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기를 원한다면 자아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자아가 어떻게 형성되며, 어떻게 하면 자아를 변화시킬 수 있는지 알아야 한다. 우리 자신에 대한 더 나은 이해 없이는 진정으로 행복해지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기중심적인 세계, 나만의 세계에 갇히면 그 자기 초점(self-focus)이 우리 자신의 문제에 맞춰져 그 문제가 실제보다 훨씬 더 커 보인다.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인식 주체로서의 나(I-self)’와 ‘인식 대상으로서의 나(Me-self)’를 구분했다. 의식적인 행동의 주체, 인지하고 사고하는 주체가 전자이고, 자기 행동과 지식 그리고 생각의 객관적인 정보와 그에 관한 이야기가 후자에 해당한다
우리는 어린 시절 이래 지금까지 스스로 많이 달라졌다고 인정하면서도 나이가 더 들면 우리 자신이 더 달라질 것이라고 믿지는 않는다. 지금의 자기 모습이 거의 완성된 상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기 발달의 종점에 도달했다는 이런 가정을 심리학자들은 ‘막다른 길 환상(end of history illusion)’이라고 한다.
우리는 ‘마음 이론(theory of mind)’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한다. 마음 이론은 다른 사람의 목적, 바람, 믿음 등의 마음 상태와 정서를 추론하는 기술이다. 자신의 믿음이나 느낌으로 다른 사람의 감정과 의도를 알아내는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회적 상호작용을 위한 역량을 키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자아감에는 나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의식하는 방식이 있다. 우리가 누구인지는 다른 사람들의 견해에 달려 있다. 우리는 스스로 세상에서 가장 웃기는 익살꾼이라고 믿을지 모르지만 아무도 웃지 않는다면 우리가 과연 그런 사람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사회학자 찰스 쿨리는 이를 ‘거울 자아(looking-glass self)’라고 부른다.
자존감은 개인이 자신에게 부여하는 가치를 말하며, 행복과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스스로 자신의 가치가 별로라고 생각하면 행복을 느끼기 어렵다. 낮은 자존감은 정신 건강 저하, 약물 남용, 범죄, 폭력 등 다양한 사회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우리는 불행하다고 느낄 때 자신의 실패나 잘못된 결정과 선택을 두고 심하게 자책한다. 그런 실패가 우리 자신 탓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가는 환경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경험을 제어할 수도 없다. 따라서 우리는 자아가 수많은 요인으로 구성된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그에 따른 마음의 부담을 내려놓을 수 있다.
--- 「레슨 1. 나를 변화시켜라」 중에서
우리는 따돌림에서 비롯되는 사회적 고통과 불행이 두렵기 때문에 그런 상황을 피하려고 애쓴다. 신체적 고통처럼 고립에 따른 사회적 고통도 우리 자신이 변해야 살 수 있다는 경고 신호다. 실제로 사회적 상실의 고통으로 활성화되는 뇌 부위는 신체적 고통으로 활성화되는 뇌 부위와 똑같다.
우리에게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사회적 상호작용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가 그런 방향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 행복의 주된 원천이다. 무시당하거나 배제되거나 거부당하면 그토록 마음이 상하고 화가 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따돌림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평생 이어지는 주된 걱정거리다. 그런 일은 아주 흔히 일어난다. 한 연구에 따르면 대다수는 평균적으로 볼 때 하루에 적어도 한 차례는 무시당하거나 배척당한다. 하지만 아무리 자주 당해도 그 충격은 줄어들지 않는다. 충격이 너무나 강해 우리는 따돌림 기미만 보여도 즉시 민감하게 반응한다.
우리는 사회적인 동물로서 집단 속에 잘 융합되면 행복해질 수 있으나 사회적으로 고립되면 불행해진다. 따라서 행복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초점을 자기중심에서 좀 더 타인중심으로 옮겨야 한다. 좀 더 타인중심적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관대해져야 한다.
