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요일을 함께하는 분들은 주부, 워킹맘, 엄마, 아내, 며느리 말고도 많은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되기 위해 애썼다. 겹겹으로 덮어쓴 가면을 벗어던지고, 벌거벗은 자기 자신을 마주하려고 했다.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서 내면의 이야기를 길어 올렸다. 합평할 때는 글요일의 일원이었지만, 자기 글 앞에서는 개성 넘치는 한 인간으로 돌아갔다. 기어이 저마다의 나침반을 들고, 자기 목소리를 등대 삼아 항해했다. 여럿이 함께하면서도 끝내 단독자로서 여기까지 왔다는 것, 그 누구도 끝끝내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는 것.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바는 이것이 전부인지도 모르겠다.
--- p.17 이현호, 「안녕하세요, 글요일입니다」중에서
그로부터 몇 달이나 지났을까. 얼마 후, 같은 동네에 사는 친한 친구의 동생이 그를 만났다. 똑같은 수법이었다. 어두운 밤, 귀갓길에 동생을 칼로 위협해 자신의 아지트까지 끌고 갔다. 그곳은 공사가 중단된 폐건물 같았다고 한다. 화려한 공주풍 드레스를 몇 벌 꺼내어 놓고 그중 하나로 갈아입으라고 했다고. 동생은 겁에 질려 그놈이 시키는 대로 했다. 그렇게 일을 당하고 울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친구 어머니는 밤늦게 돌아다닌 그 애의 탓이라며 도리어 동생을 혼냈다. 누구에게 입도 뻥긋하지 말라며, 없던 일로 하라고 다그쳤다. 동생은 며칠을 혼자 가슴앓이하다 억울한 마음을 제 언니에게 털어놓은 것이었다.
--- p.30 정지연, 「벽돌을 부수며」중에서
호텔 정도는 되어야 옷을 벗겠다고 오만하게 굴어야 상대가 나를, 더 정확하게는 내 몸을 소중히 대해 줄 것 같았다. 얼마나 나를 원하는지, 애인의 마음을 시험해 보고도 싶었다. 무엇보다 첫 경험은 아무 데서나 하고 싶지 않았다. 애인이 사랑을 나누기 위해 비싼 비용을 지불한다는 것이 나를 향한 욕망이 얼마나 큰지 확인할 방법이라는 다소 얄팍한 계산 같은 것도 깔려 있었다.
--- p.65 시윤정, 「사랑하기 좋은 장소」중에서
나는 속상하거나 답답한 마음이 들 때 목욕탕에 간다. 글쓰기도 목욕하는 과정과 닮았다. 맨몸으로 자신을 솔직하게 마주해야 한다. 온탕 안에서 찬찬히 나를 돌아본다. 어떤 이야기를 쓸지 깊이 생각한다. 쓰고 싶은 이야기가 퉁퉁 불었으면 구석구석 때를 밀듯 찬찬히 써 내려간다. 다른 사람이 내 등을 밀어 주는 일은 합평 같다. 혼자 애를 써 보지만 제대로 닦기 힘든 곳이 있다. 퇴고는 마무리 샤워처럼 온몸을 구석구석 비누칠해서 다시 닦고, 여러 번 헹궈 내야 한다. 한 편의 글을 다 쓰고 나면 목욕탕에 다녀온 것처럼 시원하고 개운하다. 그동안 아무렇게나 덮어 놓았던 감정들을 정성껏 닦고 씻어 주니 속상하고 화났던 마음들이 말간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 pp.116-117 한진희, 「작가 노트」중에서
살다 보니 나처럼 평발이 아닌데도 발에 불편함을 호소하는 사람을 많이 보게 된다. 발가락 관절 안쪽이 돌출된 ‘무지외반증’을 가진 사람, 발뒤꿈치가 아픈 ‘족저근막염’으로 고생하는 사람, 발등이 높아 신발이 불편한 사람, 내성 발톱 문제까지. 평발이 아닌 사람들도 의외로 발에 불편함을 많이 느끼고 있었다. 그렇다. 족(足) 같은 문제는 누구나 가지고 있었다. 평발인 사람과 평발이 아닌 사람. 나는 지금껏 세상을 이렇게 이분법적인 사고로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 p.130 최다올, 「족 같은 삶」중에서
몰카범으로 보이는 남자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서 있던 그녀. 그 순간 개구리 해부 시간이 생각난 이유는 무엇일까. 하얀 개구리 배에 선홍빛 선을 그었던 메스는 보기보다 날카로웠다. 조화롭게 연결된 내장 기관을 금방 해체했다. 사람의 이곳저곳을 찍는 카메라 렌즈도 메스 못지않게 매섭다. 조용한 핸드폰은 모르는 여자의 몸에서 원하는 이미지만 뽑아낼 수 있다. 치마 안을 몰래 찍는 방식도 그렇다. 나는 깊은 심호흡을 하며 남자와 마주 봤지만, 결국 현장에서 나와 버렸다. 우발 사건으로 끝났다. 만약에 이 상황을 기사로 읽는다면, 나는 기사 속 ‘나’를 비난했을까, 아니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까. 상황에 따라 다를 것이다. 온라인 범죄도 시시각각 형태가 달라지고 있다.
