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정서적으로 불쾌하고 고통스럽게 여겨진다. 안절부절못하고 초조하며 사소한 일에도 잘 놀라고 긴장한다. 아슬아슬한 기분과 불편한 감정에 시달리다 보니 쉽게 피로해지고 멍해지기도 한다. 『일어나』(김지연, 북멘토)에서 끊임없는 걱정과 불안의 무리에 쫓기는 주인공은 마음이 무겁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먹고 싶지도 놀고 싶지도 않다. 그러한 정서적인 불편감은 아무런 희망 없이 절망감만 느끼게 되어 무력감으로 이어진다. 무력감에 휩싸여 마치 늪에 빠져들어가듯 무기력해진 모습을 그림책에서 너무나 잘 보여준다.
--- p. 43
『오싹오싹 거미 학교』(프란체스카 사이머, 살림어린이)에서 케이트는 새 학교에 처음 가는 날, 아침부터 기분이 좋지 않다. 케이트는 신경질이 나서 한번도 하지 않던 행동을 한다. 침대 왼쪽으로 내려온 것이다. 이미 시간이 늦었는데 옷장엔 옷도 없고, 신발도 사라졌다. 학교는 유령이 나올 것 같고, 아이들은 하나같이 핏기 없는 얼굴에 선생님은 무서운 고릴라다. 화장실도 없고, 책상도 없는 교실에 심지어 점심은 벌레가 잔뜩 들어간 수프가 나온다. 새 학교에서 적응해나가야 한다는 불안이 모든 상황을 비관적으로 예상하게 만든 것이다. 이번엔 아침에 눈을 뜬 뒤 늘 하던 대로 침대 오른쪽으로 내려와 하루를 시작한다.
그러자 깔끔한 새 옷을 입게 되고, 새 학교는 아늑하며 친절한 선생님과 다정한 새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화장실도 있고 내 옷걸이도 있는 교실에서 친구와 맛있는 점심을 먹는 케이트. 침대에서 왼쪽으로 내려오느냐, 오른쪽으로 내려오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건 미신이나 우연을 말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어떤 태도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일상의 모든 기준과 기분, 생각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끔찍한 하루와 신나는 하루, 왼쪽으로 내려올 것인가, 오른쪽으로 내려올 것인가, 선택은 나에게 달려 있다.
--- p. 85
두 그림책에서 보여주듯이 두려움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기보다는 함께 살아가기 위해 길들여야 하는 대상임을 알 수 있다. 애니메이션 영화 〈드래곤 길들이기1〉에서도 족장의 아들 히컵은 마을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드래곤을 돌보고 길들이면서 드래곤의 특성과 기질을 잘 알게 되고,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된다. 가장 두려워했던 대상이 가장 든든한 내 편이 되어 하늘을 나는 멋진 경험을 가능하게 해주는 대상으로 바뀐 것이다. 두려움도 마찬가지다. 사나워지면 나를 잡아먹을 수도 있는 무서운 공포로 돌변하지만 잘만 길들이면 든든한 내 편이 되어 힘을 보태 주는 역할을 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두려움을 길들여 내 편을 만들어 나가는 두려움의 조련사가 되어야 한다.
--- p. 93
그림책 『철사 코끼리』에서 소년은 어떻게 됐을까? 여전히 철사로 만든 코끼리를 끌고 다니며 슬픔을 거부하고 있을까? 소년은 철사 코끼리를 떠나보내기로 마음먹는다. 소년이 무거운 철사 코끼리를 떠나보내는 장면은 꼭 그림책을 통해 확인해 보길 바란다. 이것이 진정한 놓아버림이며 비로소 소년은 상실의 두려움에서 벗어난다. 상실의 두려움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모든 아픔을 극복한다거나 상실한 대상을 마음에서 지워버린다는 의미가 아니다. 떠나간 사람을 생각하면 여전히 마음이 아프다. 함께했던 시간이 사무치게 그립다. 하지만 과거의 시간에 메여 후회와 분노, 슬픔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떠오른 감정은 계속 흘려보내고, 함께했던 소중한 시간에 감사하고, 대상이 남겨 준 사랑을 가슴으로 느낀다. 폭풍같이 몰아치던 아픔과 서러움은 잦아들고 그리움, 사무침, 사랑과 같은 감정은 잔잔하게 남는다.
