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아이는 태어나서부터 많은 신하를 거느리게 됩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어른들입니다. 24시간 내내 아이에게 무언가 불편함이 없을까 고민하는 어머니와, 불편한 것이 생기면 즉시 해결해 주는 어른들이 항상 곁에 있습니다.
그렇게 불침번을 서는 신하들은 그들의 작은 왕이 배고픈 것 같다고 느끼면 즉시 우유를 대령하고, 기저귀가 젖은 것 같으면 즉시 기분 좋은 뽀송한 기저귀로 바꿔 줍니다. 잠자는 시간이 되면 온도, 습도가 맞춰진 편안한 잠자리와 자장가도 제공하지요. 아이는 태어나서 얼마 동안은 내부 세계와 외부 세계를 구분하지 못합니다. 나와 타인의 존재도 구분하지 못하고, 엄마도 이 세상도 모두 자신의 일부처럼 느낍니다. 배고픔이나 젖어 버린 기저귀의 기분 나쁜 느낌, 허리에 장난감이 끼어 아픈 느낌 등을 아이는 세세하게 구분하지 못합니다. 무언가 불쾌한 기분이 들고, 정확히 알 수 없는 신체적 긴장감을 느낄 뿐입니다. 하지만 이내 그런 긴장감은 해소되고 다시금 편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마법이 일어난 것입니다. 마음속의 불쾌감과 긴장감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모든 일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것입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아이가 울음을 터트렸고 엄마가 와서 도와준 것이겠지만, 아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에게는 전지전능한 마법이 있다. 내가 불편할 때면 모든 것이 알아서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 「왜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길 바랄까?」 중에서
“나에게 이렇게 힘든 일들이 계속해서 터지는 건 내가 무언가 잘못했기 때문에 누군가 벌을 주는 거야.”
“갑자기 내가 병에 걸리고 아들은 사업이 망하고 하는 게, 조상을 잘 모시지 않는다고 조상님이 화가 나셔서 그런 것 같아요.”
자신이 겪는 어려움의 원인을 그저 느낌으로 해석하고 맙니다. 초월적인 존재가 의도를 가지고 나에게 불행을 주는 것이라고 믿어 버립니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이런 물활론에 대한 믿음은 본인이 잘 알지 못하는 애매모호한 현상이나, 평소와는 다른 예외적 상황에서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언제나 내 안에 있으면서도 모호하고 애매하여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마음속의 변화입니다. 실제로 우리 내부의 마음은 외부 세계보다 더 낯설고 알 수 없는 현상들이 나타날 때가 많습니다. 왠지 모를 불쾌감, 불안감, 자괴감, 공허함 등이 오면 마음속 불쾌한 감정들이 우울증이라는 병으로 발생한 증상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런 마음속의 알 수 없는 변화를 물활론으로 해석합니다.
“제 마음이 이렇게 불편하고 괴로운 것은 누군가 벌을 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힘든 일들도 저에겐 더 많고, 이렇게 불안한 거겠지요.”
“제가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아요.”
그렇지 않습니다. 누구도 이유 없이 벌 받고, 괴로움을 느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니 그런 일은 있으면 안 됩니다.
지금 마음이 괴롭고 힘드신가요? 그저 어쩔 수 없는 숙명처럼 받아들이지 마세요. 주변에 도움을 청하세요.
--- 「당신이 잘못해서 우울한 게 아니다」 중에서
이런 분열의 방식은 타인에게보다 자기 자신에게 적용될 때 더 큰 문제가 발생합니다. 유아가 자신의 악한 면을 부정했던 것처럼, 본인의 나쁜 점이나 실수, 악한 감정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걸 인정하면 자신은 본질적으로 나쁜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는 것과 같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상대가 미워질 때도 그런 감정을 부정합니다. 그리고 상대에게 원인을 돌립니다.
“저 사람이 나를 괴롭히고 있어.”
“저 사람이 나를 미워하니 나도 어쩔 수가 없어.”
자신의 감정을 자기 탓이 아닌 어쩔 수 없는 일인 것처럼 남 탓을 합니다. 자신의 실수도 쿨하게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어쩔 수가 없었어요.”
“그때 무슨 일이 생기는 바람에 그런 거예요.”
이런 핑계는 남들만 속이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지킬 박사를 지키기 위해 자신까지도 속이고 있는 핑계들입니다.
그러다가 어쩔 수 없이 내 마음속에 공격성, 미움, 나쁜 감정 등이 있음을 인정해야만 하는 상황이 옵니다. 실수가 전적으로 내 책임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도 옵니다. 이 순간, 하이드 모드가 작동합니다. 이제는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자신은 어디론가 사라집니다. 자신은 100퍼센트 악한 존재이고, 실수만 하는 존재이며, 세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본인처럼 나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도 가능합니다. 이렇듯 흑백논리는 참으로 무섭습니다. 지킬 박사라는 온전히 선한 인물을 만들기 위해 하이드가 탄생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실제 모습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기분이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습니다. 선한 마음을 가질 때도 있고 미운 마음이 들 때도 있으며, 순간적으로 비도덕적이고 공격적인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일을 잘할 때도 있지만 실수할 때도 있고 망칠 때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간입니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통합할 때 악한 마음을 조절할 수 있고, 내가 원하는 인간상에 다가갈 수 있는 가능성이 생깁니다.
--- 「하나만 마음에 들지 않아도 아예 싫어지는 이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