사랑 이야기가 시작된다.
--- p.9~10
상대성이론 창시자인 진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사랑에서 시간과 공간이 꽤 중요한 역할을 하며 극복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아인슈타인은 여름날 같은 카푸트의 호숫가에 있는 아내에게 이렇게 전보를 친다. “글로 쓰는 것은 바보 같아, 일요일에 당신에게 키스하러 갈게.”그러니까 일요일=키스×시간²인 셈이다.
--- p.26~27
피카소는 금욕주의자처럼 계속 그림을 그린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리기를 멈추더니 아직 오일이 채 마르지도 않은 그림에 서명한다. 그림을 보려고 기모노를 걸치고 남편 뒤에 선 올가는 충격에 다리에 힘이 빠져 주저앉고 만다. 그림 속에는 여인이 아니라 괴물이 있었다. 공포로 일그러진 얼굴과 뒤틀린 팔다리가. 올가는 한마디 말도 없이 옷을 입고 가버린다.
--- p.33
여자들은 이제 더이상 남자들이 필요 없다. 남자들을 당황스럽게 만든 이 메시지는 1920년대 후반의 사회 분위기를 말해준다. 여자들은 이제 생계를 위해 남자들이 필요 없다. 스스로 해결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베를린을 비롯한 대도시에서는 그랬다. 여성들은 사무실에서 일한다. 마샤 칼레코가 쓴 것처럼 “여자들은 아홉시에서 다섯시까지 성으로만 불린다. 퇴근 후에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 p.66
1920년대 사람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사랑이었다(아니면 적어도 심리 치료사였다). 그러나 그들이 얻은 것은 흥분제였다.
--- p.105
우리도 알다시피 인생은 반드시 논리적이지만은 않다. 발터 벤야민은 그렇게 가난에 빠지고, 절망에 빠지고, 혼란에 빠진 채로, 자기가 사랑하는 베를린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그 시절에만 해도 완전히 잊혔고 원초적이고 홀로 저물어가는 지중해 섬 한가운데에서 대작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 시절』을 쓰기 시작한다.
--- p.209
1933년 1월 1일, 샤리테 병원 병실에서 마르가레테 슈테핀이 뒤숭숭한 꿈에서 깨었을 때, 간호사가 드립 커피 한 잔을 주면서 힘찬 목소리로 “새해를 위해 건배”하고 인사한다. 마르가레테는 펜과 종이를 집어 사랑하는 베르톨트 브레히트를 위해 소네트를 짓는다. “오늘 난 꿈을 꾸었네, 당신 곁에 누워 있는 꿈을.” 그것은 좋은 꿈이 아니었다. 자기를 유혹해놓고는 달아나버린 것이다.
--- p.247
1933년 가을, 모든 독일 지식인이 남프랑스나 파리에 정착하기 위해 도망치듯 베를린을 떠나는 와중에 그와 반대로 파리에서 베를린으로 오는 두 지식인이 있다. 바로 시몬 드 보부아르와 장폴 사르트르다. 먼저 사르트르가 프랑스 연구소에서 연구비 지원을 받는 연구원으로 위대한 현상학자 에드문트 후설 밑에서 공부하기 위해 홀로 베를린에 온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데 있다. “나는 내 젊은 시절의 무책임함을 재발견했다.” 베를린 전역에 나치 십자가가 휘날리고 모든 위대한 독일 작가가 사르트르의 고향 파리로 도망치기 위해 떠날 때, 사르트르는 베를린에서 “사랑의 도시”를 발견한 것이다.
--- p.351
그렇다, 그곳이 파리든, 모스크바든, 코펜하겐이든, 산타모니카든, 브레히트가 가는 곳마다 그의 여자들 중 한 명이 있고, 그를 살뜰히 보살피고, 돌봐주고, 자기 침대에 들여준다. 이 여인들은 끊임없이 도피중인 브레히트를 고국에 있는 것처럼 편안하게 해준다. “내 안에는 당신이 믿고 의지할 수 없는 한 남자가 있어.”
--- p.413
그것은 사랑임에 틀림없다. 1937년 2월 21일에 레니 리펜슈탈은 미국 기자 패드릭 킹에게 아돌프 히틀러를 생각하면 어떤 기분이 드는지 질문을 받고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에게 히틀러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남자예요. 정말 결점이라고는 없어요. 아주 단순하면서도 남성적인 힘이 넘치죠. 히틀러한테는 빛이 나요. 프리드리히대왕이든, 니체든, 비스마르크든 독일의 위대한 남자들은 모두 실수를 저질렀죠. 히틀러의 측근들도 오점이 없지는 않죠. 오직 그 사람만 순수해요.”
--- p.4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