--- p. 127
친구 사이에서 느끼는 질투를 아이가 스스로 긍정적으로 다루기는 생각만큼 쉽지 않다. 머릿속에서는 단단히 다짐해도 질투는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오는 숨기기 힘든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질투는 그냥 내버려두면 점점 커지고 누구보다도 자신이 괴로워지는 감정이다. 루이처럼 스스로 감정을 인식하고, 한 번 생겨난 감정을 부정하고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방향으로 전환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 p. 142
그림책 『감정은 무얼 할까?』(티나 오지에비츠, 비룡소)에서는 “열등감: 자신이 남보다 못하다는 감정”이라고 설명한다. 여러 가지 철창으로 페이지를 가득 채워 ‘열등감은 철창을 만들어’라고 표현한다. 열등감은 다양한 모양의 철창을 스스로 재단해 만든다. 철창의 열쇠도 본인이 가지고 있다. 열등감이 자기 자신이 정한 이상적인 모습과 기준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을 잘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스스로 만든 열등감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면서도 스스로 철창 안으로 들어가고, 철창을 만들기 위해 줄자로 길이를 재듯 자기 자신을 재단하고 평가한다.
--- p. 172
‘펭귄은 날 수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날 수 있어!』(피피 쿠오, 보림)의 아기 펭귄은 너무나 날고 싶다. 자신도 날 수 있을지 갈매기에게 묻자 “넌 원래 날 수 없다”는 핀잔만 듣는다. 하지만 아기 펭귄의 의지는 꺾이지 않는다. 아기 펭귄은 날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도전한다. “펭귄은 날 수 없지만 수영을 잘할 수 있다”는 아빠의 말에도 아기 펭귄은 오로지 ‘나는 것’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실수로 바다에 풍덩 빠진 아기 펭귄은 아빠의 도움으로 넓고 넓은 바다에서 위로 뛰어올랐다가 다시 뛰어들기를 반복한다. 수영을 하면서 하늘을 나는 듯한 기쁨을 발견한다. 상황은 변하지 않았지만 ‘나는 것’만이 옳다고 고집하지 않고 ‘수영을 통해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것이 하늘을 나는 것과 같다’고 선택하는 순간 하늘을 날지 못한다는 열등감에서 벗어나 자유로움을 누리게 된다.
--- p. 197
『그래봤자 개구리』(장현정, 모래알)의 개구리도 때를 기다린다. 지금이야! 하고 뛰어올랐지만 “그래봤자 개구리”이다. 눈앞에서 다른 개구리가 잡아먹힌다. 또다시 점프해 날아오르기를 시도하지만 “그래봤자 개구리”일 뿐, 나보다 뛰어나고 강한 상대의 힘에 두려움을 느낀다. ‘나’는 그저 보잘것없는 개구리이다. 주위 개구리가 하나둘 잡아먹히고 이제 표적은 “그래봤자 개구리”이다. 목숨의 위협을 받는 순간 최선을 다해 점프를 한 개구리는 겨우 목숨을 건진다. 그렇게 들어간 풀숲에서 자신의 보잘것없음을 직면하고 내면의 접촉이 일어난다. ‘나는 작은 개구리구나.’ 자신을 돌아보고 작고 보잘것없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시간을 통과하고 나서 개구리는 비로소 더 크게 뛰어오른다. “그래! 나 개구리다!” 그림책의 강렬한 타이포그라피는 개구리의 강력한 의지와 깊은 내면의 통찰에서 나오는 외침이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 p. 206
죄책감을 수용하는 방법은 내가 한 일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용서하고 화해하는 과정을 거쳐 죄책감은 건강한 인격체의 일부가 된다. 심리학자 볼라스는 죄책감에 치유 기능이 있다고 말한다. 죄책감은 손상을 회복하는 능력을 지원해주며, 자기 자신에 대한 동정과 용서는 파괴적인 실수를 하지 않도록 인도한다. 부정적인 감정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긍정적 에너지로 사용하여 자기성찰의 기회로 삼는 것이 좋다.
--- p. 239
우리는 다양한 감정을 ‘분노’라는 가면 뒤에 숨기고 있다. 누구에게 들킬세라 꽁꽁 숨겨두고 외면하고 있었던 감정, 그것이 미해결된 콤플렉스다. 우리가 진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무의식으로 보내는 이유는 간단하다. 직면하고 싶지 않은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분노하는 것이 더 쉽기 때문이다. 분노가 격분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분노 뒤에 숨겨둔 진짜 감정, 미해결된 콤플렉스를 찾아야만 한다.--- p. 259
그림책 『너는 어떤 힘을 가지고 있니?』(마스다 미리, 책속물고기)에서 작은 자동차는 건강한 자존감을 가지고 있다. 작은 자동차는 높은 언덕을 오를 때 오래 걸리더라도 해낼 수 있다고 말한다. 울퉁불퉁한 길은 어렵지만 잘 해낼 수 있다고 말한다. 자신에 대해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고 어려운 길이 펼쳐지더라도 다른 자동차와 나를 비교하지 않는다. 넘어지기도 하고 속도도 느리지만 할 수 있다는 내면의 힘을 가지고 있다. 이 그림책의 주인공은 작지만,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해낼 수 있다는 생각, 넘어지고 실수하면 다시 일어나면 된다는 마음가짐을 보여준다.
--- p. 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