다른 사람을 도우면 다른 사람과 연결된 자신의 자아 인식을 나타내는 신경 활동이 늘어나고, 행복감이라는 정서적 보상으로 이 연결이 더 강해진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때 우리는 행복감으로 자신에게 보상한다는 뜻이다.
‘사회적 비교(social comparison)’ 이론으로 유명한 심리학자 리언 페스팅거에 따르면 인간은 자아감을 발달시키기 위한 사회적 비교 욕구를 갖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우리는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함으로써 자신을 좀 더 정확히 평가하려 한다. 사실상 모든 사람이 의도 없이 자동적으로 사회적 비교에 참여한다.
“다른 사람들의 견해에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은 그들을 지나치게 존중한다.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의 인생을 다른 사람들의 인생과 비교함으로써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 「레슨 2. 사회적 고립을 피하라」 중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기를 원하며, 사랑받고, 지위를 갖고 싶어 한다. 그 모든 것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할 때 우리가 어떤지에 달려 있다. 이런 것이 삶에서 우리의 행동과 선택을 이끄는 보편적인 동기다. 그러나 우리가 하는 비교는 종종 잘못된 결론에 이른다. 불행은 거기서 시작된다.
행복은 마음의 상태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주관적이며 해석하기 나름이다. 우리가 자신의 행복을 어떻게 판단하느냐는 우리 마음 상태를 무엇과 비교하느냐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무엇에 관해 판단을 내릴 때는 언제나 그것을 다른 것과 비교를 하며, 그 비교 결과가 우리의 판단을 결정한다.
종합적으로 볼 때 우리 뇌는 아주 효율적이며, 우리가 실질적인 가치를 가진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세계를 해석해 준다. 그러나 인간의 뇌는 습관적인 사고방식을 중시하기 때문에 종종 인식을 왜곡시킨다. 그것을 ‘마인드버그(mindbugs)’라고 부른다.
우리의 비교에는 모든 종류의 편향이 영향을 미친다. 자신이 집중하는 것만 인식하는 ‘부주의 맹시(attentional blindness)’, 자신의 신념을 확인해 주는 증거만 찾고 거기에 매달리는 ‘확증 편향 (confirmation bias)’, 발생한 결과를 보고 난 뒤 사전에 그렇게 예측했다고 여기는 ‘사후 확신 편향(hindsight bias)’이 대표적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며, 무엇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지 잘 알지만 이런 것들이 얼마나 큰 행복이나 불행을 가져다줄지, 또 그런 느낌이 얼마나 지속될지 예측하는 면에서는 아주 형편없다. 이를 ‘정서 예측(affective forecasting)’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일어나는 모든 일에 주의를 집중할 능력이 없다. 그래서 ‘초점주의(focalism)’ 현상이 일어난다. 어느 한 가지에 주의를 집중함으로써 다른 것을 무시하고 잘못된 예측을 하는 경향을 가리킨다.
종종 우리는 무엇인가를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가지면 행복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그 무엇인가를 얻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것과 좋아하거나 즐기는 것이 늘 일치하지는 않는다.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리라고 잘못 예측하고 그것을 원하는 현상을 ‘희망 오류(miswanting)’라고 부른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삶을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 짐작으로 추정한다. 문제는 비교 대상을 계속 고르다 보면 언제나 자신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나의 사고에서 나를 중심에 두면 나는 다른 사람들 사이의 상대적인 비교를 무시하고 나 자신과 다른 사람의 비교에만 매달린다.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 잘 모르기 때문에 삶의 어느 측면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행복도에 대한 자가 평가가 달라지는 것이다. 단 하나의 요인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을 판단할 때는 그 요인의 중요성을 과대평가하기 쉽다.
--- 「레슨 3. 부정적 비교를 거부하라」 중에서
세계의 미래는 어두운데 우리의 개인적인 미래는 밝다는 생각은 참으로 희한하다. 어떻게 그 두 가지 상반되는 믿음을 동시에 가질 수 있을까? 또 우리 대다수가 장기적인 미래에 관해 낙관적으로 생각한다면 왜 우리 행복 지수는 해가 갈수록 낮아질까? 어떻게 우리는 자신의 미래에 관해서는 낙관적이지만 현재 상황은 불행하게 느낄 수 있을까?
