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영국민을 통치하기에 가장 어려운 민족이라고 한다. 개성과 자기주장, 신념이 뚜렷한 민족이라는 게 그 배경이다. 게다가 영국 사회는 전통적으로 지성주의에 대한 반감이 뿌리 깊다. 이런 국가 구성원들의 개성을 존중하고 창의성을 계발하기 위한 국가나 사회의 노력은 오랜 기간 지속되어 왔다.
--- p.28
오랜 기간 나라의 어른이었던 여왕을 떠나보내는 수많은 영국인의 애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갈등과 대립, 충돌과 혼돈이 팽배한 우리나라에 존재감만으로 국민이 위로받게 될 인물의 등장을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어렵기는 하겠지만 불가능하기야 하겠는가.
--- p.31
찰스 3세는 어머니 엘리자베스 여왕의 서거 후 74세의 늦은 나이에 왕위를 이어받았다. 간혹 불미스러운 스캔들로 인해 국민으로부터 왕의 세습 여론에 적신호가 있기는 했지만, 왕이 되기 위한 수업을 오랫동안 받은 셈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재임 기간 영국의 총리 15명을 포함해 14명의 미국 대통령, 10명의 프랑스 대통령, 9명의 독일 총리, 일본 총리는 32명, 심지어 7명의 교황이 바뀌는 것을 보았다. 그 기간 대한민국 대통령도 13명이 재임하였다.
--- p.33
비록 세계적인 지명도에서 셰익스피어와 비길 바는 아닐지 모르지만, 디킨스는 자신이 몸소 체험하며 알게 된 사회 밑바닥의 생활상과 애환, 부조리한 사회문제와 불평등, 세상의 모순과 부정한 현실을 섬세한 작가의 눈으로 외면하지 않았고 작품을 통해 드러내는 노력을 계속했다.
--- p.41
세간의 여론이야 어떻든 셰익스피어와 디킨스같이 자신들이 숨 쉬고 살아가는 사회라는 공간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해석하는,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장구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시대를 상징하며 꾸준히 사랑받는 그런 작가들을 가진 영국 사회는 정신적으로 풍요롭다. 재능을 가진 작가들이 시대의 소임에 충실하고 시민들은 그들의 노력에 찬사를 보내며 각자의 생각을 가지고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식, 그것이 ‘해가 지지 않던 영국’을 만든 전통이 아닐까 싶다.
--- p.44
우연히 100여 년 전 유럽에서 벌어진 제1차 세계대전의 전후를 살펴보다가 오늘의 현실을 마주한다. 5,000년 역사에서 우리가 마주해 있는 지극히 드문 ‘벨 에포크’, 화려한 순간을 지속하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토인비가 오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27년간의 끊임없는 성찰과 노력 끝에 찾아낸 교훈이 아닐까.
--- p.52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1856. 7. 26.~1950. 11. 2.)는 역경 속에서 불굴의 노력을 통해 명성을 얻은 인물이다. 셰익스피어가 잉글랜드를 대표하는 극작가로 사랑과 존경을 받는 인물이라면 쇼는 아일랜드 국민으로부터 셰익스피어 못지않은 무한한 사랑과 존경을 받는 아일랜드를 상징하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버나드 쇼는 아일랜드 태생이지만 청년기부터 생애 대부분을 잉글랜드에서 활동하였으며 셰익스피어 이후 가장 위대한 극작가로 불린다.
--- p.56
홉스봄은 20세기를 대표하는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로 아무도 그가 ‘역사학자들을 가르친 역사 교수’라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전 세계 역사학자 중 그의 방대한 지식과 논리에 영향을 받지 않은 학자는 사실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전공은 역사학 분야를 뛰어넘었고 그의 명성은 영국, 유럽과 미주 대륙을 포함해 전 세계에 걸쳤으며, 그의 연구는 폭넓은 시각으로 인류사적 전 영역에 걸쳐 철저한 사료 분석을 통해 역사 탐구에 한 획을 그었다.
--- p.66
롤링의 성공 스토리는 이제 우리가 잘 아는 신데렐라의 이야기가 되었다. ‘무일푼에서 거부로(Rags to Riches)’가 그녀의 성공을 나타내는 상징어가 되었다. 해리포터 시리즈는 완결까지 전 세계 70여 개 언어로 번역되어 5억 부 이상이 판매되었고 출간 직후부터 9년간 약 308조 원에 달하는 수익을 냈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의 간판산업인 반도체 수출보다 77조 원을 더 벌어 1.3배 더 큰 수익을 내기도 했다니 제대로 구성된 탄탄한 문화콘텐츠가 고부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진면목을 제대로 보여준 셈이다.
--- p.74~75
르 카레는 스파이세계의 비정함에 대해서도 인간적 감성에 기반을 둔 솔직한 심경을 작품 속에서 토로하곤 했다. 처절한 냉소주의, 현실정치와 첩보 세계의 도덕적 진공 상태. 이성이 지배하는 도덕률 사회에서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행위 등 그는 치열한 국익 활동에서 드러나곤 하는 스파이들의 잔혹하고 냉정한 현실을 음울하면서도 감각적인 시각에서 바라보았다.