--- pp.147-148 노분희, 「공손한 목격자」중에서
암이거나 아니거나, 50퍼센트의 확률. 남의 얘기로만 듣던 상황이 나한테도 왔구나. 현실이구나. ‘나에게 왜 이런 일이?’ 같은 식상한 레퍼토리보다 현실을 봤다. ‘그렇구나.’ 받아들여야 했다. 의사의 말에서 ‘희귀암’이란 말보다 ‘시한부’라는 말이 더 충격적이었다. 당연히 꼬부랑 할머니가 돼서 죽음을 맞을 거로 생각했던 것일까. 내 죽음이 당장 6개월 앞으로, 아니 더 빠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아직 해 줘야 할 것이 많은 아이들이 먼저 떠올랐다. 그럴 때마다 눈물이 쏟아졌다. 죽음을 생각한 적이 없었다. ‘시한부’가 된다면 무엇을 더 해야 하는 것일까. 이런 경우 암일 확률이 크다는 경험 많은 간호사의 말을 들으면서도 아닐 거라고 생각했지만, 만약을 대비해야 했다.
--- p.190 이영실, 「매일 해는 뜬다」중에서
당시 뉴스에는 귀금속 전문점의 도난 사건이 많았다. 대낮에 망치를 들고 들어가 사람을 해치는 일도 있었다. 거기에 비하면 남편이 무사해서 다행이었다. 남편 목숨을 돈에 비교할 수는 없었다. 도난당한 물건을 못 찾더라도 살아갈 수 있었다. 다행히 빚도 없었다. 결혼 초기에 비하면 상상할 수 없이 넉넉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라도 생각하며 의연해지려 애썼다.
--- p.208 임정명, 「술장 앞에서」중에서
나에게 돌아온 아빠는 죽었지만, 한 인간으로 살았던 판식은 이 핸드폰에 여전히 남아 있다. 천천히 문자를 확인했다. 메시지 함은 스팸 문자로 가득했다. 연락처 목록을 열어 보았다. ‘딸’이라고 저장된 내 전화번호를 보는 순간 참았던 눈물이 일시에 터져 나왔다. 아빠는 왜 연락하지 않았을까. 마지막으로 사진첩을 열었다. 꺼져 있는 텔레비전 화면에 희미하게 반사된 아빠의 모습이 보였다. 쏟아지는 햇살이 가득한 옥탑방 마당에 크고 작은 화분이 있었다. 막 꽃이 핀 화분이 반짝거렸다. 씨를 심고 잎이 나고 줄기가 생기고 꽃이 피는 과정을 찬찬히 지켜봤을 사람이 화분 곁에 있었다. 나도 그 화분처럼 아빠의 보살핌이 늘 그리웠다.
--- pp.236-237 곽민주, 「판식의 사진첩」중에서
합평 시간에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지적’이라는 표현과 어울리지 않는 말들이었다. 글에서 배려심과 친절함 빼기, 예쁜 말 사용 금지, 과도하게 설명하지 않기. 모두 독자가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독자는 어린아이가 아니다. 과한 친절을 동반한 설명은 독자를 지치게 한다. 친한 친구에게 듣던 말과 합평 시간에 들은 말이 너무 똑같아서 혼자 움찔하고 잠깐 경직되어 있었다. 일상생활에서 친절하고 배려심이 있으면 칭찬받을 일 아닌가 싶었는데, 상대방이 필요로 하지 않는 설명은 그냥 나의 만족일 수 있겠구나 싶었다. 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만 생각하는 글쓰기가 아닌, 독자를 생각한 글쓰기의 훈련이 절실했다.
--- p.312 윤주연, 「글요일에서 우리가 배운 것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