우리는 무례하게 구는 사람을 보면 그가 예의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판단한다. 그러나 우리가 무례하게 행동할 때는 평소에는 그러지 않는데 지금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정당화한다. 이처럼 자신의 행위는 상황으로 정당화하면서 다른 사람의 행위를 해석할 때는 개인의 본성 탓으로 돌리는 경향을 ‘기본적 귀인 오류(fundamental attribution error)’라고 부른다.
스토아학파 철학자들은 행복에 관한 한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그 일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라고 믿었다. 일어난 일에 대한 반응이 그토록 중요하다면 그 반응을 긍정적으로 이끌 방법만 찾으면 좀 더 낙관적이고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부정적인 정보에 주의를 기울이면 우리가 피해야 할 위협적인 상황을 미리 인식할 수 있다. 해로운 인간관계든, 실업이든, 질병이든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모든 상황이 거기에 포함된다. 통증이 그렇듯이 불행도 우리의 현재 위치를 다시금 생각하고 필요한 조정을 하도록 자극하는 경보가 될 수 있다.
긍정적인 결과는 자신의 공으로 돌리고 부정적인 결과는 다른 사람이나 외부 환경 탓으로 돌리는 것은 대부분 자기중심적인 관점에서 세계를 봄으로써 발생한다. 우리는 스스로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고 싶어 한다. 다른 무엇에 의존해야 한다면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해진다.
낙관주의는 건강한 마음 상태로 목표를 달성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지만 비현실적인 낙관주의는 무모할 수 있다. 만약 실패를 대수롭지 않은 일시적인 문제로 여기고 전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확고히 믿게 되면 실패의 경험에서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교훈을 놓치게 된다. 실수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같은 오류를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 「레슨 4. 좀 더 낙관적으로 생각하라」 중에서
“마음은 우리가 목표로 하는 곳에서 벗어나 떠돌아다닐 뿐 아니라 우리가 금지하는 곳으로도 흘러간다.” 불쑥불쑥 떠오르는 부정적인 생각은 우리의 집중력을 무너뜨리고 우리를 어두운 곳으로 끌어당긴다. 그 생각은 우리가 무시하려고 애쓸수록 우리를 더욱 강하게 끌어당긴다. 어떻게 해야 이 마음이란 반항아를 길들일 수 있을까?
‘마음 배회(mind-wandering)’란 주어진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생각이 과거와 미래로 떠돌아다니는 상태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잡생각, 딴생각을 가리킨다. 이런 마음 배회는 즐거운 회상이나 미래의 소망과 관련되는 경우도 일부 있으나 대부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고 느껴지는 걱정거리와 부정적인 생각으로 우리를 이끈다.
인간은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회피하고자 하는 ‘쾌락 원칙(hedonic principle)’에 따라 최종 목표인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활동하고 생각한다. 공부, 시험, 훈련, 일자리, 인간관계는 전부 미래를 위한 대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정신적인 삶은 반드시 그처럼 미래지향적이지 않다.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의 경우 자신의 삶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반추하는 것과 관련된 신경회로가 활성화하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 사람은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늘 걱정하며 살아간다. 그런 사실은 “내 인생은 수많은 비극으로 가득 차 있는데 그 대부분은 일어나지 않은 비극”이라는 마크 트웨인의 위트 넘치는 명언 속에 잘 포착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당면 문제를 과대평가한다. 부정성 편향이 그 부분적인 이유이지만 내면의 비판적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비판을 되새김질하려는 우리 성향도 거기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자기중심적인 마음 때문에 당면 문제에 집중하면서 그 문제의 심각성을 증폭시킨다. 눈앞에 닥친 문제가 마치 감정의 블랙홀인 듯 우리는 그 중심으로 빨려들어 간다. 그런 위험을 피하려면 우리 자신과 문제 사이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 「레슨 5. 주의력을 제어하라」 중에서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로서 육체적, 정신적 행복을 위해 서로에게 의지한다. 그럼에도 인간의 가장 큰 두려움은 다른 인간이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인가? 기회를 놓치거나 따돌림을 당하거나 배척당하거나 무시당하거나 자존감이 짓밟히거나 웃음거리가 될지 모른다 등등 수많은 사회적 두려움이 우리를 엄습한다.