--- p.82
불행하게도 1997년 그녀는 파예드와 프랑스 여행 중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짧은 생을 마감한다. 운명의 여신은 지상에서 그녀에게 새로운 행복을 허락하고 싶지 않았나 보다. 그녀의 죽음을 둘러싼 논란은 24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녀가 죽은 후 다이애나에 대한 영국 대중의 사랑은 왕실에 대한 애중으로 확산되면서 왕실의 존재와 역할을 두고 다시 여론이 분열되는 현상을 드러내기도 했다.
--- p.90
이탈리아나 덴마크 사람 중에는 왜 셰익스피어가 우리 이야기를 훔쳐 갔느냐고 볼멘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 [레 미제라블]이 런던에서 성황리에 공연되는 현실에 문화적 자존심 강한 프랑스인 중에는 분통이 터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은 이웃 나라의 천재적인 예술가가 자신들의 고전 스토리와 위대한 유산을 차용해서 오히려 세계적인 작품으로 발전시킨 예술성과 노고에 대해 찬사와 경의를 보내고 있다.
--- p.98
우리도 아일랜드처럼 열악한 지정학적 환경 속에서 이웃의 강대국들로부터 수없이 많은 고통의 역사를 경험했다. 한반도에서 국가의 탄생이 시작된 이래 한순간도 이웃 국가들로부터 위협을 느끼지 않은 순간이 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립과 충돌이 반복된 역사 속에 될성부른 인물은 성장하기도 전에 뿌리째 뽑혀버리고, 존경받을 만한 인물들의 국가를 위한 충정은 갈등을 부추기는 사리사욕에 빠진 패거리들로부터 내팽개침을 당하는 악습이 여전하다.
--- p.108
가만히 생각해 보니 윤여정이 표현하는 영어는 그냥 내뱉듯 던지는 게 아닌가 싶다. 영어학습의 효과는 절박함에 있다. 외국에 살면서 체득한 언어는 그 사람들이 낯설고 말 설은 절박한 상황 속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가를 대변하는 바로 그 모습이다.
--- p.114
아주 오래전, 긴 여름방학을 맞는 유럽 학생들은 이렇게 아프리카나 남미여행을 했다. 비록 주머니 사정은 넉넉지 않지만, 세상을 경험하려는 꿈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꿈을 실현하는데 그들은 자신의 재능을 총동원했다. 목적지인 대륙에 처음 도착해서 개조한 큰 버스(대개 낡은 2층 버스였는데)에 올라타서는 한 달여 대륙을 종단하거나 횡단하는 여행을 하면서 젊은 시절의 추억을 소중히 하며 열정을 만끽했는데 각자 재능을 살려 역할을 충실히 하는 까닭에 아주 적은 비용으로 장기간 여행이 가능했다.
--- p.122
대처리즘은 근대 보수주의의 등장에 기여한 버크의 사상에 애덤 스미스, 밀과 하이에크의 주장들이 체계적으로 정리된 이론적 토대로 대처 통치 철학의 근간이 되었다. 따라서 그녀는 집권 기간 여하한 정치 상황일지라도 분명하게 판단하고 단호하게 추진할 정책 마련과 집행을 주저하지 않았으며, “영국의 정치 지형뿐 아니라 전 세계를 변화시킨 지도자”로 평가받았다.
--- p.140
그들은 영국 왕실의 충성스러운 신하로 국가의 상징적인 수장인 왕이 평시는 물론 국가가 위중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어떤 자세와 태도로 판단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충실한 조력자가 된다. 그들은 왕실에 대한 국민의 요구를 충실히 전달하고 국왕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도록 중지를 모은다. 그뿐만 아니라 ‘영연방(the Commonwealth)’ 국가들의 상징적인 수장인 왕에게 현명한 판단과 적합한 상황인식을 갖도록 국내외 이슈는 물론 다양한 분야에서 균형 잡힌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충실한 참모의 역할을 수행한다.
--- p.147
전 호주 총리를 스카우트해 자국의 정부 기구인 무역위원회 자문관으로 내정한 것이다. 다른 나라를 통치했던 국가지도자를 영입해올 생각을 하다니…….
가히 ‘영국다움’의 전형이라고 탄식하지 않을 수 없다.
--- p.152
영국 교육의 핵심은 창의성 있는 사람을 만들어 내는 게 목표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다른) 답을 찾기 위해 생각을 해보았니?”
친구들과 구분되는 창의적인 내용의 답을 찾기 위해 고민해 보았냐는 게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아이를 대하는 영국 엄마 질문의 의도다.