다른 사람들을 좀 더 배려하는 동시에 그만큼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을 줄이는 것이 행복의 비결이다. 자신을 너무 의식하면 행복에서 멀어지게 된다. 자아가 만들어내는 부정적인 왜곡과 편향이 그렇게 만든다. 이를 두고 심리학자 마크 리어리는 ‘자아의 저주(the curse of self)’라고 불렀다.
공감과 연민은 둘 다 다른 사람의 곤경에 대한 반응이지만 공감은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는 반면 연민은 타인에게 초점을 맞춘다. 독일의 신경과학자 타니아 징거는 그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연민은 공감과 달리 다른 사람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연민은 다른 사람을 향한 따뜻한 감정, 관심, 배려가 특징이며, 다른 사람의 행복을 증진시키려는 강한 동기로 작용한다. 연민은 다른 사람을 위하는 감정이지, 다른 사람과 같이 느끼는 공감의 감정이 아니다.”
자기중심주의는 의식의 흐름과 자아 경험에서 기본 설정값에 해당한다. 과도한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가까스로 억누른다고 해도 그런 생각은 잠시 휴면할 뿐 기회가 오면 언제든 기본 설정으로 되돌아가 다시 고개를 든다. 무엇보다 스트레스와 압력, 불안이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촉발한다. 또 그런 생각이 스트레스를 증폭시키는 악순환을 낳는다. 우리는 불안할수록 사회 연결망과 단절될 가능성이 커진다.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은 자신의 실수도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잘 띌 것으로 과대평가한다. 소위 ‘스포트라이트 효과(spotlight effect)’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 약점을 실제보다 더 뚜렷이 의식한다고 믿는 경향을 말한다.
긍정적인 감정에서 비롯되는 유연한 사고는 자신과 다른 견해를 고려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도하며, 상대방에게 다가가려는 마음을 일으킨다. 그러면 상대방도 더 긍정적으로 반응하게 되어 서로 호감을 품고 뜻을 모으게 된다. 이처럼 ‘확장-구축’ 접근법은 행복 증진에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눈길을 과대평가한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우리의 객관적인 비교를 왜곡한다. 물론 우리는 당혹스러운 순간을 자주 겪는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이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채지도 못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 「레슨 6. 사회 연결망을 강화하라」 중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신경 쓰지 않고 우리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지만 그 행복은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 때만큼 오래가지는 않는다. 또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면 그들과 우리 자신 모두의 삶이 훨씬 더 오랫동안 풍요로워질 수 있다.
우리는 행복을 추구해도 뇌가 부정확한 판단을 하고 부정적인 정보에 집착하면서 좌절을 겪는다. 우리 뇌는 특히 사회적 지위를 위협하거나 따돌림으로 이어질지 모른다고 생각되는 정보를 실제보다 더 중대하게 받아들인다. 따라서 우리가 자기중심적 관점을 줄이려고 노력한다면 부정적인 생각을 덜 하게 되고 사회적 유대를 강화함으로써 행복을 증진할 수 있다.
이기심과 이타심은 동전의 양면이다. 우리는 때로는 자신에게 잘해 주고, 또 때로는 타인에게 잘해 준다. 그 두 가지 활동 모두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다. 우리가 경험하는 행복의 질이 자신과 관련된 행동의 양태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자기중심적인 행동은 변동성이 심한 행복으로 이어지는 반면 이타적인 행동은 더 오래 지속되는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준다.
--- 「레슨 7. 나만의 세계에서 벗어나라」 중에서