--- p.169
창조 능력이 필요한 예술과 문화 그리고 과학기술 분야에서 영국인의 창의성은 가히 세계적이다. 어릴 적 교육이 그 바탕이 된다. 이런 배경 속에서 발전한 인물과 문화자산이 다수를 먹여 살린다. 창의적인 교육과 거기에서 체득한 창조적인 사고는 영국이라는 나라의 성장과 발전에 눈에 띄지 않는 엄청난 무기이자 자산이다.
--- p.175
이제는 우리 사회도 얄팍한 지식으로 눈치 빠른 셈법이나 하면서 집단의 이익을 위해 국익에 해를 끼치는 현실조차 판단할 줄 모르는 인물을 양성하는 태도에서 벗어나길 기대한다. 그리고 구성원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목표를 위해 정진하는 지혜로운 인물들을 양성하는 안목을 갖게 되기를 고대한다. 지식과 지혜는 인간에게 모두 필요한 덕목이지만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는 현실을 바라보면 우리에게는 지식에 더하는 지혜가 요구되는 시점이 아닌가 싶다.
--- p.178~179
자동차도 국내용과 수출용에 차이가 있고(가격은 오히려 더 비싸고 보장 내역도 크게 다르다), 먹고 마시고 입는 것들 모두에서 한국의 소비자들은 ‘호갱’이다. 그러니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게 당연하다. 금속활자를 만들고 팔만대장경을 주조한 선조들의 후손인 우리가 어찌 이런 사회 속에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외국에서의 평가에는 목을 매면서 내부적으로는 소비자인 국민을 홀대하는 이런 사회를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을까.
--- p.190
지금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균형감과 객관성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정치인들은 다들 자신들만 옳다고 주장하고 있고, 법을 공부해 현장에 있는 전문가들도 자기의 주장만 전적으로 신뢰한다. 그리곤 애먼 국민에게 화두를 던져놓고는 알아서 판단하라는 무책임한 모습을 보인다. 대학 캠퍼스에서도 객관성과 균형 잡힌 지식보다 낡고 편향된 사조나 사상의 주입에 골몰하는 강의가 여전한 곳이 적지 않다(교수들은 자신들이 오래전에 배웠던 지식을 여전히 존중한다).
--- p.196~197
오늘날 유럽은 참 어려운 여건 속에 놓여 있다. 문명의 탄생과 관광지로서의 유럽은 매력적이지만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전례 없는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일과 일부 북유럽 국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국가가 경제·사회적인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 p.201
한국 사회에서 보수주의에 관한 연구는 얼마나 활성화되어 있을까? 제프 일리 교수의 연구만큼은 아니더라도 비교하는 것조차 불필요한 처지에 놓여 있다. 학자들조차 돈과 명성을 좇는 실정이니 정치인들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이런 현실 속에서 오늘도 전통적 보수 세력들은 집단의식 속에 빠져 자신들에게만 익숙한 화두를 꺼내 효율과 성과를 이야기하고 있다. 딱하지만 지금이 그런 시대일까.
--- p.217
보수든 진보든 정부의 책임 있는 인물들이나 정치인들은 한 세대도 훨씬 전에 낯설고 말 설은 곳에서 무거운 TV 박스를 들고 전전하던, 독일의 광산과 병실에서, 베트남의 정글에서, 중동의 뜨거운 사막에서, 아프리카 리비아의 수로 공사 현장에서 우리 국민이 흘리던 눈물과 땀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빈손으로 이룩한 작은 가정이나마 온전히 지키기 위해 비바람과 외풍에 수없이 흔들리면서도 힘든 인생길을 묵묵히 견뎌온 수많은 국민이 진짜 국가를 사랑하는 인물들이다. 온전한 국가라면 그들의 눈에서 더 이상 눈물이 흐르지 않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 p.233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같이 공부하던 영국 친구가 어느 날 필자에게 주말인 토요일 점심 무렵에 시간을 낼 수 있냐고 물어온 적이 있었다. 고급 와인을 곁들인 상당히 괜찮은 점심을 먹을 수 있다는 말도 유혹처럼 던졌다. 그를 따라 토요일 점심시간에 방문한 장소에서 나는 기가 막혔다. 그곳은 그의 전처가 결혼식을 올리는 연회장이었다,
--- p.244
비록 소매가 닳아 너덜너덜해진 스웨터 셔츠를 해가 바뀌도록 입고 청바지도 구멍이 날 때까지 입고 다니는 청년이지만 성년이 되자마자 그들은 심지어 부모의 도움을 포함해서 남의 신세를 지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영역에서 스스로 일어서기 위해 독립적인 사고에 몰두하면서 끝없는 자기 혁신과 발전을 꾀한다.
식사도 필요한 만큼만 하고 귀중한 청년 시절을 허비하게 만드는 불필요한 사회활동도 자제한다. 엄청난 독서와 과중한 학업,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늘 피곤한 모습이었지만 ‘자기 삶의 주인은 자신’이라는 인식만큼은 분명했다. 오래전 캠퍼스에서 이런 모습의 친구들을 보는 게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는데 오랜만에 다시 찾아본 대학 도서관 주변의 젊은이들 모습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 p.252~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